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은 값을 헤아릴 수 없는 보석처럼 귀중합니다. 이렇게 사람 몸을 받은 이에게는 모든 고통으로부터의 자유를 성취할 길이
있습니다. 즉, 자기 자신의 실체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2.
만약 그대 자신의 실체를 깨닫고 싶으면, 그 실체 안에 확고히 자리잡고 있는 진인의 은총을 얻어야 합니다. 지知 스승(jnana
Guru)을 한 인간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대가 아무리 대단한 따빠스(tapas:고행)을 한다 할지라도, 진지眞知(jnana) 안에 실제로
확고히 자리잡고 있는 참스승(Sat-guru)을 찾아가지 않고는 해탈의 변치 않는 지복을 성취하기는 불가능합니다.
3.
(꽃에) 향기가 저절로 존재하듯이, 진리를 깨달은 사두들에게도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해탈의 지복을 성취하는 최선의 수단은 진인들을
가까이하는 것입니다. 코끼리가 꿈속에서 본 사자가 그 코끼리를 깨어나게 하듯이, 지知 스승은 무지의 꿈속에 있는 제자를 깨어나게 합니다.
4.
모든 욕망을 포기하는 가장 쉬운 길은 그저, 모든 욕망을 포기해 버린 사두들과 접촉하는 것입니다. 진인들을 친견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들을 섬기는 것은 더 좋습니다. 그들의 말씀을 경청하는 것이 그보다도 더 좋습니다. 최고의 스승 헌신(Guru bhakti)은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입니다. 본연진인本然眞人(sahaja jnanis)에 대한 헌신 없이는 본연의 상태(sahaja state)를 성취할 수
없습니다.
5.
환상과 무지와 고통으로 가득 찬 삶의 고락의 원인인 땅, 욕정(여자), 그리고 황금(돈)에 대한 세 가지 욕망을 제거하여 불변의 지복을
성취하려고 하는 제자는, 진아를 깨달은 진인인 참스승을 찾아가서 "저는 누구입니까? 이 세계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실재가 무엇입니까?"
하고 물어야 합니다.
6.
우리는 마음을 참스승의 가르침에 두고, 이 불건강한 몸과 마음은 우리가 아니며, 우리는 존재-의식-지복으로 가득
찬(sat-chit-ananda mayam) 진아임을 분명히 이해해야 합니다.
7.
부단한 염송이나 "나는 진아(atma)다. 모든 것이 진아다." 하는 명상을 하십시오. 그러면 온갖 이익이 따라올
것입니다.
8.
진아 깨달음만이 불변의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다른 모든 것은 환상적인 삶입니다. 그것들을 믿지
마십시오.
9.
"나는 누구인가?" 하고 탐구하는 것은 철학적인 탐구입니다. 이것이 직접적인 길이고, 쉬운 길입니다. 다른
모든 길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뭔가 성과를 볼 것입니다.
10. "나는 몸이다." 하는 생각은 모든 악을 창조할 수 있습니다.
11.
우리가 "나는 몸이다." 하면서 육신에 대한 숭배심을 가지고 있는 한, 우리는 진아를 깨닫지 못하고 평안도 성취하지 못합니다.
진아(자기)를 은폐하면서 진리인 것처럼 보이는, 꿈과 같이 참되지 않은 세계 전체가, 깨달음(진지)의 상태에서는 진아 자체로 빛을 발할
것입니다.
12.
마음 아닌 어떤 적도 외부에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지혜에 의해 제어되면, 세상에 마음 아닌 어떤 친구도
없습니다.
13.
마음이 제어되지 않는 것은 오직 욕망 때문입니다. 욕망이 모든 고통의 원인입니다. 모든 욕망의 근본 원인은 육신이 욕망한다는 것입니다.
육신이 욕망하는 까닭은 "나는 몸이다." 하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나는 몸이다." 하는 관념이 제거되면, 모든 욕망이 저절로 떠나버릴
것입니다.
14.
모든 사람들은 욕망이라는 밧줄에 묶여 고통받습니다. 욕망을 포기하면 아무런 고통도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무랄 데 없을 사람들도 욕망에 의해 속박되어 있습니다.
