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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감사훈련

정호승 시인의 감사

by 법천선생 2019. 3. 10.


+ 감사하다

태풍이 지나간 이른 아침에

길을 걸었다

 

아름드리 플라타너스 왕벚나무들이

곳곳에 쓰러져 처참했다

 

그대로 밑동이 부러지거나

뿌리를 하늘로 드러내고

몸부림치는 나무들의 몸에서

짐승 같은 울음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키 작은 나무들은 쓰러지지 않았다

 쥐똥나무는 몇 알 쥐똥만 떨어뜨리고

고요했다

 

심지어 길가의 풀잎도 지붕 위의

호박넝쿨도 쓰러지지 않고

햇볕에 젖은 몸을 말리고 있었다

 

내가 굳이 풀잎같이 작은 인간으로

만들어진

까닭을 그제서야 알고

감사하며 길을 걸었다

(정호승·시인, 19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