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준비가 된 사람들, 이해의 차원에
가까이 다가선 사람들이 있다.
조금만 밀어주면 그들은 깨달을지도 모른다.
이 삶이 그런 사람들을 스승에게로 데려오고,
그들을 위해 무언가 하라고 스승에게 요구한다.
그래서 스승은 그 일을 한다.
이것이 스승의 자비심이다.
하지만 스승의 자비심에는 누군가를
돕겠다는 목적의식이 없다.
그저 그런 일이 일어날 뿐이다.
어쩌면 이것은 거부할 수 없는 삶의
명령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는 매개체로 선택되었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 일을 해야 한다.
이 삶이 그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스승의 자비심이란 이런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는 무엇인가 하고 있는
끼란이라는 사람이 앉아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당신은 사람들을 깨우치는데
자신이 공헌한다고 보십니까?”
하는 그대의 질문은 옳지 않다.
나는 사람들을 돕거나 어떤 일을 하는데
내가 공헌한다고 보지 않는다.
그런 느낌이 전혀 없다. 다만 나를 통해
그런 일이 일어날 뿐이다.
이 우주와 분리된 ‘나’라는 정체성이
사라진 사람들, 진실로 그들 자신을 끝장낸
사람들을 통해 그저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 뿐이다. 거기엔 아무 목적도 없다.
- 끼란바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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