15. 욕망이야말로 모든 사람에게 (찾아오는) 죽음의 신인 야마(Yama)와 같은, 끝없는 고통을 야기합니다. 욕망이 없으면 우리는 모든 고통에서 벗어난 행복을 성취합니다.
16.
욕망 때문에, 고상한 사람들도 생포된 사자처럼 수모를 당합니다. 욕망은 눈을
가립니다.
17.
욕정을 극복하면 신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큐피드(사랑의 신)는 죽음의 신 야마보다 더 잔인합니다. 야마는
마지막에 가서야 죽이지만, 큐피드는 영원히 고통을 가합니다.
18.
마치 참깨가 착유기 안에서 으깨지듯이, 사람은 욕정에 의해 짜부라집니다. 그는 욕정의 불길에 의해 끓여지고
태워져서 불탄 낙엽처럼 됩니다.
19.
독은 마셔야 죽습니다. 칼은 베여야 죽습니다. 그러나 욕정의 대상은 그것을 생각만 해도 사람을
죽입니다.
20.
욕망은 어떤 것이든 그것을 얻기 전에는 수미산(Mount Meru) 만하게 보이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것을
얻고 나면 원자만큼 작아 보이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메워버려야 할 더러운 구덩이치고 욕망보다 더 나쁜 것은
없습니다.
21.
그토록 많은 고통을 야기하는 욕망을 제거할 길이 없는가? 있습니다. 그것은 온갖 종류의 욕망의 근원인 몸-욕망(body-desire)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몸-욕망의 원인은 "나는 몸이다." 하는 생각입니다. 이것을 포기하지 않는 한, 어떤 것도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진정한 포기가 될 수 없습니다.
22.
모든 고통의 원인은 “나는 몸이다” 하는 생각일 뿐입니다. [소위 말하는] 21가지 종류의 지옥은 바로 이 "나는 몸이다." 하는
생각입니다.
23.
누구나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들은 무엇이 진정한 행복인지를 깨닫지 못하고, 그것을 제대로 추구할 줄 모릅니다. 그들이 고통받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놀라운 환幻(maya)이란 바로 이것입니다.
24.
이 환의 원인은 바로 "나는 몸이다." 하는 관념입니다. 만약 그것을 없애고 싶으면, 먼저 그대가 누구인지를 아십시오. 그러면 모든 것을
알게 됩니다. 자기 자신의 진리를 모르고서 다른 모든 것을 알려고 하는 것은, 자기 얼굴도 모르는 봉사가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알아내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25.
진아 깨달음(진아지, Atma-jnana)은 바로 자기 자신의 진리를 깨닫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진아)를 알면 일체를 알게 됩니다. 그 뒤에는 성취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26.
진아 깨달음은 세간의 길과 정반대입니다. 모든 세간 사람들은 아래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지혜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위쪽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따라서 아래쪽으로 향해 가고 있는 사람들과 많은 교분을 맺지 마십시오.
27.
진아 깨달음만이 불변의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행위(karma), 헌신(bhakti), 요가(yoga) 기타의 진리의 길(san-marga)들은 모두 지(jnana)(의
길)의 토대입니다.
28.
눈을 감고 있는 것 자체는 따빠스가 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의 진정한 형상을 깨닫는 것이 궁극적인
삼매의 상태입니다.
29.
에고의 죽음에 이르는 길을 알면, 우리는 지복스러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나"(I)가 죽고,
"그것"(That)으로 사십시오.
30.
자기 자신의 존재[진리]를 깨달을[알] 때에만, 완전한 도덕, 육체적 노동, 교육의
혜택, 그리고 선행(善行)을 하는 것을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마음이 생겨날 것입니다.
31.
모든 사람은 매일 대상 없는[꿈
없는] 잠 속에서 진아의 위없는 지복을 즐깁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행복을 얻기 위해 대상을 추구합니다. 그 이유는 자기 자신의 참된 성품에
대한 탐구가 없기 때문입니다.
32.
