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명상의욕자극

과학자의 눈으로 본 영적세계

by 법천선생 2011. 6. 17.

영혼들의 세계는 일종의 학교 같은 곳이다. '학교'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두드러기를 일으킬 분도 많을 것 같다. 그러나 이 영혼들의 학교는 지구의 학교와는 전혀 다른 곳이다. 이곳은 학교 건물도 없고, 교장선생님 같은 관료체계도 없으며, 무엇보다 수학이나 영어 같은 곳을 배울 필요가 전혀 없는 곳이다. 말하자면 그곳은 넓은 들판에 아름다운 꽃들이 방긋방긋 피어 있고 깔깔거리며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생활하는 곳이다. 그들은 그렇다면 어떤 공부를 하는가? 그들의 과목은 사랑, 용서, 용기, 현명함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교과서는 바로 인생이다. 그곳에는 커다란 도서관이 있고, 거기에는 지구는 물론 우주 모든 생명의 세계에서 존재했던 인생에 관한 책들이 가득하다. 영혼들은 친구들과 놀다가 그곳에 가서 인생의 책들을 들여다보며 자기가 전생에 살았던 인생에서 어떤 부분이 부족했는지를 다시 되새겨 보게 된다. 그리고 또 다른 생으로의 환생을 준비하게 된다.


 영혼들은 20명 정도가 모여 일정한 그룹을 이루고 있으며 그 그룹은 또 5명 정도의 소단위 그룹으로 나뉘어진다. 가장 작은 단위의 5명은 가장 친한 영혼들로 그들은 서로 긴밀한 유대감을 지니고 있으며, 친구가 지구로부터 돌아오면 제일 먼저 마중 나와 반겨준다. 그리고 대개는 함께 같은 세계에 환생을 해서 서로 도우며 살아간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소울 메이트'는 바로 이 그룹의 멤버인 경우이다.(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한다)


 영혼들은 마음의 레벨을 가지고 있어서 레벨에 따라 저마다 다른 빛깔로 빛난다. 가장 성숙도가 낮은 어린 영혼은 새하얀 빛을 발하고, 점점 성숙해질 수록 붉은빛, 초록빛, 푸른빛을 거쳐 원숙한 경지에 다다르며 보랏빛이 된다고 한다. 보랏빛이 된 영혼은 거의 더 이상은 지구나 다른 세계로 환생을 하지 않기 때문에 마이클 뉴턴도 실제로 그런 영혼을 지닌 사람은 거의 만나보지 못했다고 한다.


 갓 태어난 어린 영혼들은 지구나 다른 세계로 환생해서 인생을 경험함으로써 성숙해지려고 노력한다. 그들은 인생에서 맞닥뜨리는 문제 상황과 고통을 현명하게 대처하고 인내하는 것을 통해 영혼의 성숙을 이룬다. 그러나 어린 영혼들은 그런 문제를 잘 견뎌내지 못해 쉽게 자살로 인생을 포기하거나 잘못된 인생을 살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영혼들은 지구에서의 생을 끝난 뒤 영혼들의 세계로 돌아가면 친구들의 놀림을 받는다. 그러나 이 놀림도 우리들이 생각하는 왕따 같은 분위기는 전혀 아니고 서로 끈끈한 유대감을 지닌 채로 진심어린 격려와 위로의 말을 동반한 따뜻한 느낌의 장난이다.


 영혼이 지구로 오는 방법은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과는 좀 다르다. 영혼이라는 몸체가 있어서 그 물질이 지구로 와서 우리 몸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영혼이 환생을 할 준비가 되면 환생을 하는 집으로 보내져 다시 어둠의 터널을 지나 갓 태어나려는 아기에게로 가는데 그 경우에도 영혼은 여전히 영혼들의 세계에서 존재한다. 많은 피험자들은 그 모습을 잠을 잔다는 형식으로 표현했다. 영혼이 잠자는 동안 꾸는 꿈이 곧 우리의 인생인 것이다. 문득 장자가 생각나지 않는가? 영혼이 잠자는 동안 우리는 인생을 살고, 우리가 잠자는 동안은 영혼은 잠시 깨어나서 영혼의 세계를 돌아다닌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양자론에 의하면 미세한 입자는 두 개 이상의 공간에 공존할 수 있다. 자 여기에 중간에 칸막이가 설치된 상자가 하나있다. 뚜껑을 열기 전에는 A칸과 B칸에 모두 하나의 똑같은 구름이 공존하고 있다. 그러나 진짜 그런지 보려고 우리가 뚜껑을 열어보는 순간 구름은 A칸이나 B칸 둘 중의 한 곳에만 존재하게 된다. 왜 그럴까? 왜 그런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그것이 미세입자의 속성인 것을 인정할 수밖에.


 영혼은 빛의 알갱이라고 말한 바 있다. 영혼의 세계와 지구 두 개의 공간이 있다. 존재는 두 세계에 공존하고 있다. 이 순간 우리가 영혼을 보려고 할 때는 지구의 몸이 사라지고, 지구의 몸을 보려고 하면 영혼이 사라지는 것이다. 즉, 우리는 둘 중의 하나 밖에 볼 수 없다. 인도의 명상가들은 이런 것을 늘 경험하며 산다. 소위 유체이탈이라고 불리는 현상으로 자신의 본질에 다가가 미세한 영혼의 빛 알갱이를 관찰하려고 집중을 하면 자신은 지구의 몸의 존재가 아닌 몸을 벗어난 영혼의 존재로 존재하게 된다. 그때는 자신의 영혼을 제어할 수는 있지만, 자신의 몸은 더 이상 움직이게 할 수 없다.


