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권유로 불교에 입문한지
약 30년이 되었다.
불법과 인연이 있었던지, 국가공무원
생활을 하면서도 교리를 배우며 신심을
증장시킬 수 있었다.
그러던 중 1995년 봄, 직장에서 시행한
해외 연수교육차 10일간의 유럽여행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동료들과 떨어지면 북한 공작원에게
포섭되어 북송될 수 있으니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는 특별교육도 받았다.
그래서 무사히 여행을 다녀올 수 있도록
기원하며 여행 몇 달 전부터 새벽마다
부처님께 108 참회기도를 시작했고,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오고 있다.
1995년 6월 5일에 출국하여 프랑스
파리에 도착한 다음날, 루브르 박물관
4층에서 사진기 필름을 교체하던 중
동료들과 헤어지는 일이 벌어졌다.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한 채로 일행을
찾으러 각층을 뛰어다니며 찾았지만,
수만 명의 인파 속에서 일행을 찾기란
무척 어려웠다.
언어소통 조차 어려웠으니 초비상이
걸린 셈이다.
그때부터 평소에 귀의하였던 관세음
보살님의 명호를 나도 모르게 염송했다.
몽유병자와 같은 무의식상태에서 오로지
한 생각, 관세음보살님만을 애타게 부르며
헤맨 지 약 40여분, 박물관 어느 입구에서
짧은 영어로 수위근무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그 당시만 해도 '프랑스에 오면
프랑스어만 사용하라.'는 말이 통용되던
시기였던지라 그들은 짧은 영어와 몸짓,
손짓을 하는 여행객을 고자세로 대하기만 했다.
< 현증가피>
한참을 수위근무자와 실랑이를 하던 중에
누군가가 나의 등을 두드렸다.
돌아보니 신체 건장한 40대의 잘생긴 신사였다.
" 한국에서 오셨습니까? 일행을 찾고 계십니까?"
나는 정말 반가워서 "예." 하며 일행을
꼭 만나게 해 달라고 사정했다.
자신을 파리에서 공부하는 한국 유학생이라고
소개한 이 신사는 지하 3층 주차장으로 내려
가면 동료들과 만날 수 있다며 엘리베이터까지
안내해 주셨다.
지하 3층에 내렸더니 30여 미터 앞에서
초면인 수염 많은 외국인이 손짓으로 나를
오라고 했다.
그는 나를 데리고 100여 미터 정도 주차된
버스들을 지나서 한 버스의 문을 열더니
나보고 타라고 한다.
승차했더니 정말 신기하게도 나의 여행가방이
선반 위에 얹혀 있는 것이 아닌가?
버스의 번호도, 버스의 색상도 기사님의
얼굴도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였는데,
이렇게 기막히고 진귀한 현상을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너무나도 감격스럽고 불가사의한 불보살님의
가피에 형언할 수 없는 법희선열(法喜禪悅)의
기쁨을 느꼈다.
비록 40여 분이라는 짧은 시간의 무의식 상태
속에서의 기도 염불이었지만, 내 생애를 통하여
그렇게 열심으로 간절하게 부처님을 찾은 일은
없었다.
관세음보살 보문품에서 말씀하신 그대로,
대자대비 천수천안 관세음보살님께서 응신하셔서
나에게 현증가피를 주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전상삼 법우 법보신문 신행수기 당선작(전문)
2015.05.18. 19:47
< 법보신문(5.16자) 신행 공모 당선작 > : 법광 전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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