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봉석 기자 =
충북 청원군 미원면 구녀산 기슭에 정토마을이라는 곳이 있다.
불교계의 유일한 독립형 호스피스(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위안을
베푸는 봉사활동) 시설로, '이승과 저승의 간이역'으로 불리는 곳이다.
이런저런 경로로 알게 된 말기암 환자들이 이곳으로 찾아와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평화롭게 보내며 다음 생을 기약한다.
충북 음성군 꽃동네 등에서 봉사했던 비구니 능행 스님은
2000년 이 법당 겸 병동을 세웠다.
그동안 스님이 죽음을 배웅한 사람만도 1천 명을 넘는다.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이별이지는 않게'(도솔)는 스님이 수많은
사람들과 이별하면서 겪었던 사연들을 글로 옮긴 것이다.
저자가 인근 주민들의 극심한 반대에도 정토마을 건립의 서원을
세웠던 것은 어느 스님과의 인연 때문이다.
1997년 여름 천주교계 호스피스 병동에서 전화가 걸려와 찾아가
보니 침상 위에 뼈만 앙상하게 남은 남자가 누워 있었다.
머리카락과 수염은 엉망이었고, 손과 발톱은 길어 살을 파고들어갈
정도로 노숙자보다 심했던 이 남자는 스님이었던 것.
세수 47세, 법랍 24세의 이 비구 스님은 지금까지 선방에서만 정진하느라
토굴 하나 장만하지 못한 채 폐암으로 곧 유명을 달리할 처지였다.
이 스님은 죽기 직전 저자에게 "우리나라에서 땅을 제일 많이 가진
종교가 불교인데, 남의 병원에 와서, 그것도 이렇게 큰 십자가 아래
누워 죽게 됐다"며 "스님들 편히 죽을 수 있는 병원 하나 지어달라"는
말을 유언으로 남긴다. "내가 죽어서라도 도와줄게"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저자는 많이 누리고 많이 가진 사람이 죽을 때 더 고통스러워한다고 말한다.
수많은 죽음을 바라본 결과 정작 많이 가진 자보다 많이 베풀고 나눠주고
적게 가진 자가 더 행복하게 이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
나아가 저자는 이제는 '웰빙(Well-Being)'이 아니라 '웰다잉(Well-Dying)'을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잘 먹고 잘 살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떻게 하면 잘 살고 잘 죽을 수
있는지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276쪽, 9천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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