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파노 베메르(Stefano Bemer·47)가 수제화 한 켤레를
만드는 데는 40시간이 걸린다.
주문을 받으면 고객의 발 모양대로 틀을 만들고 가죽을 자른다.
접착제를 거의 쓰지 않고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여 바느질을 한다.
발바닥이 닿는 부분부터 바깥쪽으로 차근차근 형태를 잡는다.
2월 12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남성 구두 전문매장 유니페어를
방문했다.
매장 한편에 남성 구두 제작 과정을 보여주는 단계별 전시품이 있었다.
구두 만드는 장면을 상상하고 있는데 베메르가 다가왔다.
베메르는 그의 구두를 판매하는 유니페어 매장 개업식 날짜에
맞춰 처음 서울을 방문했다.
눈이 푸르고 맑았다. 숱이 많지 않은 머리카락은 밝은 갈색이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영어로 간단하게 각 과정을 설명했다.
부족한 영어는 손짓과 표정으로 메웠다. 이탈리아어 통역을 맡은
유니페어 대표가 올 때까지 베메르의 구두를 천천히 살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정확한 구두를 만드는 장인으로 꼽힌다.
그의 기본형 맞춤 구두 한 켤레는 500만원에 팔린다.
이탈리아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청년 실업이 큰 사회 문제다.
한길을 걸어온 장인으로서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조언을 해달라고 하자
베메르는 넥타이 끝을 만지작거리다 천천히 말했다.
“처음부터 좋은 자리에 가려고 하는 젊은이들이 많죠.
그보다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일을 찾고,
실수에서부터 배우면 길이 보일 겁니다.”
베메르는 18세 때 고향인 이탈리아 그레베 인 키안티에서
구두 수선을 배우기 시작했다.
“어릴 때 당뇨가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직장에 다니면 무리할
경우가 생기겠다 싶어 독립적으로 할 일을 찾았습니다.”
구두 수선을 하던 매형이 그에게 기본을 가르쳤다.
얼마 후 품질 좋은 구두를 직접 만들어보기로 했다.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드는 기성화가 인기를 끌면서 구두 장인들이
가게 문을 닫던 시기였다.
베메르는 남아 있는 고령의 구두 장인들을 찾아다니며 일을 배웠다.
베메르는 1987년 피렌체에 정식으로 수제 구두 판매 가게를 열었다.
초기에는 수선 비용을 받으면 재료 구입비 등 밀린 외상값을 갚으며
하루하루를 보냈을 정도로 돈이 없었다.
베메르는 “그래도 무척 행복했다”고 말했다. 손님들은 샌들이나
부츠같이 만들어본 적이 없는 신발을 주문했다.
그는 일단 ‘OK’ 하면서 일을 받았다. 신발을 어떻게 만들지 궁리하다
매번 그 신발을 잘 만드는 구두 장인을 찾아가 일을 배웠다.
이상하면 다시 만들기를 반복했다. 베메르는 그때가 제일 행복했던
시기라고 회고했다.
구두 매장을 연 해에 이탈리아의 한 직업훈련학교에서 구두 디자인을 배웠다.
8개월 동안 오전에 학교에 갔다 오후에는 매장에서 일했다.
베메르의 구두는 멋있으면서도 편안한 신발로 유명하다.
고객 한 명에게 맞춰진 수제화는 발뒤꿈치와 발바닥을 정확하게 잡아준다.
“가볍고 말랑말랑한 운동화라고 해도 발을 잡는 힘이 없으면 오래 신었을 때
발이 피곤해지죠. 진짜 좋은 구두에는 몸을 지탱하는 장치가 있어 운동화보다 더 편해요.”
시간이 지나면 구두 바닥이 발에 길들여져 더욱 편안해진다. 유니페어의 강원식 이사는 그 변화를 느껴보라며 수선한 구두 안에 손을 넣어보라고 권했다. 손을 넣자 주인의 발가락 모양대로 오목하게 팬 구두 바닥이 느껴졌다. 바닥이 닳으면 밑창을 갈아 끼워 신으면 된다. 구두 윗부분은 쉽게 망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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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레인 왕비, 모로코 부자가 찾는 편한 구두…
발에 꼭 맞을 때까지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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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단골고객 중에는 바레인 왕비도 있다. 단골이었던 한 유명 디자이너가 바레인 왕비를 소개했다. 베메르는 바레인 국왕의 별장이 있는 프랑스 파리로 가서 왕비를 만났다. 왕비는 자신의 발이 좀 특이하게 생겨서 맞는 신발이 없다며 그가 이 문제를 해결해줬으면 했다고 한다.
왕비는 덩치가 컸다. 다이어트를 해서 한 번에 체중을 20kg 이상 감량했다 요요 현상으로 다시 체중이 늘곤 했다. 체중 감량 전후에 신을 신발이 따로 필요했다. 베메르는 왕비 취향에 맞는 예쁜 신발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왕비는 그때 이후로 베메르에게 신발을 주문한다.
