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호
“아빠 저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어느새 부쩍 큰 둘째 아이가 아침 출근 전에 뜬금없는 말을 내게 던졌습니다. “글쎄 넌 뭐가 되고 싶어?” 아이의 갑작스런 질문에 저 또한 마음속에 늘 생각해두었던 것이 있었지만 왜 그런지 그런 대답보다는 딸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알고 싶어서 도리어 되물었습니다. “저는 요리사가 되고 싶어요.” “요리사?. 요리사가 되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되는데, 우리 다영이는 지금 열심히 공부하고 있나?” 언제나 그랬듯 제 부모님이 어렸을 적 제게 그랬던 것처럼 저도 어느새 아이들에게 공부라는 말로 모든 것을 시작하고 끝맺고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둘째아이와의 대화는 깊지 않게 끝났습니다.
사무실 책상에서 문득 오전에 있었던 둘째아이의 말이 생각이 났습니다. ‘과연 내 아이들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남들처럼 그저 평범한 사람....아니지 남들보다 잘나서 세간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정도의 사람!’ 웃음이 날 것 같은 생각들이 한동안 머릿속에서 뱅글뱅글 돌았습니다. 그러나 문득 지금 내 아이들에게 참된 교육이라는 것을 알려 주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교육을 하지 않고 그저 공부만을 강요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에 다시금 우리아이들의 현실을 되짚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책에서 배웁니다. 인간은 상하의 구분이 아닌 수평의 관계이기에 서로를 존중해주어야 하고, 아껴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수평의 관계보다는 수직의 관계가 더 많지요. 학교에서는 같은 급우라고 해도 힘이 센 친구와 공부 잘하는 친구가 그 보다 못한 친구보다는 언제나 위에서 내려다 볼 수밖에 없고, 몸이 작다는 이유만으로도 따돌림을 당하는 일들처럼 수직적인 관계로 이어지는 일들이 허다합니다. 사회생활에서는 더욱더 많은 일들이 이러한 현실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돈이라는 계량의 물질로 극심한 차이를 만들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현실에 저는 아이들이 자라면서 심어주어야 할 가치 있는 것들이 무언지를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고, 아이들에게 그것을 인식을 시키기 위한 교육의 작은 실천을 하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아이들과 같이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한 고민을 한 번이라도 하지 않은 적이 없을 겁니다. 저도 아이들에게 있어서 같은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지요. 흔히들 아이들에게 ‘우리 이번 주에는 공기 좋고 시원한 산행이나 한번 해볼까!’하며 인터넷에서 명산과 혹은 국립공원을 찾기 다반사였습니다. 때로는 전문 산악인들만 오를 수 있는 그런 곳마저도 아이들에게 가보자며 보채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유명한 산이나, 사람들이 붐비는 산을 간다고 해서 과연 아이들의 교육의 작은 실천이 이뤄질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저도 얼마 전에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아빠와 엄마의 손을 잡고 한 발 자국씩 내 딛는 그 즐거움을 원했고, 땀이 범벅이 된 얼굴을 수건으로 닦아주는 포근함을 원했고, 좁지만 한 자리에 앉아 김밥을 먹는 행복을 원했던 거죠.
저는 한 달에 두 번 정도 앞산을 오릅니다. 배낭에는 물과 간식을 챙겨 아이들 손을 잡고 오릅니다. 큰아이는 “아빠 힘들지 않으세요?”라며 제 얼굴을 보면서 미소를 짓기도 합니다. 작은아이는 “엄마 나 힘든데 엎어주세요!”라며 어리광을 부리기도 하고요. 어쩌면 이게 교육의 실천이 아닌가 합니다. “너 성적이 왜 그러니?”보다는 “요새 너 남친 있니?”말이 아이에게는 정겨울 수 있듯, 산을 오르면서 둥굴레, 산딸기, 쑥 등의 야생화를 가르치는 삶의 교육과 정상에서 흘린 땀을 바람으로 말리는 감성적인 교육까지도 아이들에게 삶의 교육이 되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바라기 보다는 아이들이 내게 바라는 것을 해 줄 수 있는 생각의 여유가 필요할 듯합니다.
