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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의욕자극

화두삼매체험담입니다

by 법천선생 2026. 2. 18.

봉암사를 다녀온 다음날, 나는 회사를 퇴근하고 낙동강변의 한적한 곳을 찾아 차를 주차했다. 그리고 나는 차의 뒷좌석에 쿠션을 하나 놓고 반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내 차는 차체가 낮은 승용차는 아니었다. 내가 뒷좌석에 앉아 있기에 불편함이 없었다. Y산 정상에서 군대생활 중에 나는 불규칙적으로나마 호흡을 관(觀) 했었다. 그러나 그때 나는 첫 날 꼭 한번을 앉아보았을 뿐 나머지는 모두 누워서 호흡을 했었다. 그래서 내가 좌선을 시작한 것은 낙동강변에 차를 세우고 뒷자리에 앉은 그때가 처음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차의 뒷자리에 자세를 잡고 앉아 호흡을 고르자, 17년의 세월을 넘어, 곧 내 하단전에서는 커다란 불길이 확 피어올랐다. 흡사 뱃속에 모닥불을 피운 것 같은 불길이었다. 나는 그것을 무시하고 코끝과 가슴을 관(觀)했다. 불길은 서서히 사그라졌다. 나는 내 들숨과 날숨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나는 누구인가? 차 안이 답답할 때는 모래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내가 당시 수행에 관한 몇 권의 책을 살펴보며 느낀 것은 그렇다. 수행이라는 것이 방법들도 많았고 말도 많았다. 불교의 경전은 얼마나 다양하며 선도 쪽의 수련법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각각의 책에서는 한결 같이 이 가르침이 가장 중요하고 이 길만이 바른길이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할 수 없었다.

 

그 와중에 나는 <달마어록>과 라마나 마하리쉬의 문답을 정리한 <나는 누구인가?>라는 책을 몇 차례 읽었다. 나는 그 두 책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책은 내가 부담을 가지지 않을 정도로 얇았고 내용은 쉬우면서도 일관성을 가지고 있었다.

달마는 말했다. 당신이 불상 앞에 절을 하며 복을 비는데 사실 그곳에 부처는 없다. 부처는 깨어있음이다. 어떤 사람이 팔만대장경을 모두 외우고 있더라도, 그가 진리를 모르면 그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다. 명쾌한 이야기였다.

 라마나 마하리쉬 문답의 경우에는, 그가 오래전의 사람이 아니었기에, 기록이며 번역이 매우 정확하게 되어 있는 것 같았다. 또한 그의 대담을 읽어보면 불교 쪽의 이해와 기독교의 신(神)에 대한 해석이 모두 가능했다. 라마나 마하리쉬는 말했다. 진아(眞我)를 찾기 위하여 ‘나는 누구인가?’라고 자신에게 끝없이 물어보라. ‘나’라는 느낌을 꽉 잡고 절대 놓아주지 말라. 머리로 하지 말고 서늘한 가슴으로 하라. 활달하게 ‘나’를 끝까지 찾아보라. 물에 빠진 사람이 목숨을 구하기 위해 몸부림치듯이.

 

나는 라마나 마하리쉬의 가르침을 따랐다. 나는 ‘나는 누구인가?’라고 나 자신에게 의문을 던졌다.

나는 이 질문을 머리가 아닌 가슴에다 던졌다. 나는 누구인가? 길을 걸으면 발걸음에 이 말을 붙였다. 밥을 먹으면 이빨에 붙였다. 나는 오직 ‘나는 누구인가?’만 했다. 나는 매일 저녁 낙동강가로 갔다. 명상을 하면서는 이 물음을 내 호흡에 실었다. 나는 앉아 있는 동안에는 더욱 강렬하고 능동적으로 몰아붙였다. 나는 단 하루도 빠짐없이 한두 시간 이상 낙동강가에 차를 세우고 앉아 명상했다. 명상을 하고 일어나면 ‘나는 누구인가’는 자연스러우면서도 더욱 강렬하게 내게 붙었다. 밤이 깊어서야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화두(話頭)하는 방법을 이야기한 옛 선사들의 경구(警句)가 이런 내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어묵동정일여(語黙動靜一如). 한 순간도 놓치지 말라. 성질 급한 놈은 사흘이면 된다. 나는 강렬하게 몰아붙였다. 나는 내 목 주위로, 긴 창을 손에 든 악마들이 둥글게 둘러서 있다고 여겼다. ‘나는 누구인가’를 놓치면 즉시에 악마의 창끝이 내 목을 뚫고 들어온다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누구인가? 이런 생각을 하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한밤중 집으로 들어가다가 나는 아파트 현관에서 별이 총총한 하늘을 올려보며 중얼거렸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내가 누구인지 정말 궁금했다. 나는 도대체 왜 지금 여기에 와서 이렇게 생로병사(生老病死)를 겪고 있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생각이나 지식으로, 나는 누구라고 말할 수 없었다. 오직 밖으로만 향했던 내 눈을 나는 내 안으로 돌려 보았다. 내 몸 안은 깜깜한 어둠으로 꽉 들어차 있었다.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것이 나는 서럽고 분했다. 나는 하늘의 별을 쳐다보며 혼자 눈물을 흘렸다. 

