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사체험자들의 죽음체험은 단한번의
생을 바라 볼 수 있는 영적인 체험인 것이고,
깨달음은 수백, 수천생을 모두 다 볼 수 있는
전지전능의 우주적 지혜를 갖추게 된다.
죽음이 괴로운 것은 죽음을 처음 당해보는
것이기에 죽음이라는 과정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정한 명상이 바르게 일어나게 하려면,
반드시 죽음과도 같은 영체이탈의 상태를
몸으로 직접 경험해보아야만 진정한 명상의
일면을 보았다고 할 것이다.
사실, 죽음을 매일 당해보고 경험해 보는 사람(?),
즉 명상을 하여 체험이 있는 사람에게 오히려
죽음은 괴로운 것이 아니라, 아주 즐거운 것이다.
죽음이 괴로운 것은 사후의 세계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죽음은 결코 끝이 아니다. 단지 몸만 바꾸는 교체 과정이며
영혼이 진화하고 진보하는 과정일 뿐이다.
또는 잠시 동안 사람으로 윤회하지 않을 수도 있고,
수백, 수천년 동안 사람으로 윤회하지 않을 수도 있다.
성경에 매일 죽는 성인의 장면이 나오고, 생명을
얻으려면 죽는 법을 배우라는 말이 나오는데,
죽음을 잘모르는 사람에게는 정말 황당하게 느껴지는 말이다.
미국의 레이먼디 무디박사가 쓴 '사후세계'라는 책을 보게 되면,
육체를 떠나는 것은 큰 자유를 얻게 되고 크나큰
환희심을 느낀다고 책에서 말을 하였다.
터널과 같은 차를 타고 머나먼 나라를 여행하여
빛과 사랑으로 충만한 존재들의 환영을 받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자실을 통한 죽음은 전혀 그렇지 않음도 잘 알아야만 한다.
내가 애완견을 기르는데, 그가 스스로 죽을 수 없는 것처럼,
사람은 인생을 통하여 공부를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났다.
이번생에서 배워야할 내용을 스스로 정하여 태어난 것이다.
그러니 반드시 어려운 과정을 이수해야만 하는 것이다.
깨달음은 높은 세계의 진동과 연결된다는 뜻이다.
내가 우주의 유일한 존재가 아니고 이번 생이 유일한
삶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옛날의 영광된 세상에 살았던 화려하고 찬란한 문명의
기억을 되살리는 것이 바로 깨달음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면 육체적인 제한으로 과거의 기억이
흡사 망각의 주스를 마신 것처럼 모두 다 소실되어
전혀 전생의 모든 것, 영혼이 각오한 것을 잊어버린다.
이것이 바로 고통을 자초하는 단초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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