산을 오를 때 저는 전화기를 내려놓고 갑니다. 혹시 아이들과의 대화에 방해가 될까봐 저는 전화기를 가지고 가지 않습니다. 아빠와 엄마라는 직업은 아마도 아이들이라는 고객에게 평생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합니다. 제공된 서비스만큼 돈이나 물질적 보상은 없지만 끊임없이 제공되어야 할 무상서비스랄까. 그렇게 아빠와 엄마의 직업은 기한이 없는 무상서비스직이지요. 그러나 때로는 아이들에게 그런 모습이 초라할 수 도 있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지만 아이들이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도 있을 수 있지요. 그럴 때 마다 아이들을 이해시켜야 하나요? 부모는 아이들에게 부모의 생각과 입장을 이해시키기에는 세월의 벽이 높습니다.
“그래 난 너희들을 이해한다.” 이런 말로 부연하지만 정말로 부모는 다 이해하지 않습니다. 이해한다기보다 이해하려고 노력을 한다는 게 맞습니다. 부모는 이해하지 못하는 면이 더 많지만 아이들과의 소통을 위해 이해한다고 합니다. 과연 아이들에게 항상 사탕만을 안겨주어야 할까요? 산을 내려오면서 저는 아이들에게 학교생활을 물어보았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 놓더니만 금새 학교성적이 나왔습니다. “그래 서영이는 사회점수가 왜 그러지?” “글쎄요..” 큰아이에게는 책을 많이 읽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둘째에게는 “ 너는 수학 성적이 너무 안 좋아.” “안 배운 게 나와서..” 둘째에게는 수업시간에 딴청 피우지 말고 잘 들으라는 말을 했습니다. 아마 다른 날이라면 ‘왜 이런 성적이야!’라며 다그치는 말을 했겠지요. 하지만 다그치는 말보다는 용기를 내줄 수 있는 말을 해야 할 것 같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인간은 칭찬에 약한 동물이라고 합니다. 칭찬을 많이 받은 아이일수록 자신감 있게 일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특히 상을 많이 받아 본 아이일수록 더 많은 상을 탈 수 있는 것처럼 아이들에게는 보다 많은 칭찬을 해주어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칭찬을 아끼지 않으려 합니다. 칭찬의 끝은 자신감입니다.
산을 내려와 집에 가까워지면서 문득 며칠 전 아이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아빠 저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이제는 아이의 말에 답을 해 줄 수 있을 것 같아 저를 앞서 가던 둘째를 불렸습니다.
“ 다영아, 네가 아빠한테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물었잖아?” “예. 아빠 생각은 어떠세요?” “ 그래 아빠는 우리 다영이가 다영이보다 어린 친구에게 자신 있게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 그런 사람이 되려면 공부를 잘해야 돼요?” “ 그럼 공부를 잘해야 되는데, 1등, 2등이 아니라 네게 가진 꿈을 이룰 수 있는 자격이 될 수 있도록 공부를 해야지!” “그럼 저는 요리사가 되고 싶은데요.” “그래. 요리사는 그저 음식만 만드는 게 아니라 그것을 공부하고 남들에게 발표하고 해야 되니까 당연히 그것도 공부를 해야지!”둘째에게 어느새 저는 그저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닌 공부를 해야 될 이유를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산을 오르면서 아이와 가슴을 열고 산을 내려오면서 아이에게 작은 교육을 어느덧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우리 아이들과의 작은 교육의 실천은 이것이 시작일겁니다. 단순히 산을 오르면서 느꼈던 아이들의 감정을 품고 좀 더 많은 고민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일주일 뒤 둘째아이는 더 높은 꿈으로 제게 질문을 했습니다. “ 아빠, 저 대통령이 되면 안돼요?” “왜?” “여자 대통령이 돼서 여자를 무시하는 남자를 혼내주게요!” “그래 가능하지. 그러나 그것도 공부를 열심히 해야 돼!” 조금은 황당한 질문이었지만 둘째아이의 생각의 자유로움에 너무도 기뻤습니다. ‘내 아이가 대통령이 된다면......’생각만 해도 미소가 절로 나오는 그런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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