육신은 지각 능력 없는 물건과 같습니다. 이것이 그 자체로서 "나"라고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참된 성품에 대한 우리의 일상적 경험 속에서 분명합니다.
33.
해탈의 상태(moksha)는 아무나 쉽게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이루려면, 무지한 사람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야합니다. 우리가 그 길을 가면 아무도 만날 수 없는 시험과
시련이 닥쳐올 것입니다. 천국은 우리의 안에 있습니다. 그러니, 왜 그것을 바깥의 거짓된 대상들에서 추구해야 합니까? 우리가 이것을 알게 되면
모든 욕망과 고통이 사라질 것입니다. 마음의 몰입이야말로 해탈입니다.
34.
최선의 도덕적 행위는 "나는 누구인가?" 하는
탐구입니다. 최선의 아짜라(acharas)[여러 계급의 도덕 계율]는 냐나아짜라(jnanachara)[진지의 체험에서 나오는
계율]입니다.
35.
무지를 가지고 백 년을 사는 것보다, 진지를 가지고 하루를 사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36.
(다른 사람의) 과오를 자애慈愛로 관용하고 실수를 지혜로 관용하며, 모두를 그대 자신으로 보십시오. 만약
그러고도 고통을 받는다면 저에게 말하십시오.
37.
오관의 즐거움이 진아의 영구적인 참된 행복보다 낫다고 생각하면서 그대의
기력(energy)을 세속적인 일들에 소모하지 마십시오. 혀는 불과 세 치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여섯 자 되는 사람을 죽입니다.
그러므로 혀를 제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다른 감관들을 세속적인 일에 몰두하게 하지 않고 진리의 길에 몰두하게 하면 우리는
불변의 지복을 얻을 것입니다.
38.
날줄과 씨줄이 없이는 천이 있을 수 없습니다. 고통과 쾌락이 없이는 삶이 없습니다. 낮과
밤이 없으면 날이 없습니다. 선과 악이 없으면 삶이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고통과 쾌락, 그리고 모든 득(得)과 실(失)을 평등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면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39.
다양성은 세계의 본질입니다. 이것을 보고 염증을 느끼지 마십시오. "이것을 보는
것은 누구인가?" 하고 탐구하여 그대 자신을 깨달으십시오. 그러면 평안과 지복이 일어날 것입니다.
40.
모든 살아 있는
존재들을 자기 자신으로 여기는 사람은 평안과 지복을 얻을 것입니다.
41.
일체를 무관심으로 대하는 사람에게는 일체가 저절로
옵니다.
42.
그대가 보고 듣는 모든 것이 참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육신을 "나"라고 여기면서 우리가 하는 모든 말은
큰 거짓말이 됩니다.
43.
다른 사람들을 교정할 수는 없습니다. 자기 자신을 교정하는 것이 더 쉽습니다. 숲 속에
가시나무들이 있다고 해서 숲 속에 샌들을 다 깔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자기 발에 샌들을 신는 것이 더 쉽습니다.
44.
감각
대상들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는 만큼 진아의 빛이 넘쳐날 것입니다. 온 힘을 다해 우리는 감각 대상들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고 우리의 참된 상태를
성취해야 합니다.
45. 고통은 생각을 통하지 않고서는 어떤 방법으로도 일어날 수 없습니다. 생각에 소모되는 기력이 명상으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육체적 집착과 세속적 집착에 대한 생각들 또한 전환되어야 합니다. 나약함을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46.
마음은 염송과 "나는 진아다. 진아는 모든 것이다." 하는 명상을 계속해야 합니다. 육신이 감옥 안에 있다
해도, 마음은 "나"로서의 자신의 참된 성품에 대해 명상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진아는 운명에 의해서도, 두뇌에 의해서도 속박되지 않습니다.
모든 업은 육신에만 일어납니다.
47.
이 세간적 삶은 하나의 긴 꿈입니다. 이것은 환幻의 삶입니다. 그것을 믿지 마십시오.
이 꿈같은 세계를 포기하여 우리가 자기 자신의 진리를 깨달으면, 불변의 지복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48.
