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심(一心)은 통틀어 일체의 더럽히거나
깨끗한 모든 법의 의지하는 바 되기 때문에
제법(諸法)의 근본인 것이다.
원효
일심(一心)이란 무엇인가?
더러움과 깨끗함의 모든 법은 그 성품이
둘이 아니고 참됨과 거짓됨의 두 문은
다름이 없으므로 하나라 이름하는 것이다.
이 둘이 아닌 곳에서 모든 법은 가장 진실되어(中實)
허공과 같지 않으며 그 성품은 스스로 신령스레
알아차리므로(神解) 마음이라 이름한다.
이미 둘이 없는데 어떻게 하나가 있으며
하나도 있지 않거늘
무엇을 두고 마음이라 하겠는가.
이 도리는 언설을 떠나고 사려를 끊었으므로
무엇이라 지목할지 몰라 억지로 일심이라
부르는 것이다.
원효
중생 마음의 마음 됨은 형상을 떠나고
성품을 떠나서 바다와 같고 허공과도 같다.
허공과 같으므로 형상이 융합되지 않음이
없거늘 어찌 동쪽과 서쪽이 있겠으며
바다와 같으므로 성품을 보존하지 못하는데
어찌 움직일 때와 고요할 때가 없겠는가.
원효
지혜로운 이가 하는 일은 쌀로 밥을 짓는 것과 같고
어리석은 자가 하는 일은 모래로 밥을 짓는 것과 같다.
수레의 두 바퀴처럼 행동과 지혜가 갖추어지면
새의 두 날개처럼 나에게 이롭고 남도 돕게 된다.
원효
합해서 말하면 생(生)은 곧 적멸(寂滅)이 되나
멸(滅)을 고집하지는 않고 멸이 곧 생 이 되나
생에 머무르지는 않는다.
생과 멸은 둘이 아니고 동(動)과 적(寂)을 다름이 없다.
이와 같은 것을 일심하여 일심(一心)의 법(法)이라 한다.
비록 실제로는 둘이 아니나 하나를 지키지는 않고
전체로 연을 따라 생(生)하고 동(動)하며
전체로 연(緣, 타자)을 따라 적멸하게 된다.
이와 같은 도리로 말미암아 생이 적멸이고 적멸이 생이며
막힘도 없고 거리낌도 없으며 동일하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
원효
나지 말라죽는 것이 고통이다.
죽지 말라 나는 것이 고통이다.
원효
부처가 세상에 있었을 때에는 부처의 원음에 힘입어
중생들이 한결같이 이해했으나 쓸데없는 이론들이
구름 일어나듯 하여 혹은 말하기를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 하며
혹은 '나는 그러하나 남들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여 드디어
하천과 강을 이룬다.
유(有)를 싫어하고 공(空)을 좋아함은 나무를 버리고 큰 숲에
다다름과 같다.
비유컨대 청(靑)과 남(藍)이 같은 바탕이고 얼음과 물이 같은
원천이고 거울이 만 가지 형태를 다 용납함과 같다. -원효
원효대사(元曉, 617∼686, 진평왕 39∼신문왕 6)
신라 중기 승려 아명은 서당(誓幢)신당(新幢). 불교사상의
융합과 그 실천에 힘쓴 정토교(淨土敎)의 선구자이며
한국의 불교사상 큰 발자취를 남긴 가장 위대한 고승의 한 사람
http://blog.daum.net/coffee2/7161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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