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봉거사가 수행에 힘 쓴 것은 1963년 6월,
그의 나이 56세 때가 되어서야 시작된다.
백봉 거사는 충남 심우사 주지스님에게
“요술이나 좀 가르쳐달라”고 할 만큼
불법엔 전혀 문외한이라 할 정도로 무지했다.
그러나 그는 마음이 갓난아기처럼 순수했고,
세상일 무엇을 하든지 언제나 철저하게 했다.
주지스님으로부터 ‘무자(無字)’ 화두를 받고
용맹정진을 감행하던 그는 1964년 1월,
도반들과 함께 보름간 용맹정진하기로 하고
다시 심우사로 주지스님에게로 찾아 갔다.
이때는 밥도 먹지 않고 잠도 자지 않았다.
백봉 거사에게 어떤 변화가 생기고 있음을
감지한 도반들이 몰래 그를 돌보기 시작했다.
도반들이 법당에서 예불하고 참선하는 사이
백봉 거사는 남몰래 나와 눈 내리는 바위 위에서
홀로 좌선에 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4~5리쯤 떨어진 아랫마을 사람들이 어느 집
사랑방에서 어울려 놀다 집으로 가던 중 암자가
있는 곳에서 불빛이 솟구치는 것을 보았다.
마을 사람들은 그런 광명이 솟는 곳엔 금광이나
금불상이 있다는 속설을 들은 바 있었기에 삽과
곡괭이를 들고 모두들 올라갔다.
그 빛이 나는 곳에 가보니, 정작 바위 위엔
눈에 싸인 사람의 코만 빠끔히 나와 있었다.
살펴보니 온 몸이 추위에 온통 얼어붙은 채
숨소리만 아주 가늘게 미약하게 내뿜고 있었다.
사람들이 꽁꽁 언 그를 방으로 옮겨 뉘어 주물렀다.
한 도반이 선사의 어록을 가져와 읽어주었다.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非心非佛].”
그 순간 백봉 거사가 깜짝 놀라며 벌떡 일어섰다.
그 때 그의 몸이 눈부시게 빛나기 시작하였다.
또 다시 휘황찬란한 방광이 시작된 것이었다.
바로 그 때 암자 아랫마을로부터 예배당의
새벽 종소리가 동네에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그 순간 백봉의 몸이 텅 비고 욕계, 색계, 무색계도
비고, 천당과 지옥마저 비어 툭 터져 버렸다.
몸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 일체가 허공인
일원상의 경지를 체득한 것이다.
홀연히도 들리나니 종소리는 어디서 오나
까마득한 하늘이라 내 집안이 분명허이
한 입으로 삼천계를 고스란히 삼켰더니
물은 물은, 뫼는 뫼는, 스스로가 밝더구나!
忽聞鐘聲何處來 廖廖長天是吾家 一
口呑盡三千界 水水山山各自明
백봉 거사는 깨달음의 경지를 이렇게 읊었다.
57세에 화두를 잡은 이래로 1년도 되지 않아
‘확철대오’를 함으로서 거사는 육조혜능 선사처럼
돈오(頓悟)를 체현한 것이다.
한 도반이 바로 백봉 거사에게 《금강경》을
한 구절씩 들려주자 단 하루만에 이를 명쾌하게
풀어냈다.
이것이 백봉의 《금강경 강송》이다.
그 때까지 백봉 거사는 《금강경》 한번 읽어본
적이 없었다.
혜능 대사가 행자인 거사의 신분으로 깨달았듯이
백봉 거사 역시 재가자의 신분으로 선종(禪宗)의 맥을
충실히 잇는 전승자가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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