끝없는 세월 동안
무지로 인해 행복이 감각 대상들 안에 있다고 계속 생각해 왔기 때문에, 그것은 습관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오직 부단한 자기탐구에 의해 이 무지를
뿌리뽑아야 합니다.
49.
마음은 지속적인 영적인 수행에 의해서 순수해집니다. 일단 마음이 순수해지면, 항상 존재하는 본래적
자기가 하나의 종從으로서 그에게 빛날 것입니다.
50.
개천을 흐르는 물은 신성합니다. 개천을 흐르는 물처럼, 만약 몸과
마음이 진리의 건전한 길의 평화로운 선행善行에 몰두하면 삶이 신성하게 됩니다.
51.
게으른 사람 외에는 아무도 나쁘지 않습니다. 항상 건전한 일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좋지
않습니다. 일하지 않으려는 사람은 어떤 중요한 것도 결코 성취할 수 없습니다. 모든 부富는 일하기 좋아하는 사람을 저절로 찾아옵니다. 만약
마음이 진리의 길(sanmarga)에서 하는 선행(善行)이나 자기에 대한 명상에 몰두하지 않으면, 나쁜 생각들이 마음에 들어와서 삶 자체를 망칠
것입니다. 따라서 게으름을 몰아내는 사람의 삶만이 만개할 것입니다.
52.
행위를 하지 않은 채 게으르게 지내지 마십시오. 항상 평화롭고 좋은 일을 하십시오. 우리가 아무런 결과도
기대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돕는 선행을 계속 하면 이익이 있을 것입니다. 욕망을 가지고 하는 행위들만이 사람을 탄생의 바다로 떠밉니다. 욕망을
가지고 일을 하면 속박이 생겨납니다. 그러나 같은 일을 욕망 없이 하면 우리는 해탈합니다.
53.
행위의 결과에 대한 욕망이 제거되고 일이 마음과 말과 몸을 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수행되면, 비로소 진아의
비할 바 없는 혜택이 주어질 것입니다. 일하는 것이 창피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더 높은 상태에 결코 도달할 수 없습니다.
54.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서는 부단한 명상이 필수적입니다. 명상은 단지 자기 자신의 참된 성품을 잊지 않고
있기 위한 것입니다. 진아에 대한 명상과 함께, 이기적인 집착 없이 신의 의지에 의해 자기에게 주어진 직무를 수행하는 것 역시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한 중요한 길입니다.
55.
마음의 평안을 위협하는 적敵은, 욕정(kama), 증오(krodha) 및 탐욕(lobha)입니다. 모든
집착으로부터 벗어난 지고의 상태를 성취하고 싶은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이 모든 적들로부터 주의 깊게 보호해야 합니다. 모든 선악의 주된 뿌리는
마음의 생각들일 뿐입니다. 일체가 오직 마음의 상태 대 로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마음을 순수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욕망하는 생각이라는 적들이 우리 마음의 성채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용하면, 그것들이 우리를 노예로 삼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성채, 즉
마음의 입구를 단단히 닫아두어야 합니다. 만약 "나는 몸이다." 하는 생각을 포기하면 모든 덕스러운 자질들이 계발될 것입니다. 불변의 행복을
우리 모두에게 하사하는 길은 "나는 몸이다." 하는 생각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56.
삶의 목표는 진아 깨달음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이것에만 두어야 합니다. 쾌락과 고통은 마음의
생각들에 불과하며, 진아에는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즉, 외부의 대상에서 오는 쾌락이나 고통은 진아에 어떠한 변화도 주지 못합니다. 마음으로
영적인 생각들을 하는 것과 몸으로 덕스러운 행위를 하는 것은 진아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보조 수단입니다.
57.
쉬지 않고 가는 시계만이 정확한 시간을 알려줄 수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몸과 마음이 항상 진리의
길에 몰두하고 있으면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58.
어떤 업이라 할지라도, 진리를 깨닫고 자기가 행하는 행위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여, 진아의 참된 형상[實相]의 상태 안에 머무르면서 이것을
떠나지 않는 사람은 구속하지 못합니다.
59.
