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허 대선사의 맏상좌인 수월선사는 충청남도
홍성 출신이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의고, 부잣집에 들어가
머슴살이를 하며 성장했다.
어느 날, 그의 방에 한 탁발승이 하룻밤
묵어가기를 청했다.
그 탁발승이 밤새 들려준 수행과 출가의
이야기는 수월의 마음을 깊이 흔들었고,
그는 그날로 출가를 결심하게 된다.
그러나 주인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주인은 가죽신 한 켤레를 던져주며
이렇게 말했다.
“이 신발이 다 닳아 없어지면 그때 떠나라.”
수월은 그 말에 묵묵히 2년의 세월을 더
머슴으로 살았다.
일을 마친 어느 밤, 그는 들판으로 나가
벼 포기를 끝없이 걷어찼다.
마침내 가죽신이 모두 닳아 떨어지던 날,
그는 미련 없이 수행자의 길에 들어섰다.
수월은 서산 천장암으로 경허선사를 찾아갔다.
서른 살에 서산 천장사에서 출가하여
성원스님의 제자가 되었으나, 글을 배우지
못했고 기억력도 둔해 불경을 익히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글 공부를 포기하고, 땔나무를 하며
밥을 짓는 부목·공양주 소임을 3년간 맡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적과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수월스님이 불공에 올릴 마지를 지어 법당에
들어섰을 때, 부전스님이 천수대비주를 독송하고
있었다.
그 순간, 무려 442자에 이르는 난해한 대비주가
한 글자도 빠짐없이 마음에 새겨진 것이다.
그날 이후 수월스님은 나무를 할 때도, 밥을
지을 때도 끊임없이 대비주를 염송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성원스님이 법당에서 불공을
드리며 마지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시간이 한참
지나도 마지는 오지 않고 절 안에는 밥 타는
냄새만 가득 퍼졌다.
이상히 여긴 성원스님이 부엌으로 가보니,
전혀 예상치 못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수월스님은 천수대비주를 외운 채, 쉼 없이
아궁이에 장작을 넣고 있었던 것이다.
밥이 까맣게 탄 것은 물론이고, 솥은 벌겋게
달아올라 금방이라도 불이 날 듯했다.
그는 완전히 무아지경에 들어 대비주에 몰두
하고 있었다.
이를 본 성원스님은 수월스님에게 방 하나를
내어주며 말했다.
“오늘부터 이 방을 너에게 주겠다. 마음껏
대비주를 외워보아라.
배가 고프면 나와서 밥을 먹고, 졸리면
마음대로 자거라.
나무하고 밥 짓는 일은 내가 맡겠다.”
수월스님은 “감사합니다”라는 말 한마디만
남기고, 가마니 하나를 들고 방으로 들어가
문짝에 달았다.
빛이 한 줄기라도 스며들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는 오로지 천수대비주를 외우기 시작했다.
방 밖에서는 밤낮으로 대비주 염송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마침내 7일째 되던 날, 수월스님은 문을 박차고
나오며 외쳤다.
“스님, 잠을 쫓았습니다! 잠을!”
이때 수월스님은 천수삼매(千手三昧)를 증득하여
무명(無明)을 깨뜨리고 크게 깨달았을 뿐 아니라,
불망념지(不忘念智) 또한 이루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글을 몰라 경전을 읽지 못하고
신도들의 축원문조차 써주지 못했으나,
불망념지를 이룬 뒤로는 어떤 경전의 뜻을
물어도 막힘이 없었다.
또한 수백 명의 축원자 이름을 한 번 듣기만
해도, 불공을 드릴 때 단 한 사람도 빠뜨리지
않고 외웠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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