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북한군이 남으로 밀고 내려오고, 우리 국군은
대구까지 후퇴를 했지요.
그러나 유엔군의 도움으로 9.28 수복이
이루어졌고, 다시 북진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곧 중공군의 대규모 지원으로
또다시 후퇴해야 했습니다.
그때 군에서는 이렇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사찰과 민가를 남겨두면 인민군의
은신처가 된다. 작전상 불태워야 한다.”
그 명령이 오대산 상원사에도 내려왔습니다.
그때 대부분의 스님들은 이미 남쪽으로
피난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상원사에는 노스님 한암 대종사께서
시자 몇 명과 함께 절을 지키고 계셨습니다.
어느 새벽, 군 장교가 부대를 이끌고
상원사에 도착했습니다.
“스님, 작전상 절을 불태워야 합니다.
어서 피난하십시오.”
그 말에 한암스님은 잠시 미소를 짓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오.”
그는 가사와 장삼을 정갈히 갈아입으시고,
부처님 법당으로 들어가 정좌하셨습니다.
그리고 장교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불을 놓으시오.”
장교는 깜짝 놀라 소리쳤습니다.
“스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어쩔 수 없는
작전상 명령입니다!”
그러자 스님이 조용히 대답하셨습니다.
“나는 부처님의 제자요.
스승이 불에 타는데 제자가 도망친다면,
그것이 어찌 도리이겠소.
나는 함께 있으리니,
당신은 당신의 의무를 다하시오.”
그 한마디에 장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스님의 기품과 그 거룩한 마음에 압도되어,
그는 부하들에게 이렇게 명령했습니다.
“법당의 문짝만 떼어서 마당에 놓고 불을 붙여라.
절은 그대로 두어라.”
그리하여 수많은 사찰과 민가가 불에 타 사라질 때,
오대산 상원사만은 기적처럼 남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두 달쯤이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한암 스님은 제자들을 불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내가 떠날 날이 되었구나.”
스님은 다시 가사와 장삼을 입고,
선정에 들듯 조용히 앉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숨을 거두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좌탈입망(坐脫立亡),
앉은 채로 육신을 버리고 열반에 드는 경지였습니다.
한암 대종사께서는 강원도 화천 출신으로
속명은 방중원, 법호는 한암이라 하셨습니다.
스무한 살에 출가하시어 평생 수행에 전념하셨고,
대한불교 조계종의 초대 종정으로 추대되셨습니다.
세수 75세, 법랍 54세. 제자로는 난암, 보문,
그리고 탄허 스님이 계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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