진리를 깨닫고 싶은 사람이 아무 집착 없이 그에게 다가오는 모든 행위(Karmas)들을 수행하면, 그는
모든 속박으로부터의 해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가장 고귀한 길은 그 결과에 대한 욕망 없이 행위하는 것이며, (그러한 사람은) 점차 그의
분별의식을 감소시켜, 모든 살아있는 존재들(jeevas)을 채우고 있는 것은 그 자신의 진아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60.
좋은 일에 시간을 쓰십시오. 그것이 성공을 위해 지불할 대가입니다.
61.
과도한 식사, 과도한 잠, 과도한 일, 나쁜 사람과 사귀는 것, 나쁜 생각들, 그리고 게으름이 진리의 길에
있어서의 여섯 가지 장애입니다.
62.
운명에 의해 할당된 일을 하는 데 있어서는 어떤 노력도 필요 없습니다. 운명 자체가 일을 끌어냅니다. 그대의 모든 직무를 걱정 없이
하십시오. 노력은 운명에 의해 할당되지 않은 새로운 일을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올바른 노력을 통해서만 좋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63.
노력은 따빠스(고행)입니다. 노력 없이는 신의 은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마음의 용기를 잃지 않고
진아(Atman)에 대한 명상을 계속해 나간다면, 은총의 삶을 성취하게 될 것입니다.
64.
우리는 진아에 대해 끊임없이 명상함으로써 욕망과 감정을 정복해야 합니다. 진아에 대해 명상하기 위해 반드시
눈을 감고 앉아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상태에서든, 무슨 일을 하든, 세상 사람들이 모르게, 마음속으로 은밀히 명상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쉬운 길입니다. 부정한 아내가 남편과 함께 있으면서도 남자친구를 생각하듯이, 활동을 하는 중에도 우리는 자신의 진아에 대해 명상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장부丈夫는 모든 감각 쾌락을 포기한 사람입니다. 감각의 노예가 된 사람은 고통을 받습니다.
65.
어둠을 소멸하는 방법은 한 가지뿐입니다. 빛을 가져 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모든 고통을
소멸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약밖에 없습니다. 참스승을 통해서 자기 자신의 실체를 배우고, 부단히 "나는 진아다. 진아는 모든 것이다." 하고
명상하기만 하면 됩니다. 지혜(jnana)는 부단한 명상입니다.
66.
지속적인 자기탐구는 심장을 정화합니다. 탐구는 스승의 은총 없이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탐구 없이는 지혜를
성취할 수 없습니다. 스승의 은총을 통해서만이 진아―일체가 그것에 의해 자기로서 존재하는―의 지복의 상태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67.
아무리 대단한 학자라 할지라도, 스승을 섬기고 욕망 없이 공덕행功德行을 하지 않으면 진아 깨달음을 성취할 수 없습니다. 지혜는 단순히
경전을 공부한다고 해서 얻어지지 않습니다. 마야(maya)를 정복한 위대한 영혼인 참스승의 은총을 얻지 않고는, 신의 은총을 성취할 수
없습니다.
68.
진아는 누구나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것을 깨닫지 못하게 하는 것은 마야입니다. 우리가 이
마야를 정복하고 싶으면 모든 사람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들이지 않는 그러한 노력을 들임으로써만, 모든 사람이 성취할
수 없는 해탈의 상태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69.
자기(진아)는 모두에게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이보다 더 소중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진아는
지복스럽습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참된 성품입니다. 잠 속에서 우리는 모두 매일 진아의 가장 수승殊勝한 지복을 체험합니다. 우리가 바깥에서
고통을 추구하면서 그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잠의 지복에 관한 진리를 모르는 지성 때문입니다.
70.
벼를 두드리면 겨가 제거됩니다. 구리를 닦으면 녹이 제거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자기탐구에 의해 진아를
가리는 무지가 제거되면, 진아지眞我知가 저절로 빛을 발하게 됩니다.
71.
잠 없는 잠의 지복을 성취하려면 마음이 "나"로서의 진아에 대해 명상해야 합니다. 몸은 덕스러운 행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순수성의 성질(satvik quality)이 발달됩니다. 진아의 성품은 오직 청정한 순수성의 성질일 뿐입니다.
