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학부모 김유경
“다녀왔습니다.”
“잘 다녀왔니?”
“네”
“재미있었니? 어디어디 갔었는데?”
“그냥 여기저기요.”
‘밥은 잘 먹었을까? 멀미는 하지 않았을까? 무엇을 느꼈을까?’ 2박 3일 간의 체험활동을 떠난 아들의 빈자리에서 노심초사했던 엄마의 궁금증은 아랑곳하지 않는 참으로 간결한 대답입니다. 코밑에 거뭇한 그림자가 짙어지고 제법 사내다워진 낮은 목소리, 말수가 줄어 그마저 점점 듣기가 어려워지는 열다섯 살 사춘기 아들 녀석을 키우는 일은 그리 녹녹하지도 재미나지도 않습니다. 아들은 언제부터인가 슬슬 자기만의 울타리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의 아빠도, 저도, 그리고 우리 모두가 겪어온 사춘기의 시작입니다.
아쉬움이 있다면 2011년의 사춘기는 저희 세대의 사춘기와는 조금 다른 색깔이라는 것입니다. 2011년의 사춘기 풍경은 건조합니다. 또 여유롭지 못하고 조급합니다. 느긋하게 겪어내기에 우리 아들들의 주변은 휑하고 메말랐습니다. 한편의 영화에 감동하고 눈물을 펑펑 쏟는 대신 빠르게 전개되는 게임 속 주인공들이 서로 치고 도망치는 일에 환희를 느끼고, 대작가의 소설 속 명문들로 잠 못 드는 그런 밤보다 자극적인 장면들이 가득한 만화책속으로 도피하기도 합니다. 교정 등나무 벤치에 앉아 친구들과 시를 외운다거나 기타를 퉁기며 여럿이 노래를 읊조리는 풍경은 이제 쉽게 볼 수 없습니다.
좋아하는 여학생에게 말 한마디 못해보고 일기장 한가득 그 애 이름으로 채우는 일, 밤새 고민해서 겨우 쓴 쪽지 한 장조차 건네기가 어려워 몇 번이나 그 여학생을 지나쳐버리는 그런 설레고 풋풋한 사춘기는 2011년에 만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나랑 사귈래?”
“콜!”
이렇게 너무 빠르고 간단하고 쉽게 사람을 만납니다. 그래서 실수도 많고 포기도 빠릅니다. 많은 것이 간결해진 요즘, 내 아들의 사춘기는 덜 그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공부는 조금 못하더라도 멋진 영화에 감동할 줄 알고 명문장에 감탄할 줄 알며 지혜로운 여학생을 보고 설레고 떨릴 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휴대폰 문자 몇 통보다 단 한 장이라도 빼곡하게 진지한 편지를 쓸 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내 꿈이 무엇인지 깊게 고민할 줄 알고 비오는 날 치악산 산등성이로 피어오르는 비안개의 장관을 보며 자연의 위대함을 아는 청년이 되어주었으면 합니다.
부모의 울타리를 빠져나가 이미 자신의 울타리와 마당을 가지려는 아이에게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성장의 과정을 인정해주는 일, 이해해주는 일……. 다만 아이의 마당에 있는 메마른 땅이 촉촉한 토양이 되어 뿌리 깊은 푸른 나무들이 울창하도록 물기를 주고 싶습니다.
나의 사춘기 시절에 읽고 감동했던 수많은 책과 가슴 따뜻했던 영화들을 강요가 아닌 권유를 통해 아이의 마당에 거름으로 뿌려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아이와 함께 시간을 할 수 있도록 온 가족이 노력하려고 합니다. 함께 보고 듣고 느끼고 이야기한다면 그 시간의 의미는 좀 더 짙어질 것입니다. 이러한 가족의 포근함과 응원 속에서 사춘기를 지나가게 해주고 싶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을. 아이는 더 바빠질 테고 아이의 울타리도 견고해질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와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센스 있는 엄마가 되려고 합니다.
방문을 두드려야할 때와 그냥 두어야 할 때를 눈치 챌 수 있는 엄마, 귀찮아하더라도 자꾸 대화를 시도해야 할 때와 아무 말 하지 않아도 고개 끄덕여줄 때를 알아챌 수 있는 엄마, 종종 아들의 친구들을 초대해서 맛있는 음식으로 위로해주고 학교흉도 보며 그들의 고민을 이해하며 편들어주는 엄마, 아이의 친구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주는 엄마, “엄마가 그런 것도 알아요?” 라는 말을 들으며 어깨 으쓱 할 수 있도록 아들의 관심사에 대한 정보를 위한 인터넷 검색쯤은 쉽게 해낼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습니다.
아이들 관심사와 그 눈높이에서 대화할 수 있다면 사춘기의 말없는 아들은 조금 수다스러워질지도 모릅니다.
누구나 다 겪는 힘든 사춘기, 그것을 발판으로 어른으로 가는 길에 내 아들이 너무 멀리 외따로 울타리를 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언제나 들어줄 준비가 되어있고, 대답할 준비가 안 되어있는 아들을 기다려주며 종종 성장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질 줄 아는 부모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두어 발 내딛으면 아빠가 엄마가 형제가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엄마 배고파요.”
“뭐 만들어 줄까?”
“ 아무거나요”
여전히 무뚝뚝한 아들의 대답이지만 성실한 제 아빠를 닮은 목소리가 든든합니다. 저는 이런 아들이 사춘기를 현명하게 잘 겪어내고 멋지게 성장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촉촉하게 빛날 아들의 건강한 사춘기를 위해 앞치마를 입으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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