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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의욕자극

일상(日常)의 기적(奇跡) ㅡ 박완서

by 법천선생 2024. 3. 23.

일상(日常)의 기적(奇跡)  ㅡ 박완서

 

덜컥 탈이 났다. 

유쾌(愉快)하게 저녁식사(食事)를 마치고

귀가(歸家)했는데 갑자기 허리가 뻐근했다.

 

자고 일어나면 낫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웬걸, 아침에는 침대(寢臺)에서

일어나기 조차 힘들었다.

 

그러자 하룻밤 사이에 사소(些少)한 일들이

굉장한 일로 바뀌어 버렸다.

 

세면대에서 허리를 굽혀 세수하기,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줍거나 양말을 신는 일,

기침을 하는 일, 앉았다가 일어나는 일이 내게는

더 이상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별수 없이 병원에 다녀와서 하루를 빈둥거리며

보냈다. 

비로소 몸의 소리가 들려왔다.

 

실은 그동안 목도 결리고, 손목도 아프고,

어깨도 힘들었노라, 눈도 피곤(疲困)했노라,

몸 구석구석에서 불평(不平)을 해댔다.

 

언제까지나 내 마음대로 될 줄 알았던 나의 몸이,

이렇게 기습적(奇襲的)으로 반란(反亂)을 일으킬

줄은 예상(豫想)조차 못했던 터라 어쩔 줄 몰라

쩔쩔매는 중이다.

 

이때 중국(中國) 속담(俗談)이 떠올랐다.

“기적은 하늘을 날거나 바다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걸어 다니는 것이다.”

 

예전에 싱겁게 웃어 넘겼던 그 말이 다시 생각난 건,

반듯하고 짱짱하게 걷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실감(實感)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괜한 말이 아니었다.

‘아프기 전(前)과 후(後)’가 이렇게 명확(明確)하게

갈리는 게 몸의 신비(神秘)가 아니고 무엇이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