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경험 불가능한 미지의 세계이기에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가능하면 죽음의
문제를 회피하고 연기하고자 한다.
하지만 죽음은 회피될 수도 연기될 수도 없다.
지금 이 순간 이렇게 버젓이 살아있어도
하늘이 부르면 바로 즉시 순명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삶은 바로 죽음을 내포한다.
죽음을 도외시한 삶은 늘 불안하고 불완전하다.
차라리 죽음을 직시하고 내 삶 속으로
적극적으로 죽음을 받아들이고 사는 것이
더 현명하리라.
삶 속에 죽음을 수용할 때 생은 갑자기
생기가 돌고 소중하고 찬란해 진다.
역사학자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고대 이집트에서는 잔치가 끝날 무렵
참석자들이 거나하게 취해있을 때
하인들이 들것에 해골을 담아 연회장
탁자 사이를 돌아다니는 관습이 있었다고 한다.
삶이 가장 즐거운 순간에도 죽음을
망각하지 말라는 의도일 것이다.
죽음의 문제를 해결한 자만이 죽음의
인질상태에서 풀려나 진정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으리라.
죽음은 삶의 끝이요 마무리요,
삶의 결실이요 정점이다.
그럼 여기에서 동서고금의 현자들이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수연)
.........................
이 세상에 죽음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겨우살이를 준비하면서도
죽음은 준비하지 않는다. -톨스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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