유명 배우도 찾아와 구두 제작 배워
그의 구두는 미국에서도 유명하다. 1999년부터 열 달 동안 배우 대니얼 데이루이스가 그의 밑에서 구두 만들기를 배운 게 화제가 됐기 때문이다. 데이루이스는 <데어 윌 비 블러드>(2007), <나의 왼발>(1989)에 출연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두 번이나 탄 배우다.
“파파라치를 피하려다 우연히 매장에 들어온 그가 구두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다 갔어요. 다음날에도 하루 종일 보다 갔어요. 나중에 이탈리아의 지인을 통해 며칠 일을 배우고 싶다기에 그러라고 했죠. 그런데 10개월 동안 옆에서 매일 구두 만들기를 배웠어요. 취미 삼아서요.”
이탈리아 피렌체에 베메르의 매장 두 개가 있다. 그는 아침 7시에 일어나서 아들 둘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매장에 딸린 공방으로 8시 45분까지 출근한다. 여기서 저녁 7~8시까지 구두를 만든다. 토요일 오후에는 주로 열여섯 살인 첫째 아들의 축구 경기를 보러 간다. 일요일은 교외에 있는 별장에서 가족과 함께 보낸다. BMW 미니쿠퍼 1967년형을 타고 다닌다.
2000년부터는 형과 함께 일하고 있다. 수습생들도 있는데 총 6명 중 일본인이 3명이다. 나머지는 이탈리아인이다.
베메르의 구두는 특히 일본에서 인기가 높다. 2000년 즈음에는 베메르의 구두를 수입해 팔던 일본 상인과 함께 전용 매장을 냈을 만큼 일본 판매가 늘었다. 그러나 6년 판매 계약이 끝난 후 매장 문을 닫았다. 독립 매장을 열면서 주문을 받기 전에 신발을 많이 만들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신발이 가득 쌓여 있었어요. 덜컥 겁이 났죠. 이게 팔리지 않으면 어쩌나 싶어서요.” 손해를 보지는 않았지만 무리한 준비는 그에게 부담을 줬다. 그래서 앞으로는 해외에서 독립 매장을 열 생각이 없단다.
그는 한 해 평균 1 대 1 맞춤형 수제화를 약 180~200켤레 만든다. 벨벳같이 부드러운 가죽인 영국산 스웨이드와 프랑스산 송아지 가죽을 쓴다. 식물성 접착제도 조금 쓴다. 최고급 재료로 공들여 만든 구두 가격은 송아지 가죽을 쓴 가장 단순한 모델이 한 켤레에 500만원이다. 2000년부터는 샘플을 보고 정해진 크기 중 맞는 것을 고르는 프레타포르테 제품도 판매했다. 송아지 가죽을 쓴 최저가 프레타포르테 구두가 254만원이다. 프레타포르테 구두는 한 해 평균 1500켤레 정도가 팔린다. 연간 약 50억원어치를 판다는 얘기다.
한국에서는 2008년부터 여러 명품 브랜드의 남성 구두 전문매장인 일 치르코에서 그의 프레타포르테 남성 구두를 판매했다. 한 해 평균 60~70켤레가 팔린다. 2월에 일 치르코가 이름을 바꿔 유니페어로 다시 문을 열었다. 유니페어는 베메르가 서울을 방문해 구두를 맞춤 제작하는 행사도 계획 중이다.
유니페어의 한태민(38) 대표는 이탈리아 유학 시절 베메르를 처음 만났다. 구두 디자인에 관심이 있어 직업훈련학교까지 다닌 한 대표는 피렌체에 있는 스테파노 베메르 매장에 드나들며 구두의 매력에 빠졌다. 자연스레 베메르와 친분이 쌓였다. 하루는 베메르가 한 대표에게 한국 가서 뭘 할 거냐고 묻자 “한국에서 구두 매장을 열 건데 같이하겠느냐”고 제안했다.
전통과 모던함이 적절하게 묻어나는 베메르의 구두는 한 대표에게 중요한 날 꼭 신고 싶은 신발이다. 그의 신발장에는 여러 브랜드의 구두가 수없이 많다. 한 대표는 “그중 베메르의 구두는 1000만원짜리 양복을 입었을 때 신고 싶은 신발이라기보다 정말 중요한 날 멋있게 보이고 싶을 때 망설이지 않고 집는 신발”이라고 했다.
베메르는 7월에 고향 그레베 인 키안티에 작은 매장을 하나 더 열 생각이다. 그곳에서 처음처럼 해보고 싶단다. 그레베 인 키안티는 1999년 세계 최초의 슬로시티로 꼽힌 곳이다.
http://cafe.daum.net/nemere/3kT6/2628?q=%C0%CC%C5%BB%B8%AE%BE%C6%20%B9%D9%B4%C0%C1%FA%20%C0%E5%C0%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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