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한때 스스로를 수행자라고 생각했다.
생활 속에서도 염불을 놓지 않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입으로 “아미타불”을 되뇌었다.
밥을 먹으면서도 염불, 길을 걸으면서도 염불,
심지어 취미처럼 염불을 했다.
그때의 나는 확신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언젠가는 분명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도, 내 마음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화가 나면 참지 못해 괴로워 했고,
돈이나 명예에 대한 욕심은 그대로였으며,
불안과 두려움도 조금도 줄지 않았다.
염불을 계속 하고 있던 나는 혼란스러웠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왜 나는 그대로인가?”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지동자 운전을 하다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생사의 경계에 놓이게 되었고, 그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살기 위해 염불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의 염불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랐다.
형식도 없었고, 여유도 없었으며, 멋도 없었다.
그저…“부처님! 제발 살려주십시오”
“부처님! 제발 살게 해주십시오”
온 마음이 하나로 모여, 단 한 생각만 남아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알았다.
아…
내가 그동안 해왔던 것은 염불이 아니었구나.
그전의 나는 입으로만 염불을 한다고 했지,
마음으로는 단 한 번도 염불한 적이 없었다.
그저 습관이었고, 그저 자기 위안이었으며,
그저 “잘 하고 있다”고 하는 착각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염불의 묘리를 깨달았다.
염불은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깊게 하는
것이다.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던지는 것이다.
불경에 “응무소주 이생기심”이라는 말이 있다.
마음이 머무는 것이 없이 본 마음을 내라는 말,
예전의 나는 그 말을 수없이 보고 들었지만,
단 한 번도 그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날의 경험 이후, 나는 비로소 그 말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사람은 누구나 안다. 무엇이 중요한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하지만 우리는 늘 감정에
휘둘리고, 에고에 끌려 다니며, 정작 자기
본마음은 외면한다.
나 또한 그랬다. 그래서 지금 나는 더 이상
“얼마나 많이 염불을 했는가”를 묻지 않는다.
대신 나 스스로에게 진심으로 묻는다.
“염불을 하는 나는 지금, 정말로 간절한가?”
무심코 하는 백 번의 염불보다, 온 존재를
던진 한 번의 염불이 사람을 바꾼다는 것을
나는 그날, 내 몸으로 배웠다.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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