72.
지혜의 주된 적은 다섯 가지 감관입니다. 이보다 더 큰 적은 마음입니다. 이보다 더 큰 적은 오직 "나는 몸이다." 하는 생각입니다.
73.
세계가 장님에게는 어둡고 눈을 가진 사람에게는 밝듯이, 그것이 진인들에게는 지복스럽고 범인凡人들에게는
고통스럽습니다. "모든 것이 브라만이다." 하고 부단히 명상하는 사람은 좋은 감로甘露(ambrosia)를 먹은 것과 같습니다. 그는 죽음 없는
진아의 상태를 성취할 것입니다.
74.
자기가 누구인지를 깨닫고, 항상 진아를 잊어버림 없이 안주하는 사람만이 감관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만이 확고한 마음(buddhi)을 가졌다고 말해집니다. 자기 마음이 감각 대상들을 마음대로 추구하게 허용하는 사람은 억제할 수 없는 갈망을
갖게 될 것입니다. 욕망이 충족되지 않으면 분노가 일어납니다. 분노는 반 미친 증세입니다. 따라서 감각 대상에 대한 욕망 때문에 사람은 자각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재앙을 만날 뿐입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다 해도 우리의 내면에 평안이 없다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마음의 평안은 진아의
참된 상태 안에 안주하면서 그것을 떠나지 않을 때에만 지속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의 실체를 잊어버리지 않고 있는 것이, 유일한 좋은
따빠스입니다.
75.
등불을 켜면 어둠은 없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는 몸이다." 하는 관념이 일단 포기되면, 개인적
자아의 느낌(jeeva-bodha)이 없습니다. 그러면 참된 상태를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내가 진아라는 확고한 명상이 되면, 자기 자신을
육신과 동일시하는 마음 상태가 저절로 뿌리뽑힐 것입니다. 진아에 대해 명상하지 않으면 육신과 세계에 대한 생각들이 일어나서 그대에게 고통을
야기할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지각없는 바보와 오랫동안 같이 살면, 그것 때문으로도 진아지가 흩어질 수
있습니다.
76.
누가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를 탐구하면 마음은 없습니다. '나'만이 존재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하고 탐색해 들어가면 자기 자신의
근원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탐구에 의해 자기 자신의 진리를 깨달으면, 우리는 이 몸도 마음도 아니고 일체에 두루하는 진아 자체임을 깨닫게
됩니다. “나는 일체에 두루하는 진아다” 하는 부단한 명상에 의해, "나는 몸이다." 하는 가정은 저절로
사멸됩니다.
77.
그대는 항상 진아 자체입니다. 그러니 진아를 은폐하는 막을 제거하십시오. 이것만 하면 됩니다. 무지와
의심과 망상은 진지의 지복에 대한 세 가지 장애물입니다. 여러 생에 걸쳐 형성된 원습(vasanas) 때문에 이 세 가지 장애물 모두가 종종
일어나서 진지의 지복을 방해합니다. 이러한 장애물이 일어나면, 스승과 상의하여 그의 조언을 들은 다음, 그것에 대해 성찰하여 (그것을) 명료하게
이해하게 되면 모든 문제가 사라질 것입니다.
78.
무지는 자기 자신의 존재[진리]를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의심은 스승의 말씀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망상(vipareeda)은 무상한 세계를 영구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육신을 진아인 ‘나’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에 대해 부단히 명상하여 자기
자신에 대한 진리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나면, 이 모든 무지와 의심과 망상은 소멸될 것이고, 변치 않는 진아의 지복을 성취하게 될
것입니다.
79.
신은 도처에 있으며, 없는 곳이 없습니다. 만약 '나'와 '마음'이 사라지면, 그대는 도처에서 오직 신의
현존을 봅니다. 모든 고통이 저절로 일어나는 것은 분별심(bheda buddhi) 때문입니다. 이 분별심을 포기하면 외부적인 어떤 일도 진아의
평안을 해치지 못합니다.
