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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의욕자극

[스크랩] 올챙이가 물 밖으로 나오면 사라지는 것들

by 법천선생 2016. 2. 6.


 <아잔브람 스님>|살며 감사하며

햇빛엽서 | 조회 89 |추천 1 |2016.02.05. 10:33 http://cafe.daum.net/amtb/5aL1/21374 

옛날에 올챙이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아기 올챙이가 자라서 학교에 갔는데 아주 똑똑한 올챙이였습니다.
대학교 가서 화학을 전공해서 학위도 받았고 물에 관한 것은 모두 공부했습니다. H2O였습니다.
또 가까운 곳에 절도 있어서 아비달마까지 배워 물의 본성도 알게 되었습니다.
물의 전문가가 되었지만.. 올챙이가 어떻게 진짜 물을 알겠습니까?
마치 물고기처럼 물에서 태어나 물 속에서만 살았는데 어떻게 물을 알 수 있겠습니까?
올챙이가 이론을 배울 수는 있지만 직접 체험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올챙이가 눈을 떴더니 앞뒤로 무엇인가가 자라나 있습니다.
팔다리가 생긴 것입니다. 개구리로 자라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올챙이는 어른 개구리가 되어서,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연못 밖으로 뛰어나왔습니다.
아주 이상한 경험이었습니다. 늘 있었다고 알던 중요한 것이 없어졌습니다.
마른 땅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지금에서야 개구리는 진짜 물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 물이 이제 더 이상 없습니다.

자, 올챙이 여러분, 진짜 몸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이 자리에 의사나 의대 교수님이 계실지도 모르지만 태어나 한 평생 이 몸에서 살았는데
몸이 정말 무엇인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올챙이 여러분, 오감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태어난 이래로 항상 그 속에 살아왔는데?
이런 명상 수련회에 참가하면 선정 개구리로 바뀝니다.
앉아 있으면서 정확히 무엇을 하는지 모르지만..
하지만 몸이 사라집니다.
오감도 사라집니다.
선정에 든 겁니다.

항상 내 앞에 있던 것들이 이제 완전히 사라집니다.
이제 몸이 무엇인지, 오감이 무엇인지에 대한 통찰이 생겼습니다.

첫째, 몸은 불쾌한 덩어리임을 깨닫습니다. 다시는 몸을 원하지 않습니다.


인간 몸으로 태어나는 것은 감옥에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감옥에서 태어나 감옥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감옥이 재미있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죄수 소년이 죄수 소녀와 결혼하고, 감옥 안에 좋은 집을 장만해서 죄수 아기를 낳습니다.
감옥의 레스토랑에 가고, 돈이 많아지면 좋은 감옥 음식을 먹습니다.
감옥의 월드컵 축구 경기를 봅니다.
감옥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재미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날 눈을 떠서 이 곳이 감옥임을 알게 되니, 있을 곳이 못 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더 이상 몸을 찬탄하지 않습니다.
일단 감옥 바깥에 있어보면 몸이라는 감옥이 무엇인지 압니다. 그것이 통찰입니다.

둘째, 오감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이것이 통찰입니다.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을 통제할 수 없고, 다른 사람이 나를 두고 하는 이야기를 통제할 수 없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까마귀는 까악까악 하고, 개는 멍멍 하고, 고양이는 야옹야옹 합니다.
고양이의 야옹 소리를 멈추게 할 수 있습니까?
아내의 바가지를 못 하게 할 수 있습니까?
정치인의 거짓말을 막을 수 있습니까?
정치인은 원래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감입니다.
그래서 내려놓습니다.
오감의 세계를 향해 화를 내지도 않고 바라지도 않습니다.
고통은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것을 구할 때 생깁니다.
몸과 오감이 무엇인지 알고나면 너무 많은 것을 바라고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몸이나 오감이 애초에 줄 수 없던 것을 바라지 않으면 고통도 없어집니다.

그러면 이제 이 작은 개구리는 폴짝 뛰어서 연못에서 더 멀리 갑니다.
또 다른 것이 없음을 알게 됩니다.
늘 있었던 그것이 완전히 사라졌음을 알고는 겁을 많이 먹습니다.
제2선정에서는 의지가 사라집니다.
내 삶의 모든 선택을 하는 것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여러분이 진짜 이 수련회에 오려고 결정하셨습니까?
내 삶에서 결정을 한다고 부르는 그것은 무엇일까요? 진짜 여러분입니까?
의지라고 부르는 이것을 가장 귀중한 소유물이라고 믿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나의 본질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점심에 무엇을 먹을지 결정하는 것이 바로 나야."
"이리로 오고 저리로 가기로 한 것이 나야."
제2선정에 들면 깜짝 놀랄 것입니다.
일단 의지가 사라지고 나면 진정한 의지가 무엇인지 이해합니다.

의지는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사실은 제1의 적입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말고 내려놓으라는 것입니다.

명상할 때는 의지를 쓰지 마십시오.
의지가 선정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환희심과 행복을 얻지 못하게 합니다.
이 의지가 다음 생에 또 태어나게 합니다. 많은 문젯거리만 남겨줍니다.
제 말을 믿으시나요? 안 믿으시는군요. 아직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의지를 완전히 떠나보내야 의지가 무엇인지 진정으로 이해합니다.
선정에서는 의지를 쓰겠다, 안 쓰겠다가 아니라.. 완전히 사라집니다.
개구리가 연못을 완전히 떠나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선정 체험을 통해서 의지가 사라져야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여기에 아무도 없었음을 깨닫습니다.
그러므로 고통과 윤회를 부르는 갈망과 의지는 나와 아무런 상관없는 것입니다.
의지를 내려놓아도 됩니다.
의지가 사라질 때 자아도 사라집니다.
자아가 큰 사람일수록 의지도 강합니다.
바로 이 의지(will)가 자아(ego)를 만들어냅니다.
의지가 사라질 때 '나'도 사라집니다.
작별입니다. Bye, by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