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얘기라서 퍼왔어요~
지난 일요일(24일) 오전 10시 저는 발레리나 강수진을 만났습니다.
2년여 만의 내한공연 ‘오네긴’을 하루 앞두고 급하게 열린 기자회견장이었습니다.
주어진 시간은 딱 1시간. 그는 취재진의 카메라 플래시 세례,
동석한 슈투트가르트발레단 관계자들 틈바구니에 끼어앉아서도
주변의 소음을 잠재우는 흡입력을 발휘했습니다.
외국에서 성장기를 보낸 탓에 ‘give up’이 한국어로 뭐냐고 물어가며
문장을 완성해야 할 때도 있었지만, 확고하고 명료한 사고를
담아내는 말솜씨, 부드러운 미소로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이끌고 갔지요.
저는 이날 강수진을 보면서 ‘나이란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잘못됐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이 유행어는 숫자(나이테)만큼, 얼굴의 주름이 많아지는 만큼
풍부해지는 경험과 이해의 깊이를 과소평가하는 말이지요.
강수진은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서 자신이 가장 나이많은
발레리나인 걸 자랑스러워합니다.
조로하기 쉬운 발레계에서 성공적으로 살아남아서 그런 것은 아닐 겁니다.
그는 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단 하루도 후회스런 날이 없다고 말합니다.
서른일곱살인 지금이 발레리나로서 가장 좋은 시절이라고요.
“한순간도 더할 수 없이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지금이 최선의 상태이고,
그래서 되돌리고 싶지 않다”는 겁니다.
늘 어제를 후회하면서 ‘다시 하루만 거꾸로 되돌릴 수 있다면’
가정해 보는 제 생활에 대해 반성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물론 그는 내일의 걱정으로 오늘을 흘려보내는 일도 없답니다.
은퇴후 계획을 궁금해하는 기자들에게 그는
“제게 지금 중요한 것은
내일 공연을 잘해야 한다는 것뿐”이라고 답했습니다.
여기에는 오늘 열심히 물살을 헤쳐가는 사람은 언제든,
어디든 가닿을 수 있다는 믿음이 깃들어 있습니다.
물론 오늘도 자기 자신과의 싸움은 늘 현재진행형이라는 말도 덧붙였구요.
“발레로 인생을 남김없이 불태워봤기 때문에 다시 태어난다면
발레는 하고싶지 않다. 성악이나 음악 같은 다른 예술을 하고 싶다”는
그를 보면서 상념에 젖었습니다.
늘 끝까지 가보지 못했던 저는 어제로 돌아간다면 더 좋은 기자가 될 것 같고,
옛사랑과 헤어지기 몇달 전으로 돌아가면 그와 절대 헤어지지 않을 것만 같은데 말입니다.
발레리나 강수진에게는 두 얼굴이 있습니다.
스페인계의 강렬한 카리스마와 동양계의 내성적인 순수를 동시에
품은 듯한 얼굴, 그래서 보는 이를 단번에 매혹시키는 얼굴이 한 가지입이다.
그의 아름다운 얼굴과 가장 대척점에 위치한 제2의 얼굴은 그의 발가락입니다.
전 무용동료이자 남편 툰치 쇼크만은 최근 장난으로 그의 발가락 사진을 찍으면서
“피카소적으로 변해간다”고 했을 정도입니다. 스스로도 “요즘은 더 못생겨졌다.
하루 하루 더 기형적으로 변해간다”고 말할 정도이지만 그 끔찍하게 일그러진
발가락이 발레리나 강수진을 받쳐주는 뿌리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처음 그에게 눈길을 준 것은 그의 얼굴 때문이지만,
그에게 마음을 연 것은 그의 발가락 때문이겠지요.
저는 어제 세종문화회관에서 ‘오네긴’을 봤습니다.
‘발레가 이렇게 재밌는 거라면 맨날 보겠다’는 옆좌석 관객의 목소리가 들렸고,
커튼콜때는 객석 전역의 카메라와 핸드폰 플래시 때문에 마치 나이트의
사이키 조명이 번쩍거리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무대에서 새털처럼 날아다니는 강수진의 몸짓 아래
그의 분홍 토슈즈 속 발가락이 보이는 듯해 자꾸만 가슴이 아렸습니다.
누구의 발인지 짐작이나 하시겠습니까...
희귀병을 앓고 있는 사람의 발이 아닙니다.
사람의 발을 닮은 나무뿌리도 아니고
사람들 놀래켜 주자고 조작한 엽기사진 따위도 아닙니다.
예수의 고행을 좇아나선 순례자의 발도 이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명실공히 세계 발레계의 탑이라는 데 누구도 이견을
제시하지 않을,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입니다.
그 세련되고 아름다은 미소를 가진,
세계 각국의 내로라 하는 발레리노들이 그녀의 파트너가
되기를 열망하는, 강수진 말입니다.
처음 이 사진을 보았을 때 심장이 어찌나 격렬히 뛰는지
한동안 두 손으로 심장을 지그시 누르고 있었답니다.
하마터면 또 눈물을 툭툭 떨굴 뻔 하였지요.
감동이란... 이런 것이로구나..
예수가 어느 창녀의 발에 입 맞추었듯,
저도 그녀의 발등에 입맞추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마치 신을 마주 한 듯, 경이로운 감격에 휩싸였던 것이지요.
그녀의 발은,
그녀의 성공이 결코 하루 아침에 이뤄진
신데렐라의 유리구두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하루 열아홉 시간씩, 1년에 천여 켤레의 토슈즈가 닳아 떨어지도록,
말짱하던 발이 저 지경이 되도록...
그야말로 노력한 만큼 얻어낸 마땅한 결과일 뿐입니다.
그녀의 발을 한참 들여다 보고..
저를 들여다 봅니다.
너는 무엇을.. 대체 얼마나... 했느냐...
그녀의 발이 저를 나무랍니다.
인정합니다.
엄살만 심했습니다.
욕심만 많았습니다.
반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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