80.
심장의 명료함(Clarity of the Heart)이 해탈입니다. 무엇이 참되지 않고 무엇이 참된지를 관찰하고 나서 참된 상태에
안주하는 것이야말로 해탈입니다.
81.
모든 것은 신의 형상들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마음대로 어떤 일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음과 말과 몸으로 다섯 가지 큰 죄(five great sins)를 저질러서는 절대
안 됩니다. 일체를 진아로 보십시오. 그러나 나쁜 생각은 결코 하지 마십시오. 나쁜 사람을 욕하지 마십시오. 나쁜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마십시오.
나쁜 행위를 하지 마십시오. 평화로운 방식으로 모든 악을 회피하십시오.
82.
'생각 없이 머무름'이란 이 육신이 '나'라는 기만적인 생각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할 뿐입니다. 더욱이
돌같이 움직이지 않고 있다 해서 생각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순수성의 마음은 생각이라고 불리지 않습니다. 청정 순수성은 신 자신입니다.
83.
모든 고통은 욕망과 분노의 생각 때문에 일어날 뿐입니다. 순수한 마음 안에서 순수한 생각들이 일어나면, 평안이 감소하지 않을 것입니다.
깨끗한 거울 앞에 다른 깨끗한 거울을 놓으면, 그 사이에는 아무것도 분별할 것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순수한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생각들도
진아에는 낯선 것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84.
세상 속에 머무르십시오. 그러나 세상이 그대 안에 머무르게 하지는 마십시오. 즉, 세속적 욕망이 그대의 내면에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분주한 세상 속에서 아무 걱정 없이 잠을 자는 것과 같습니다. 마음속에서 욕망을 포기하는 것이야말로
출가(renunciation-세속포기)입니다. 아내와 가족을 포기하는 것만이 출가는 아닙니다.
85.
우리는 자기보다 못한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으로 보려고 애써야 합니다. 우리가 겸허해지면 질수록 더 큰 이익이 있습니다. '나는 덕 있는
출가자다.' 하고 생각하는 것은 흉포한 것 중에서도 흉포한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자신을 낮추는 사람, 모두에게 친절한 사람, 그리고 모두를
평등하게 대우하는 사람은 진지를 성취할 것입니다.
86.
문제들을 보아도 동요되면 안 됩니다. 우리의 마음이 올바른 상태에 있으면 모든 것이 올바르게 보일
것입니다. 우리가 올바르면 모든 것이 올바를 것입니다.
87.
"나는 몸이다." 하고 말하는 에고가 죽어야만 행복한 삶이 있게 됩니다. 현인들은 "죽은 사람처럼
유랑하라."고 말합니다. 진지를 성취하는 것은 다시 태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나는 몸이다." 하는 앎을 뿌리뽑아야
합니다.
88.
모두를 자기 자신의 진아로 보게 되면, 고통이 침범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외부적인 삶에서는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을 마치 연극에서처럼 분별심 없이 행위해야 합니다. 올바름과 사랑의 길은 밟아가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행복'이라는 상품을 사기
위해서는 '고통'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89.
꿈과 생시의 상태가 하나라는 것을 확신하는 사람이 진인입니다.
90.
호수의 둑을 걷는 사람은 한쪽으로 호수를 보고 다른 한쪽으로 논을 봅니다. 마찬가지로, 자기(진아)의 실체를 깨달은 진인은 세상의 근원인
진아와 함께 세상도 봅니다.
91.
부富와 욕망을 통해서 생기는 행복을 독毒처럼 보는 사람은 진인이 될 것입니다.
92.
부와 여자가 그의 노예가 되는 사람이 진인입니다. 진지가 없으면 남자도 여자입니다. 보이는 모든 것은 하나의 긴 꿈이라고 확신하는 사람이
진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치 이 꿈 세계(dream-world)가 실재하는 것처럼 행동해야 합니다.
93.
사람을 기만하는 믿을 수 없는 다섯 감관을 정복한 사람은 죽음의 신[야마]을 죽여 버린 위대한 영웅입니다.
94.
