우리는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에 대해
많이 들어 왔지만 그들은 좀처럼 이 세상에
내려오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들 불보살의 이름조차 들어 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을 예로 들어 보죠.
그들이 어떻게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을
알겠습니까?
그렇다고 그들이 영원히 구원받지 못할까요?
그렇다면 이 얼마나 가련한 일입니까?
우리가 잠깐 아미타불이나 관세음보살을 잊고
더 훌륭하고 멋진 스승에게 집중했다고 칩시다.
그땐 스승의 이름을 암송할 필요조차 없을 겁니다.
스승을 알기도 전에 이미 스승에게 구원을
받았을 테니까요.
이런 존재들이 최고의 스승입니다.
하지만 극히 드물지요.
또 설사 그들이 이 세상에 내려온다 해도
우리는 그들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들이 “나는 깨달은 스승이다.”라고 말해도
우리는 그를 믿지 못합니다.
물론 그들 스스로 그렇게 주장하는 경우는
드물지요. 그러니 어떻게 그들을 알아보겠습니까?
우리의 생명을 구원해 줄 위대한 스승을
만난다는 게 이처럼 어렵습니다.
관세음보살을 염하는 것이 늘 유익한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가 관세음보살을 만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이 이 세상에 내려와 육신으로
화해서 우리와 교통하기만을 희망할 수 있습니다.
오로지 그럴 때에만 희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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