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종교에 불과했던 불교가 기성 종교의
시샘에도 불구하고 고대 인도사회에 급속하게
퍼져나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교설의 훌륭함이 그 첫 번째 원인이었지만
그에 못지않은 것이 부처님의 훌륭한 인격이었다.
무엇보다 그 분은 겸손하고 가난한 수행자였다.
누구에게든 친절했으며 군림하려 하지 않았다.
제자들보다 좋은 옷을 입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편안한 곳에 머물지 않았다.
이런 겸손이야말로 사람들이 부처님을 존경하고
따르는 이유였다.
부처님을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분(世尊)’
‘존경받아 마땅한 분(應供)’ ‘하늘과 인간의 스승(天人師)’
등으로 부른 것은 당시 사람들이 이 분을 얼마나
흠모했던가를 말해준다.
이를 짐작케 하는 경전이 있다. 부처님과 동갑이자
친구처럼 지내던 코살라의 파세나디 왕의 고백을
기록한 중아함 213경 <법장엄경>이다.
“저에게는 이시다타와 푸라나라는 신하가 있습니다.
언젠가 전쟁에 나갔다가 작은 오두막에서 같이
잔 일이 있습니다.
두 사람은 초저녁에 가부좌를 하고 좌선을 하더니
밤이 깊어지자 부처님이 계신 방향을 확인하고 그쪽으로
머리를 두고 발은 내 쪽으로 뻗고 잠을 청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집과 돈을 주어 먹고살게 해주었습니다.
그런데도 나보다 부처님을 더 존경하는 것이었습니다.”
파세나디 왕은 이 얘기 말미에 무엇이 저들을 그토록
감동시켰는가에 대한 의견을 말한다.
그것은 부처님이 탐욕과 분노와 집착을 줄인 ‘무소착(無所着)
의 정각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세속적 권력이나 재력이나 학식보다 탐진치를 줄인
수행자다운 면모가 존경을 불러일으킨다는 뜻이다.
이것이야말로 불법이 훌륭해 보이는 결정적 이유였다.
그래서 중국의 위산영우화상은 <경훈(警訓)>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가르쳤다.
“수행자가 훌륭하면 불법도 훌륭해 보이고(僧重法重)
수행자가 엉터리면 불법도 엉터리로 보인다.(僧輕法輕)”
어디 수행자만이겠는가. 정치인이든 기업가든 새겨둘 만한 말씀이다.
홍사성 논설고문· 시인.
[불교신문 3843호/2024년10월29일자]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명상개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명상은 행복해지는 것이다! (0) | 2025.04.05 |
---|---|
업장의 개념 (0) | 2025.04.04 |
염불은 알고보면 첨단 과학이다. (0) | 2025.04.03 |
S 늘 자기 자신에게 의지하자! (0) | 2025.04.02 |
S 생각과 말과 행동은 동일한 요소 (0) | 2025.03.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