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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의욕자극

청담 스님 법문, 악처를 다시는 다시 만나지 않는 길

by 법천선생 2025. 9. 6.

 

청담스님의 사랑에 관한 법문이 귓가에 와 닿는다.

“세속의 어디까지나 자기 본위이고 자기중심으로 한다.

남녀 간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남자가 장가가는 것도 자기 욕심 채우려는 것이지,

처녀 욕심 채워주려고 가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신혼 첫날 저녁부터 싸워서 일평생을 싸운다.

서로 제 욕심만 채우려고 하니, 아이를 여러 명 낳고

살아봐도 개성이 안 맞고 욕심이 안 맞아서 싸우게 된다.

 

이것이 사랑이다. 가령 갑이란 남자가 을이란 여자를

사랑해서 연애를 한다면, 갑은 을에게 이러한 요구를 한다.

 

‘너는 내 것이야! 다른 사람하고는 이야기도 하지 마라.

쳐다보면 안 돼, 꼭 나만 기다리고 있어!’ 이런 식이다.

 

이렇듯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점령이다.

남의 생명의 자유는 손끝만큼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은 곧 도둑이다.”

 

청담스님은 자기본위의 삶을 타자본위의 삶으로 회향할 때

보살의 길이 열린다고 역설했다.

 

“자비를 가진 남자라면 남이 데려가지 않는 아주 못생긴

처녀에게 장가를 갔더라도 그녀에게 정성을 다할 것이다.

 

‘호강시켜줘야겠다. 하루 백만 원을 벌어서라도 다 맡기고,

잘살든지 못살든지 저 여자 뜻대로 해야겠다.’ 이렇게

상대편 본위로만 하고 자기는 조금도 내세우지 않는

남편 앞에서는 아무리 악녀라도 보살이 된다.

 

사랑은 나쁜 심리로 남을 점령하려는 것이고 남을

구속하려는 것이다.

 

반대로 자비는 남을 해방하려는 마음이고 남을 이해하려는

마음이다.”

 

물론 자비란 말로는 쉬워도 행동으론 힘들다.

청담스님 역시 무조건적으로 퍼주는 삶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인과법을 철저히 믿고 인내하다보면 장기적인 안목에서

이익이란 이치를 설명했다.

 

“남편이 바람을 피워 첫날 저녁부터 생과부가 되어 일생

동안을 지내는 사람이라도 남편을 나쁘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좋아하든지 싫어하든지 남편을 따라주어야 한다.

밤에는 남편이 가는 대로 등불을 들고 바래다주고,

상대에게 몇 십만 원씩이라도 갖다 주면서 우리 남편

비위 좀 맞추어 달라고 부탁을 해야 한다.

 

우리 주인은 내 힘 가지고는 위안이 안 되니, 당신이 좀

그렇게 해주면 내가 그 은혜를 갚겠다고 정성으로 부탁하면서

알지도 못하게 가만히 놓아두고 오라는 것이다.”

 

일견 바보천치로 살라는 저주로 들린다.

다음의 훈수가 반전이다. “이것은 변태적이고 자학적인

행동이거나 히피족들의 경우와 같은 막살이식이 결코 아니다.

 

어디까지나 진심으로 하는 참회생활이고, 진심으로 남편을

행복하게 하려는 사랑의 행동이어야 한다.

 

그러면 다음 생에는 그러한 남편을 안 만날 것이다.

빚을 다 갚았기 때문이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라는 삶의 지혜가 우러나는 대목이다.

“불교 신앙이란 인과를 철저히 믿는 자세다. 삼라만상이 다

 내 마음의 그림자이고, 내가 주동이 된 것이니, 내게 모든 책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