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 학부모 김 은 영
2000. 8월 10일
우리아기 임신하고 나서 엄마는 우리아기가 건강하길 바라며 음식도 신경써서 먹으려 노력하다보니 먹을만한 음식이 없는거야 글쎄....그래서 하루에 계란을 꼭 한 개씩 먹고 엽산이 들어있다는 고구마와 오렌지 쥬스도 하루에 반잔씩 꼭 먹었단다.(광우병 때문에 엄마는 요새 단백질 섭취를 계란으로 한단다)
2000.8. 17.
우리아기 뱃속에서 엄마를 좀 괴롭히는구나....입덧 때문에 엄마는 보리차 냄새도 밥 냄새도 싫어서 ...요즘은 신경써서 먹는게 아니라 아예 먹을 수 있는게 없구나.. 우리아기 배고플까봐 걱정이 되네...
2001. 3. 29. 일요일 날씨 맑음
오늘 우리 아기가 엄마와 아빠와 퇴원을 해서 처음 집에 온 날이구나
세상 밖도 낯설은데 처음 집에 와서 불편할까봐 모든 것이 걱정이 된단다
참 외할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수술한 몸을 이끌고 동사무소에 가서 우리 다현이 출생신고를 했단다. 내가 너의 엄마가 된게 아직 믿겨지지가 않았는데 등본에 오른 너의 이름이, 너의 존재를 또 내가 엄마가 된 것을 실감나게 해 주는구나~~고맙고 사랑한다.
2001. 4. 7. 날씨 맑고 해 쨍쨍
우리 다현이가 기독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오늘 퇴원하는 날이다..
그동안 1주일이 오랜 시간은 아니지만 병실에서 그 여린 팔목에 이것 저것 꽂아놓은 모습이 얼마나 마음 아팠는지...엄마가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오늘 날씨처럼 늘 밝고 건강하기만을 엄마는 소망한단다.
2001. 5. 6 일요일
우리 이쁜 다현이 튼튼하게 똑똑하게 자라 주는게 어느덧 아빠의 소원이 되었다. 다현아 아빠는 다현이 사랑한다 (오늘은 아빠가 쓰셨단다)
중간 중간 많이 지나치긴 했지만 이 글을 쓰려고 4년 동안 쓴 우리 아이의 육아일기를 8년만에 꺼내보니 ...눈물이 핑글~돌정도로 감회가 정말 새롭고 그때의 감동이 다시 되살아나는 것 같다.
지금은 커서 신발을 나와 같이 신는 다현이가 내 뱃속에 있는 거 같아 우선
설렌다.
결혼 후 출산 때에도 수술을 하고 산부인과에서 쇼크로 인해 3번을 쓰러져서 종합병원 응급실 신세를 졌었다. 결혼 전에도 지병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몸이 튼튼한 편은 아니어서 결혼을 하고나니 막상 아기걱정이 되었었다.
결혼을 했으니 이쁜 아기가 얼른 생겨야 할텐데 하고 늘 마음속으로 바랬는데 너무 바랬는지 결혼을 하고 두달뒤에 임신을 하게 된것이다.
임신도 일찍 했는데 임신한 사실도 너무 일찍 2주 만에 알게 되어, 남들은 3개월입니다~를 산부인과에서 듣고 태교를 시작한다는데, 나는 임신 2주 5일지나고 나서부터 태교를 시작하였다.
지금 생각해도 웃긴것이 너무 일찍 태교를 시작하다보니 막상 남들이 태교 시작하는 임신3개월이 되니 태교가 너무 힘들고 일같았었다.
뱃속아기 두뇌개발에 좋다고 남들이 정성들여하는 십자수를, 중,고등학교 때 숙제로 뜨개질 겨우 한번 한거 외에 평생 처음 여성스러운 십자수라는 것을 하려고 가게에 가서 십자수 재료를 사고 그것을 하루에 몽땅 일처럼 했었다.
그것이 지금도 액자로 남아있긴 하지만, 그 후로는 십자수는 안했다.
일로 하니까 스트레스 받아서 아기한테 더 안 좋을거 같아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듣고 책읽고 이렇게 차츰 좋아할만한 것들을 찾으며 엄마가 되어가는 준비를 했었는데.....옛추억에 잠시 또 잠겼다.
세상모든 엄마들은 다 같은 맘이겠지만...아이를 위해 태교를 하긴 해야하는데 왜그리 잠이 쏟아지는지...입덧에 잠에 태교고 뭐고 정말 다 치우고 싶은 맘이 굴뚝 같았지만 우리 아이가 똑똑한 아이가 되길 바라며 클래식듣고 영어 cd도 듣고 ....지금 하라면? 내 아이를 위해서라면 또 할수 있을 것 같다.
아니, 또가 아니라 그때 보다 더 엄마다워진 마음으로 그래서 더 행복한 마음으로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9개월이란 시간을 이렇게 저렇게 나 스스로도 아기 만날 날이 기대되어 기쁘게 지내는데, 거기다가 남편 외 여러 사람들의 여왕대접에 너무 편하고 행복한 날들을 보냈다.
그런데 내기분과 내 맘과는 다르게 어쩔 수 없이 자연분만이 아닌 제왕절개를 하게 되어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가 9개월 1주만에 낳았는데도 4kg이 되어가는 우량아!!!
