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염불의 진보는 결국 당신 자신의 느낌과
내면의 성숙에 달려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염불하느냐, 얼마나
염불하고 싶은 마음이 드느냐는 머리로
계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느껴야
할 문제입니다.
마치 배가 고플 때 “지금은 밥을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처럼 말이지요.
또한 진보는 단순히 염불의 횟수나 시간
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나는 정말 이것만을 원한다”
“이 길 외에는 다른 길을 원하지 않는다”
라고 자기 자신에게 진심으로 다짐할 때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겉으로는 염불을 하고 있지만 마음속에서는
아직 세상과 여러모로 타협하고 있다면,
그것은 아직 진정한 염불이 아닙니다.
진보란 염불을 더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진보하기를 내면 깊은 곳에서 간절히
원하는 상태입니다.
그 상태 자체가 이미 염불인 것이지요.
그래서 그저 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같은 방에 있어도 한 사람은 창문을 열고
햇살을 맞이하고, 다른 한 사람은 커튼을
친 채 어둠 속에 머무를 수 있습니다.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 사물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염불은 도움이 되기도 하고,
아무런 힘이 되지 않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얼마든지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각 사람마다
신에 이르는 고유한 길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빠르게 가고, 어떤 이는 천천히 갑니다.
그 선택은 누구의 명령도 아닌 오롯이 개인의
몫입니다.
수행자는 수행자의 마음을 이렇게 하라고
지시할 수 없습니다.
선지식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길을 보여줄 수는 있어도 걸음을 대신
내딛어줄 수는 없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성의가 있는가, 없는가
그 하나입니다.
언젠가 이 세상과 가식, 환영에 지쳐
진심으로 싫증을 느끼게 되면, 사람은
자연스럽게 내면에서 다짐하게 됩니다.
“이제는 정말로 돌아가고 싶다.”
“이것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
그때부터 염불은 의무가 아니라 안식이
됩니다.
얼마나 오래 앉아 있느냐는 더 이상 중요
하지 않습니다.
성심으로 부처님과 함께 있다면, 그 자체가
바로 염불입니다.
그 사람은 마음을 억지로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몹시 편안한 상태에서
전심을 기울여 염불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만약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다면,
그것은 당신이 헌신적이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아직 노력의 단계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입니다.
노력과 헌신의 차이는 분명합니다.
노력은 애써 물을 끌어올리는 것이고,
헌신은 샘이 터져 저절로 물이 흐르는 것입니다.
그 차이가 바로 진보의 차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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