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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의욕자극

비로자나불의 현신

by 법천선생 2006. 8. 12.

-이라 했다. 이미 90에 가까운 그 노수행자는.

아직 한창 나이인 시자 한 명을 곁에 두고 있었다.

 

우주의 최고 위치에 있다는 비로자나불

- 그 위대한 영혼이 현신하신 분을 스승으로 시봉하기를 벌써 20여년,

그 영광이 얼마나 자부스러웠으랴, 젊은 시자는 택시에 타서부터 스승자랑이었다.

 

과연 노스승의 풍채는 남다른 데가 있었다.

90세월에 낡고 닳은 육신이었지만 맹수의 그것처럼 매서운 눈매에 치켜오른 눈썹이며

--- 일생을 두고 떨쳤을 맹위의 흔적이 역역했다.

 

더구나 빙긋 웃으며 건네는 말씀이 내 영혼의 비밀스런 영역을 슬쩍 들춰내는 게 아닌가.

신통 또한 여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간간히 건네는 말씀에도 바른 수행의 길을 적시하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나는 도통 시자의 자랑을 수긍할 수 없었다.

 

노스승의 외모에서 풍기는 매찬 기운과 신통의 언질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같이 하고 있는 내내 나는 견디기 힘든 자장 때문에 고통스러웠던 것이다.

비로자나불의 현신이라는 분에게서 쏟아져 나오는, 저 옭죄어 오는 듯한,

뭔가가 꽉 짓누르는 듯한, 답답하고 지끈지끈 동통으로 짓쳐오는

지독스러운 에너지의 자장. 자장이 이렇다면 '비로자나불'이 어떤 상태일지

능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바른 수행자는 한없이 부드럽고 맑고 밝으며 편안하고

화평한 자장을 가지고 있어서, 곁에만 있어도 나의 영체와 마음과

육신이 절로 편안해지고 맑아져온다.

 

그런 수행인이 거처하고 있는 장소에 가도 그러하다.

그가 사용하고 있는 물건에도, 심지어는 그가 쓴 글에도 그런 자장이 배어 있기 마련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렇게 밝고 맑은 자장을 가진 사람들일수록

놀랍도록 단순하고 순박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좀 어리숙한, 뭔가 하나 갖춰야 될 것이 빠져 있는 듯한 느낌 말이다.

극도로 정화가 되어 있는 수행인이나 스승들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정화의 자장을 가지고 있어서 그의 곁에 있거나,

 

그를 생각하거나, 그가 건네준 물건이나 음식을 접하기만 해도

실로 놀라운 진보가 있게 된다.

 

부처가 법화경에서 '나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그림으로

그린 사람도 해탈할 것'이라하고, 능엄경에서 관음보살이

 

'나의 이름을 부르면 어떤 업장도 다 녹일 수 있다'고 한 것이나,

예수가 최후의 만찬 때 제자들에게 '이는 나의 몸이다'라시며

음식 몇 조각씩 나눠 주신 이유,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지 않으면 말라버릴 것이다.'라고 하신 이유,

현대의 전설적인 수행인들에 비해 특별히 많이 정진한 것 같지도 않은

 제자들이 대거 성인이 되어간 비밀도 거기에 있지 않나 한다.

 

수행하는 사람들 중에, 특히 실로 대단한 경지에 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 중에도

'비로자나불의 현신' 같은 열악한 상태에 빠져 있는 이들도 적지 않은 것 같다.

 

'노비로자나불'은 그래도 순박한 경우다.

하느님이 강림한 존재라 하면, 대부분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신인일체(神人一體) 천인묘합(天人妙合)의 수사가

곁들여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턱하고 깨치면 곧 내가 신이요 비로자나불이라라는 수사를

귀 따갑도록 들어오지 않았는가?

 

가 어떤 경지에 있는지를 선문답이나 그가 말하는 진리의 내용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들은 오히려 미혹하게 만들어 판단을 흐리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영체가 품어내는 에너지의 자장은 결코 속일 수가 없다.

 

아직 영적 센서의 감지력이 예민해 있지 않은 분들은,

자신이 주목하는 이가 얼마나 겸손한지를, 그 겸손이 위선이 아닌지를,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도 모르게' 사랑을 베풀고 있는지를,

 

얼마나 순수하고 순박하며 안으로 자비로운 지를,

얼마나 어린애스럽게 천진하고 단순한가를,

드러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고 숨기를 좋아하는가를,

그가 수행에 대해 말할 때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어휘와

편안한 용어로 논리정연하게 하고 있는가를,

 

특히 그의 곁에 있으면 절로 편안해지고 안온해지는지를,

웬지 모르게 자꾸만 그에게 끌리는지를 꼼꼼히 점검하는

'불경'을 범하는 데 주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차상을 물리고 떠나는 비로자나불의 시자에게, 혹 화내지나 않을까 조심조심하면서

능엄경을 세심히 읽어보라 권하였다.

 

50종변마, 수행 중에 일어날 수 있는 마의 경지 50가지를

너무나 섬세하게 설파해 놓으신 부처님의 가르침을 읽다 보면,

 

'스스로 창조주라는 생각이 들고, 부처가 나의 자식이라는 마음'이 나는

마경이 있음을 알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모시고 있는 분이 부처를 자식처럼 여기는 비로자나불의 현신이라 여기고 있으니

불경이 눈에 들어올 리 없겠지만.

 

일생을 두고 모신 최고의 스승이 마경에 든 이라?

스승 자신도 그걸 모르고, 모시는 자신도 그걸 알지 못한 채

생을 마치게 될 수도 있거니, 이 누구의 허물일까?

 

수행하고자 하는 이는 경계하고 경계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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