 

나는 누구인가? 다리를 절며 길을 걸어가고 있는 병든 노인이 내 모습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시간은 오직 관념이었다. 과거는 모두 내 기억에만 있었고 미래는 모두 내 상상 속에만 있었다.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내 마음은 늙지도 젊지도 않았다. 나는 어제도 나였고 오늘도 나였다. 어릴 때도 나였고 늙어서도 나일 것이었다. 불교의 윤회를 가져와 이야기하면 백 살 노인과 열 살 아이 중에 누가 더 오래 살았다고 말을 할 수 있는가. 문득 고개 들면 내 몸은 병들어 있고 문득 고개 들면 내 몸은 늙어있고 문득 고개 들면 내 몸은 죽음 앞에 있는 것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다리를 절며 늙은 몸을 이끌고 있는 이 나는 누구인가? 유치원에 가겠다고 가방을 등에 지고 달려가는 이 나는 누구인가?

길거리를 뛰어다니는 똥개도 내 모습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대행(大行)스님은 말했다. 당신 부모가 죽어 옆집에 소로 태어나도 당신은 모른다. 논두렁의 소가 나였고 길거리의 개가 나였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없었다. 모든 살아있는 것과 모든 죽어있는 것이 모두 나였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차츰 내 몸뚱이가 나라는 의식(意識)이 엷어지고 있었다. 나는 누구인가? 내 앞에 펼쳐진 이 세상과, 내가 끌고 다니는 이 몸뚱이와, 나라는 의식 사이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있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이 질문은 ‘세상이 무엇인가?’와 다름없이 내 앞에 전개되고 있었다. 나는 누구인가?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잠이 점차로 줄어들었고 육식(肉食)은 저절로 끊어졌다. 그 당시 우리 회사는 회사에서 가까운 보리밥 뷔페를 월 식당으로 잡아서 점심을 해결했었다. 나는 그곳에서 하루 점심 한 끼 식사만을 했다. 그것도 아주 적은 양만 먹었다. 나는 음식의 맛도 잃고 있었다. 나는 누구인가? 일을 하면서도 길을 가면서도 내 가슴에서는 나는 누구인가 뿐이었다.

내 신체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나는 먼저 뱃살이 빠졌다. 내 얼굴은 투명하게 맑아졌고 눈빛은 고와졌다. 오랜만에 나를 본 나의 동생들이 매우 놀라워했다. 얼굴은 분가루를 뒤집어 쓴 것처럼 뽀얗고 이목구비(耳目口鼻)는 화장을 한 듯이 선명하게 보인다고 말했다. 좌선을 하고 일어서면 몸은 날아갈 듯이 가볍게 느껴졌다.

 

그러나 나는 답답했다. 내 안에서는 혹독한 전쟁을 치르고 있는데 밖으로 보이는 내 모습은 안온(安穩)하고 아름답다니 신기한 노릇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이 질문은 내게 착 달라붙어서 떨어져 나가지를 않았다. 또 어떤 날부터 나는 아예 내 의식의 통제 밖에서 ‘나는 누구인가?’를 하고 있었다. 기이한 일이였다.

