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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의욕자극

부용스님이야기

by 법천선생 2014. 4. 14.

 


일생을 통해서 발심에서부터 수행,

생사해탈을 몸소 보여준 이가 있습니다.

그는 어디 딴 나라 사람도 아니고 수백년 전

사람도 아니고 책속에 자주 나오는 사람도 아닙니다.


바로 우리와 같은 땅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며

살다간 사람입니다.

번듯한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나 과거 시험

준비를 하던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과거에만 합격하면 탄탄대로를 달릴 것이라는

기대로 공부에 전념하던 청년은
어느날 종로 거리에서 당파싸움에 휘말려

효수를 당한 한 벼슬아치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는 깨닫지요. 세상에 영원한 것,

진실인 것 없구나 하고 말이지요.

 
그 길로 머리를 깎고 출가를 합니다.

바로 무용 스님 일화입니다.

무용 스님이 세수 90이 넘어
어느 날 대중들을 모두 모아놓고는
“내가 오늘 가야 겠다. 뭐 못마땅한 것 있느냐?”하고는
입적하시겠다는 뜻을 밝히셨습니다.

 

못마땅하다고 묻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런데 잠잠한 가운데서 한 어린 시봉승이 말합니다.

 

“스님 오늘은 안되겠습니다. 곧 있으면 설 다가오는데

조금만 더 참아주세요.”라고 말이죠.

무용 스님은 이 시봉승 말을 듣고 기다렸다 며칠 후 다시
대중들을 불러모아 처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도 잠잠함을 깨고 그 시봉승이 한마디 합니다
. “스님, 이번에도 안됩니다. 신도들이 식구들하고 명절 보내고
이제 스님 뵈러 절에 올텐데 참으신 김에 조금만 더 참아주시죠.”  

 

무용 스님은 “그러마”하고는 또 한번 기다립니다.

그리고서는 또 며칠후 대중들을 불러 전과 같이 물었죠.

이번에도 또 그 시봉승이 일어나 말을 하지 않겠습니까.
“스님, 고맙습니다. 이젠 가셔도 되겠습니다.”
그러자 무용 스님이 한 마디 하십니다

 

“정진을 하는데 있어서 생사가 없는 도리를 알아야 하고(知無生死),
생사가 없는 줄을 체험할 줄 알아야 하고(證無生死),
생사 없는 도리를 마음대로 쓸줄 알아야 한다(用無生死).
거기서 일체 중생을 다 제도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무용 스님은 몸소 용무생사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저 세속적 명예만을 위해 공부하던 한 청년이

무상함을 깨닫고 해탈을 이룬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불성이 있음을 깨닫는다면

 발심은 저절로 이뤄집니다.

그 마음 변치 않고 정진한다면

우리도 부처가 될 수 있습니다.
출처 : 법보신문 인환스님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불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걸 모를 뿐입니다.
견성한다는 것은 내게 없는 것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본래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밝혀내는 것

뿐입니다.

불성을 깨닫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천년만년 묵은 동굴의 어둠을 밝힐 때

천년만년의 시간이 필요할까요?

아닙니다.

동굴 안에서 횃불을 켠 순간 밝아집니다.
어둠은 일 초도 안돼서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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