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근심에 대해서 근심하지 않는다.
근심은 알고 나면 허수아비다.
곡식이 익어가는 들판으로 가서
허기를 채우려면
필연적으로 마주 칠 수밖에 없는 복병들이다.
하지만 어떤 참새라도
그 복병들을 근심할 필요는 없다.
허수아비는 무기력의 표본이다.
망원렌즈가 장착된
최신식 장총을 소지하고 있어도
방아쇠를 당길 능력이 없다.
자기 딴에는 대단히 위협적인 모습으로
눈을 부릅뜬 채 들판을 사수하고 있지만
유사 이래로 허수아비에게 붙잡혀 불구가 되거나
목숨을 잃어버린 참새는 한 마리도 없다.
다만 소심한 참새만이
제 풀에 겁을 집어 먹고
스스로의 심장을 위축시켜
우환을 초래 할 뿐이다.
나는 열 살에도 근심이 있었다.
나는 스무 살에도 근심이 있었다.
나는 서른 살에도 근심이 있었다.
나는 마흔 살에도 근심이 있었다.
그런데 그 때의 근심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져 버렸을까.
지금은 흔적조차도 찾을 길이 없다.
근심에 집착 할수록 포박은 강력해지고,
근심에 무심 할수록 포박은 허술해진다.
하지만 어떤 포박이라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1백 퍼센트 소멸해 버린다.
이 세상 시계들이
모조리 작동을 멈춘다 하더라도
시간은 흐른다.
지금 아무리 크나큰 근심이
나를 포박하고 있어도
언젠가는 반드시
소멸하고야 만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그런데 내가 왜 시간이 흐르면
1백 퍼센트 소멸해 버리는
무기력의 표본
허수아비에 대해 근심하겠는가.
- 글/이외수 -
'진보와 성공 > 불편한 진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정한 수행자의 외식 (0) | 2022.03.29 |
---|---|
내가 하는 말도 실상은 주문인 것이다! (0) | 2022.03.28 |
자기 자신을 먼저 정화하라! (0) | 2022.03.23 |
가물치와 우렁이의 어미 (0) | 2022.03.08 |
사주보고 마음이 괴로울 때 보는 글 (0) | 2022.03.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