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신은 기계와 같습니다. 자동차와 같죠.
그리고 마음자리는 그 차를 모는 운전사입니다.
차가 멈추면 운전사가 사라질까요?
아닙니다. 차를 떠나도 운전사는 그대로
존재합니다.
몸은 옷과 같고, 말하고 듣고 생각하는
이 마음자리는 옷을 입은 사람과 같습니다.
그래서 나는 육신을 입고 있을 때나 육신을
벗어놓았을 때나 조금도 변하지 않습니다.
범부로 살 때도 이 마음의 자리는 제 역할을
다 하고 있고,
훗날 성불하여 부처가 되더라도
‘아는 힘’이 더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마치 소금을 입에 넣었을 때 짠맛을 아는
능력이 아기 때나 박사 때나 똑같은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눈이 본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귀가 듣는다고 할 수 있을까요?
육체 그 자체는 움직이는 산송장과 같습니다.
처음부터 지각성이 없는 물질이 아무리
정교하게 조직되어 있어도 ‘아는 능력’이
거기서 나올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눈을 통해 보지만 보는 것은
눈이 아닙니다.
사람이 창문을 통해 밖을 본다고 해서
창문이 세상을 아는 것은 아니듯,
카메라 렌즈가 사진을 찍는다고 해서
렌즈가 의미를 아는 것은 아닙니다.
창을 통해 사람이 보고, 렌즈를 통해
사람이 아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눈과 귀는 통로일 뿐,
보고 듣고 아는 주인은 바로 이 마음자리,
‘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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