진아 깨달음에서 생겨난 심장의 명료함(clarity of Heart)을 가지고 있어서, 추위와 더위,
쾌락과 고통, 그리고 칭찬과 비난에 평온한 사람에게는 절대적 진아를 보는 것(darshan)이 영구적으로 지속됩니다.
95.
변치 않는 지복의 위없는 상태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신의 은총이 한 근본 원인이며, 사두들을 가까이하는
것이 한 근본 원인이며, 감각 쾌락 안에서 결함을 보는 것이 한 근본 원인이며, 무착심無着心(dispassion)과 부단한 노력이 한 근본
원인이며,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잊지 않는 것이 한 근본 원인입니다. 도둑들은 사람들이 깨어있는 집에는 들어가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항상 진아에 대한 명상을 하면서 살아가면, 다섯 감각의 도둑들은 안으로 들어오지 않을 것입니다. 진실로 외부적인 것들 안에는 아무런 행복이
없습니다.
96.
각자는 자신의 욕망에 따라서 행위하며 그에 따른 과보를 받습니다. 외부적인 것들에 집착하지 말고 그릇된
일을 피할 것이며, 마음을 내면으로 돌려서 "나"인 자신의 진아에 대해 명상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욕을 하며 모욕하거나 칭찬하면서
추켜세워도, 우리는 모든 살아 있는 존재들에 대해 평등한 눈으로 평온을 유지해야 합니다. 부단히 명상하여 의식이 완전한 힘을 얻도록 해야
합니다.
97.
마음의 평안을 얻는 주된 원인은 원습을 뿌리뽑는 것입니다. 과도한 습이 에고를 만들어내며 모든 괴로움을
야기합니다. 그러므로 원습을 줄여야 합니다. 우리가 이름과 형상의 세계가 항상 실재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지니면 마음은 소멸되어 갑니다. 그리고
진아가 저절로 빛을 발합니다.
98.
우리가 인간의 몸을 받아 태어난 것은 갈망, 분노 등의 나쁜 성질들을 정복하기 위해서입니다. 진정한 자기(진아)를 "나"로서 명상하면,
갈망과 분노는 정복될 수 있습니다. 위없는 지복은 자기 자신의 진정한 자기(진아)에 대한 명상이 발전한 정도만큼 나타납니다. 갈망이라는 강력한
불길을 끄는 유일한 좋은 처방은 진아 깨달음이라는 감로의 비입니다. 갈망을 정복한 사람에게는 평온이 저절로
일어납니다.
99.
바다의 표면에는 파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깊이 잠수하면 아무 파도도 없고 고요만이 있습니다. 나무
꼭대기의 잎과 가지들은 (바람에) 흔들리지만, 나무줄기는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비록 마음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지라도
자기 자신의 진아는 고요히 머무릅니다. 이 진리를 깨달으면 진아의 평안이 결코 흐트러지지 않을 것입니다.
100.
신의 왕국은 우리의 내면에 숨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것을 바깥의 환상적인 대상들에게서
추구합니까? 우리가 내면에 숨겨진 신의 왕국을 발견하면 온갖 갈망과 모든 고통이 스스로 우리를 떠날 것입니다. 이 세간적 삶은 하나의 긴 환의
꿈입니다. 절대의 존재-의식-지복인 우리의 진아야말로 참됩니다. 인간의 몸을 받아 태어나는 것은 오직 이 소중한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입니다.
진아 깨달음은 부단한 자기탐구를 통해서만 성취됩니다. 일단 진아 깨달음을 성취하면 욕망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진아의 상태의 지복을
즐기면서 진아의 상태 자체 안에 머무르는 것이, 진아의 위없는 주처住處(abode), 즉 절대자의 주처(kaivalya)요 영원한 지복이자
해탈이며, 다른 모든 주처이기도 합니다. 진아의 상태를 떠나지 않고 사는 현명한 사람이 생존해탈자(jeevan mukta)입니다. 그러한
생존해탈자들은 온 삼계三界 내에서조차 아주 드뭅니다. 모든 살아있는 존재들이 그들로부터 이익을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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