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진정한 염불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내가 부르는 바로 그 부처님을 목숨을
다할 만큼 처절하고 간절한 그리움으로
불러야 한다고 믿었다.
그 믿음에는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부처님께 조건을 두지 않기로 했다.
내 삶 전체를 걸고, 마음을 통째로 내어
맡기듯 무조건적으로 올인하기로 했다.
생각도, 판단도, 감정마저도 하나도 남기지
않고 그분께 맡기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그렇게 마음의 방향이 정해진 뒤부터였다.
부처님의 명호가 내 곁을 떠나지 않기 시작한
것은.어느 순간부터 염불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하나의 몸처럼 늘 함께 숨 쉬고
있었다.
염불은 끊어지지 않고 이어졌고, 그 흐름
속에서 나는 자연스레 염불삼매에 들었다.
의식적으로 애쓰지 않아도 마음은 깊이
잠기듯 고요해졌고, 그 고요의 중심에서
자성불이 분명히 드러났다.
그 이후로 부처님의 명호와 나는 더 이상
둘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떤 이해나 생각이 아니라, 명백한
체험이었다.
이제는 나의 심장 안에서 부처님의 명호가
저절로 울린다.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애쓰지 않아도,
환희심 속에서 끝없이 이어진다.
그곳에는 생각하는 개인적인 나도 없고,
무언가를 선택하고 판단하는 에고의 흔적도 없다.
오직 모든 행위에 대해 자연스럽게 책임지는
자성불만이 또렷이 깨어 있을 뿐이다.
이 상태에서는 ‘내가 수행한다’는 느낌조차
사라진다.
그저 자성불을 잊지 않고 항상 자각할 뿐이다.
그러면 염불은 저절로 깊어지고, 저절로 이어진다.
예전에는 현실과 나 자신에 대한 자각이
끊임없이 마음을 채우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 자리를 자성불에 대한 자각이 온전히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근심과 걱정을 붙잡을 이유는
없다는 것을 그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온
마음을 다해 염불에 몸을 맡기는 것이 가장
곧은 길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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