 양자론과의 이 관계는 내가 생각해낸 것인데 아직은 모순점이 많이 있는 게 사실이다. 좀 더 연구를 해봐야할 것이다. 그러나 조금 엉성함에도 불구하고 양자론에 의해 영혼이 두 세계에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입증 가능하다.


 영혼은 이런 방식으로 환생에 환생을 거듭하며 성장해 간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은 아직 명확하게는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다만 영혼들은 영혼들의 세계 가장자리(영혼들의 세계는 원형이다. 원 둘레의 가장자리를 지칭)에 태어나서 어떤 그 세계의 중심 방향으로 가려는 속성이 있다. 그 방향에는 이른 바 우리가 창조주, 조물주라고 부르는 존재가 있다. 그러나 이것도 명확한 표현은 아니다. 영혼들의 말에 의하면 이 중심에 있는 무엇은 인격적인 차원의 무엇이 아니다. 따라서 나는 이 무엇을 거북섬원주민의 표현을 빌려 '위대한신비'로 지칭하도록 하겠다. '위대한신비'는 사실 공간적으로 중앙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위대한신비'는 영혼들의 세계 자체이기도 하다. '위대한신비'는 따스한 빛의 커튼으로 영혼들의 세계를 감싸고 있다. 그렇다면 '위대한신비'는 모든 곳에 존재하는 것과도 같다. 이것은 빛이 파의 성질을 가짐과 동시에 입자로도 존재한다는 양자론의 이론으로 설명가능할 것이다.


 양자론에 의하면 빛을 파로서 관찰할 때는 빛이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있지만,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반대로 입자로서 관찰할 때는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있지만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위대한신비'가 있는 곳을 중앙으로 설정한다면 '위대한신비'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는 모르게 된다. 그러나 '위대한신비' 항상 움직이고 영혼들을 보듬어주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래서 '위대한신비' 가 모든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을 관찰하면 '위대한신비'가 과연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게 된다. 한 곳에 존재하기도 하고 모든 곳에 있기도 한 것. 그것이 '위대한신비'가 아닐까. 사람들이 신은 하늘나라에 있다고 믿으면서 동시에 우리들 마음 속에 모두 있다고도 믿는 것처럼. 이것을 모순이라고 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사실은 매우 과학적인 생각일 수도 있는 것이다.


 영혼은 성장하여 푸른빛이나 보랏빛을 발하는 높은 레벨에 이르면 창조하는 기술을 배운다고 한다. 에너지를 모아 우주에 존재하는 원소들을 서로 결합시킴으로써 바위나 씨앗 같은 것을 만드는 훈련을 한다는 것이다. 아주 높은 레벨의 영혼은 '위대한신비'를 도와 지금도 우주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부분을 자세히 알기 위해서는 아주 높은 레벨의 영혼들의 진술이 필요한데 그들은 더 이상 지구에 환생하지 않으므로, 창조에 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서양은 끊임없이 존재를 몸과 영혼으로 이원론적으로 나누고 불변하는 영혼에 대한 탐구를 계속해온 반면 동양은 존재를 일원론적으로 파악하고 몸과 정신은 서로 분리할 수 없는 유기적인 하나의 시스템이라고 보아왔다. 동양학자는 서양을 까고, 서양학자는 동양을 까지만 나는 이 둘이 모두 맞다고 생각한다. 도망가기 쉬운 양비론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나 나의 생각에는 동서양의 생각을 모두 합칠 때 비로소 완전한 존재에 대한 결론이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즉, 인간은 지구라는 공간에 한 해서는 일원론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지만, 영혼의 세계까지 포함한다면 이원론적으로도 존재가 가능한 것이다. 서양의 말처럼 영혼은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도 있지만 영혼이 지구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몸을 기반으로 해서 살 수밖에 없다. 또한 이 영혼은 서양의 믿음처럼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처럼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해 나가는 존재이다. 매우 복잡한 이야기지만 이 영혼들은 또한 개체이면서 '위대한신비'의 에너지의 일부이기도 하다. 영혼들 각각 개체이면서 모두가 하나로 이어진 존재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정말 알쏭달쏭한 이야기지만 이런 생각은 동양의 생각과 일맥상통한다. 동양에서는 모든 존재가 연관된 인드라망의 사슬로 이어져 있다고 본다.


 서양의 개인주의와 동양의 공동체주의는 서로 정반대인 것 같지만 사실은 아닐지도 모른다. 모든 존재는 개인인 동시에 공동체이고, 공동체이면서 개인이다. 존재는 이원론적이면서 일원론적으로 움직이고, 일원론적이면서 이원론적으로 사고한다. 이 모순들은 마치 양자론의 모순과도 같다. 어느 하나를 관찰해서 취하면 어느 하나가 사라지고 마는. 사실 인생의 모든 선택들의 모습도 이과 다르지 않다. 어느 한 곳에 주목하면 어느 한 곳은 사라진다. 우리는 이 모두를 한꺼번에 볼 수는 없을까. 뚜껑을 열고 굳이 확인을 하고 어느 하나의 정답을 내리지 않고, 있는 진실 그대로 모두 받아들여 이해하기는 어려운 것일까. 공자는 이미 이러한 방법을 익힌 성인이었다. 공자는 아마도 보랏빛 영혼이 아니었을까. 공자는 내가 말한 진실을 있는 그대로 전체를 두루 보고 이해하는 방식을 이른바 '중용'이라고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