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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천건강연구소/법천웰다잉

죽는데 필요한 3가지 훈련

by 법천선생 2016. 1. 24.

죽기 위한 연습

죽는 데는 다음 세 가지 연습이 필요하다.

1. 먼저, 마음의 성품에 안주하거나 자기가 해온 수행의 고갱이를 잊지 않고 지킨다.

2. 그 다음으로는 의식의 탈바꿈인 포와 수행을 한다.

3. 마지막으로 기도와 헌신, 열망, 깨달으신 이들의 축복에 의지한다.


‘포와’ 의식의 탈바꿈

이제 죽음의 바르도가 내게 뚜렷해지니,

내 모든 욕심과 바램과 매달림을 버리고

흐트러짐 없이 가르침의 뚜렷한 인식으로 접어 들어가리.

그리고 내 의식을 저 태어남 없이 리그파의 공간으로 몰아내리.

나는 이 살과 피로 된 몸뚱이를 떠나리니,

이 몸뚱이가 덧없는 환상인 것을 알게 되리.

“의식을 저 태어남 없는 리그파의 공간으로 몰아낸다.”는 것은 의식의 탈바꿈 곧 포와 수행을 말한다. 이 수행법은 죽음을 맞이할 때 가장 많이 행하는데, 죽음의 중간시기인 바르도와 관련된 특별한 가르침이다. 포와는 요가와 명상수행법으로 죽어가는 이를 돕고 죽음을 준비하는데 몇 세기 동안 써온 방법이다. 그 원칙은 죽어가는 순간에 포와 수행자가 자기의 의식을 몰아내어 그 의식을 부처님의 지혜 마음, 곧 파드마삼바바(연화생)스님이 “태어남 없는 리그파의 공간”이라고 부른 것과 하나로 되게 하는 것이다. 이 수행은 개인이 몸소 하거나, 그 개인을 위해 자격 있는 스승이나 다른 뛰어난 수행자가 해 줄 수 있다.

포와 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수행자의 능력과 경험, 사람마다의 훈련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가장 많이 행하는 포와 수행은 “세 가지를 인식하는 포와”로, 우리 몸 가운데 경락을 길로 여기고 우리의 의식을 길가는 사람으로 여기며, 부처님 세계(불지, 佛地)를 갈 곳으로 여기는 것이다.

포와는 일과 가족에 묶여서 명상 수행을 오래 안 한 이들도 해탈을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종종 일컫는다.

포와 수행에서 가장 중심 되는 기원대상은 아미타불, 곧 끝없는 빛의 부처님이다. 아미타불은 우리의 맑은 마음을 나타내고, 인간계의 주된 감정인 욕망의 변화를 상징한다. 죽음에 이르면 마음의 참된 본성은 빛의 새벽을 맞는 순간에 드러나게 될 것이나, 우리 모두가 그 참된 본성을 깨달을 만큼 참된 본성과 가깝지는 않으리라….

죽음에 도달하면 우리 의식은 ‘바람’을 타게 되어 몸뚱이를 떠날 수 있는 틈이 필요하게 되므로 몸에 있는 아홉 구멍 가운데 어느 한 곳을 통해 몸을 빠져 나갈 수 있다고 한다. 의식이 빠져나가는 길이 바로 우리가 어떻게 다시 태어나는가를 결정한다. 의식이 숫구멍, 곧 정수리로 빠져 나가면 정토에 태어나 점차 해탈할 수 있게 된다.

이 수행은 반드시 자격 있는 스승의 지도 아래 행해야 한다. 이 수행을 마치는 데는 아주 명석한 지식이 있어야 되는 것이 아니고 다만, 믿음과 자비 한 곳을 생생하게 그리는 것, 아미타불이 앞에 계신다는 깊은 느낌이 있으면 된다. 이 수행을 연습하는 학생은 가르침을 받고 머리 꼭대기가 가렵거나, 머리가 아프거나, 뚜렷한 유동체(流動體)가 나타나거나, 숫구멍의 둘레가 부풀거나 부드러워지기도 한다. 심지어는 숫구멍에 작은 구멍이 생기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에는 수행을 얼마나 잘 했는지 알아보려고 예로부터 풀줄기 끝을 구멍에 집어넣는다.

일본 과학자 히로시 모토야마 박사는 포와 수행의 정신생리학 효과를 연구했다. 뇌파전위기록장치(EEG)를 재보니 포와 수행을 하는 동안 뇌파는 다른 명상을 하는 요가 수행자들의 뇌파와 아주 다르게 나왔다. 포와 수행은 두뇌의 시상하부를 자극할 뿐만 아니라 보통의 의식정신작용을 멈추게 하여 명상의 깊은 경지에 들어가게 한다는 것이다.

