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상하는 이가 마음속에 무언가를 구하거나,
잡다한 생각을 품게 되면 마음의 문이 허술해지고
틈이 생기게 된다.
예를 들어 시험공부를 하면서도 합격증만을
상상한다면, 책에 집중하기보다 꿈속을 헤매게
되는 것과 같다.
명상도 마찬가지다. 명상하는 이는 어떠한 것도
구하려는 마음이 없어야 한다.
어떤 이는 깨달음을 빨리 얻기를 바라기도 하고,
스승의 화신을 만나기를 소망하기도 하며,
도가 확실히 드러나기를 기다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마음은 모두 “마(魔)”를 불러들이는
초청장과 같다.
마음은 본래 형상이 없는데,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여러 경계(境界)가 일어나는 것이다.
부처님들의 지혜가 삼세(과거·현재·미래)에 통하지만,
아직 그 도리를 투명하게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진리는 이렇게 말한다.
“만법은 마음에서 일어난다. 일심은 본래 형상이
없는데, 어찌 도의 길에 특별히 드러나는 경계가
있겠는가?”
이 도리를 확실히 알아야 한다.
따라서 명상 중에 “어떤 경계가 나타났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공부 태도에 허점이 있거나 바른
이해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예컨대 물을 들여다보는데 물결이 흔들린다면,
이는 물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들여다보는
마음이 요동치기 때문인 것과 같다.
경계가 일어날 때는 공부가 곁길로 흘렀음을 즉시
깨닫고, 기본으로 돌아가 자신을 차분히 점검해야 한다.
그러면 경계는 억지로 없애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사라지고, 공부는 더욱 깊어진다.
명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꾸준히 집중할 줄 아는
힘’이다.
이는 씨앗을 뿌리고 매일 물을 주어야 꽃이 피는 것과
같다.
어느 날은 빨리 꽃이 피기를 원하고, 어느 날은
특별한 꽃을 기다리면 오히려 싹이 시들어 버린다.
대체로 명상을 방해하는 경계는 세 가지로 나타난다.
첫째, 눈에 어떤 형상이 보이는 경우,
둘째,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경우,
셋째, 마음에 알 수 없는 기운이나 느낌이 드는 경우다.
이때 명상가는 모두 “진리가 아니다”라고 단정하고,
아예 마음에 담아두지 않아야 한다. 설령 그 경계가
신묘하여 마치 법문을 설하는 듯 보이더라도, 결국은
‘마의 경계’일 뿐임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경계가 나타나는 이유는 마음에 아직 망념의
뿌리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물이 샘터에서 조금씩 새어 나오면 큰 강물이 되지
못하는 것처럼, 작은 누수가 공부의 힘을 흩트린다.
이 사실을 알고 마음을 크게 돌이켜 오직 공부에만
전념해야 한다.
사실 이런 때야말로 지혜와 용맹심을 시험해볼 아주
좋은 기회다.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앉아 있으면, 경계는 스승이
주는 ‘가짜 시험지’일 뿐임을 알게 된다.
시험지를 통과하면, 오히려 공부는 한층 더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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