나는 잠들기 직전까지도 나는 누구인가였고, 밤에 잠이 깨어도, 내 의식보다 먼저 ‘나는 누구인가?’가 들어왔다. 그 후 나는 꿈속에서도 ‘나는 누구인가?’가 들이닥쳤다. 꿈의 내용과 상관없이 그 꿈을 ‘나는 누구인가?’가 점령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이러다가 어떻게 되는 것이 아닌가하고 걱정이 될 정도였다. 이제는 ‘나는 누구인가?’를 떼어내려고 마음먹어도 떨어지지 않았다. 내 가슴으로 집채만한 불덩이가 들어서더니, 드디어는 내 눈앞에 하늘과 땅을 관통하는 의심의 기둥이 턱하니 들이 닥쳤다. 이제는 ‘나는 누구인가?’를 내가 피할 곳이 없어져 버렸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집채만 한 굵기의 이 의심의 기둥은 끝없이 하늘로 솟아 있었다.

 

“아아-, 답답하다 답답해…….”

 

‘나는 누구인가’에서 도망갈 곳이 없는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 날도 나는 어김없이 낙동강변에 차를 주차하고 명상을 했다. ‘나는 누구인가’는 내 의식의 통제 너머에서 저절로 돌아가고 있었다. 호흡도 내 의식의 통제 밖에서 이어지다 끊어지다 했다. 나는 내가 살아있는 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소리를 내어 보았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선가 강렬하게 그 답이 왔다. 자재보살(自在菩薩). 나는 누구인가? 자재보살!

차를 몰고 집으로 들어가는 그 밤, 온 세상이 훤하게 밝았다. 나는 한밤중에 집으로 들어가 세수를 하기 위하여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 거울 속에 한 남자가 보였다. 아주 낯선 사내가 그곳에 있었다. 나는 그 거울 속의 내가 너무 낯설었다. 나는 ‘너는 누구냐?’라고 물으며, 거울 속의 나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나는 누구인가?’만 남고 나는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내가 없어졌다. 아니 나라는 의식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내가 돌아오라고, 몸을 흔들고 머리를 쥐어뜯어 보았다. 나는 누구인가? 그래도 내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잠자리에 반듯하게 누웠다. 나는 누구인가? 눈을 감고 있어도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곧 나는 완전히 죽어버렸고 또한 완전히 깨어났다. 나는 처음으로 온 하룻밤을 깨어 있었다. 나는 끝을 헤아릴 수 없는 맑은 달 속에서 칼날같이 빽빽한 ‘나는 누구인가?’를 들고 완전히 깨어났다. 잠이 잠인 줄 꿈이 꿈인 줄 알며 빛과 함께 깨어있음. 성성적적(惺惺寂寂)!

 

아침에 잠이 깨며 내 의식이 돌아왔다. 부엌에서 아내가 아침 준비를 하는 소리가 들렸고 눈앞에는 자고 있는 아들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아들을 내 가슴에 꼭 감싸 안았다. 나는 말할 수 없이 행복하고 행복했다.

밤사이에, 내가 태어나고 자라고 익혀왔던 세상은 완전히 뒤집혔다. 현관을 나와 나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나는 누구인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세상을 향해 환하게 웃었다.

나는 내가 짐승에서 마귀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불생불멸(不生不滅) 불구부정(不垢不淨) 부증부감(不增不減)1)의 나. 불에 들어도 타지 않고 물에 들어도 젖지 않는 것이 나였다. 나는 백 명의 무당이 내 앞에서 내가 잘못되라고 푸닥거리를 해도 그들을 향해 다정하게 웃을 수 있고, 천하에 둘도 없는 미인이 발가벗고 나를 유혹해도 애정을 가지고 웃을 수 있는 내가 된 것이었다. 그때가 내 나이 마흔두 살 6월 하순이었다.

 

그 후 깨어있는 잠과 꿈은 불규칙하게나마 또 발생했다. 나는 화두(話頭)와 관법(觀法)과 기도(祈禱)와 염불(念佛)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대상과의 일체도 몇 차례 겪었다. 나는 바위가 되기도 했고 풀이며 나무가 되기도 했다. 내 앞에 펼쳐진 세상이 나였다. 깊은 밤 어둠이 걷혀 하늘이 환하게도 보였다. 아내를 안고 잠을 자며 시간과 공간의 틈을 비집고도 들어갔다. 이십대 내가 S와 함께 잠을 자며 겪었던 그 이상한 경험들이, 성에 대한 신비감과 호기심 때문이 아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