때때로 보통 사람들도 포와 수행의 축복을 받아 강한 시각 경험을 할 수 있다. 부처님 세계의 평화와 빛을 얼핏 보고 아미타불을 보는 것은 죽음을 맞을 때의 경험과 비슷한 데가 있다. 죽음을 맞을 때 포와수행을 잘 하면 죽음을 대하여 안심을 하게 되고 두려움을 갖지 않게 된다.

죽음을 맞는 연습으로 하는 포와 수행은 아무 때나 위험 없이 할 수 있다. 하지만 전통으로 내려오는 포와 수행에서 시간을 맞추는 것은 그야말로 중요하다. 보기를 들어 누가 자기가 자연스레 죽기도 전에 자기의식을 진짜로 옮겼다면 그것은 자살과도 같은 것이다. 포와를 해야 할 때는 바로 바깥 숨은 끊어지고 몸 안쪽 숨은 이어지고 있을 때다. 그러나 다음 장에서 소개할 소멸시기에 포와 수행을 시작해서 몇 번 되풀이하는 것이 아마 가장 안전하리라.

전통 포와 수행에 정통한 포와 스승이 죽어가는 사람을 위해 포와를 행하여 죽어가는 이의 의식을 눈으로 보듯 하여 숫구멍으로 끄집어 낼 때에는 반드시 알맞은 시간을 택해 너무 이르지 않게 해야 한다. 하지만 포와 수행에 뛰어난 수행자는 죽음의 과정을 잘 알므로 경락이나 ‘바람’의 움직임, 몸의 열을 조사해서 포와를 언제 해야  할지를 알 수 있다. 죽어가는 누군가를 위해 스승을 청한다면 되도록 빨리 그 사람과 스승이 연결되어야 한다. 포와는 서로 떨어져 있어도 효과를 낼 수 있다.

마음 상태가 좋지 않거나, 어떤 것에 대한 아무리 작은 바람이라도 든다면 죽음을 맞아 걸림새가 될 것이므로 눈꼽 만한 나쁜 생각이나 갈망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해야 한다. 티벳에서는 짐승 가죽이나 털로 만든 것이 죽어가는 사람의 방에 있으면 포와를 성취하기가 어렵다고 본다. 또 어떤 종류의 약품이든 연기를 내는 것은 가운데 경락을 막아서 포와를 더 어렵게 할 것이다.

죽어가는 사람이 덕과 수행이 모자라고 또 스승이 그를 위해 포와를 완전히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스승은 죽어가는 사람의 내세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 이 포와 수행은 죽어가는 사람을 더 나은 세계로 태어나게 도울 수 있다. 하지만 포와 수행을 잘 성취하려면 조건을 나무랄 데 없이 갖춰야 한다. 포와는 업이 아주 무거운 사람도 도울 수 있지만 그가 포와를 실행하는 스승과 가깝고 순수한 관계에 있고, 포와의 가르침을 믿으며, 그가 참마음으로 깨끗하게 되기를 청할 때만 가능하다.

티벳에서는 죽어가는 사람의 가족들이 대개 라마들을 여러 명 초청해서 징후가 나타날 때까지 포와를 자꾸 행한다. 그 시간은 몇 시간이나 하루 종일 걸릴 수도 있는데 이 시간은 주로 죽어가는 사람의 업에 따라 다르다.

티벳에서는 포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특별한 힘을 가진 이들이 있었는데, 그 징후는 누구나 볼 수 있게 드러나곤 했다. 때때로 죽어가는 사람의 숫구멍 둘레에 있는 머리카락이 왕창 떨어져나가기도 하고 정수리가 따뜻해지거나 부풀어 오르는 것이 느껴지거나 보이기도 한다. 아주 드물게는 스승이나 수행자가 아주 뛰어나서 죽어가는 사람이 탈바꿈을 하도록 그들이 염불을 몇 구절 읊으면 방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기절하거나, 죽은 사람의 의식이 큰 힘으로 몰아대는 바람에 머리에서 뼈 조각이 튀어오르는 수도 있었다.

 몸뚱이를 떠나기

우리 몸뚱이가 그저 환상이라는 것을 알고 죽음을 맞으면 우리는 두려움 없이 몸뚱이의 성품을 깨닫고, 우리를 매달리는 데서 가만히 놓아버리고 기꺼이 몸뚱이를 두고 떠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를 이해하는 것을 오랫동안 한정하고 지배해 왔던 몸뚱이에서 마침내 풀려나면 한 삶의 업식은 다 사라지고 앞으로 일어날만한 업이라는 것도 구체화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죽음에서 일어나는 것이란 끝없는 가능성이 있는 ‘틈’, 또는 공간이다. 이것은 엄청나고 뜻깊은 힘의 순간으로, 다만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이 얼마나 곧바르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죽음의 순간에 마음의 본성을 이미 굳게 깨달았다면 한순간에 우리는 우리의 업을 깨끗이 할 수 있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그 굳은 깨달음을 이어간다면 우리는 우리 마음의 본성의 근본이 되는 맑음을 넓힘으로써 우리의 업을 모조리 없애고 자유를 얻을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