너무 행복했다. 자연분만도 아니어서 미안했는데 아기가 그리 클줄이야~
담당 의사선생님께서 아기가 크다고 하긴했어도 사람들이 보고 다들 바로 낳은 신생아 같지 않고 백일 된 애 같다고 뽀얗고 복슬복슬하다고 어찌나 이뻐라 하시던지....내심 그게 싫지는 않았다. 내 자식 이쁘다는데 그 어느 부모라도 싫다고 얼굴 붉히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또 반전이 있었다. 그리 토실토실 복슬복슬 튼튼해 보이는 아이가 열이 나서 뇌수막염이 의심된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내가 아니고 우리아가가 내가 입원했던 종합병원의 신생아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되었다. 눈물이 어찌나 철철철 나던지.....나는 산부인과에서 퇴원하자마자 아기와 떨어져 있게 된 것이 너무 마음 아프고 내가 잘못해서 그런 것처럼 모든 게 내 잘못인 것 같아 아기한테 너무나 미안했다.
다행히 일주일 만에 퇴원을 하긴 했는데, 그 일주일이 길고 길게 느꼈던 나의
임신 9개월보다 몇 백배는 긴 날이었다.
병원에는 아빠와 외할머니께서 매일 가시는데 나는 산부인과에서 분만 후 에 세 번이나 쓰러진 전적이 있다보니 또 쓰러질까봐 못가게 다들 만류하여서 아기가 있는 병원에는 가보지도 못하고 매일 눈물로 나날을 보낸 이산가족 아닌 이산가족의 아픔을 정말 그 1주일간 뼈져리게 느꼈다.
그때를 생각하니 지금도 심장이 벌렁벌렁 거린다.
그 이후에 퇴원하여 집에 온 아기가 부쩍 더 어른스러워진 것 같은게, 우스운 비유이지만 아픔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이 신생아에게도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았다.
솔직히 갓난아기가 성숙해져봤자 얼마나 성숙하겠는가? 그냥 그건 100%나의 주관적인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한 내가 지금도 웃긴다.
너무 갓난아기라서 가만히 있었던 것 뿐인거 같은데.....
그런데 며칠 지나니 또 적응해서 떼쓰고, 밤만되면 눈이 말똥말똥 울고불고,인간이란 정말 대단한 존재라는 것도 느꼈다 어찌 그리 적응력이 대단한지 며칠 지나서 온집안의 주도권을 완전히 움켜쥔 대단한 우리 다현이,,,
친정어머니께서 산후조리를 해주시며 아기를 봐주셨는데 100일을 며칠 앞두고 병원에 입원하셨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낮에는 내 시중들어주시랴 저녁부터 밤을 지나 새벽 동터서 환해질 무렵까지 다현이를 안아주셔야지....잠 못 주무시고 두 명을 돌봐야하는 육체적노동 탓에 고문아닌 고문을 당하시다가 결국은 병원행...
우리 이쁜 아가지만 다현이가 어찌나 한번울면 동네가 날아가게 우는지, 지나가는 사람이 아기가 아픈거 같은데 병원데려가보라고 할정도였다. 거기에 바닥에 가시가 있는것도 아닌데 눕히기만하면 어찌나 울어대는지...
아이가 그러니까 안안아주고는 못배기는 이쁜 나쁜놈 이었다.
아빠가 퇴근할때는 저녁노을을 보며 오늘도 밤을 새겠구나~하고 퇴근을 할 정도였으니까.....정말 대단한 놈이었던거지~~~
백일이 지나 아빠가 승진시험공부를 할때도 포대기로 업고 책을 보았다. 그모습이 얼마나 아기는 이쁘고 아빠는 멋있어 보이던지(결혼하고 아기가 생기니 정말 터프하고 잘생기고 멋진 남자보다 나와 아이들만이 최우선인 우리 남편이 제일 멋있어보였다 ) 그래서 내가 그 모습을 사진을 찍었다.
그사진이 지금도 앨범에 있어서 가끔 보며 웃기도 한다.
정말 외할머니의 몸사르는 희생으로 백일까지 무사히 무럭무럭 자라난 우리 다현이의 백일잔치를 하고나니 아이가 부쩍 큰 것 같았다 잘 안지도 못했는데 목을 가누고 안아볼만하니까 날도 좋고, 날 좋다는건 솔직히 핑계고, 참 사람이 웃긴게 다른사람들도 다있는 자식인데 나만 있는양, 요이쁜걸 나혼자 보는 것 보다 나가서 자랑을 하고 싶은맘이 발동되었다.
사람많은곳은 비위생적이라고 임신해서 가지도 않고 아기를 낳아도 안 데려간다고 하던 나였는데 아이를 안고 남들 보란 듯이 사람많은곳을 휘집고 다니고 있었다.
친구나 친척분들이 오시면 손부터 깨끗하게 씻고 들어오라고 남녀노소 가릴것없이 잔소리를 해댔고 아이 근처에는 조카들도 얼씬못하게 했던 나였는데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유난을 떨지 않았나 싶은게 죄송하고 좀 창피한감이 없지않다
세월이 유수같다는 말이 실감나는게 그렇게 하루하루를 정말 정신없이 밤낮이 바뀐 아기를 보느라 매일매일 꽉차게 보내며 언제나 크나 언제나 커서 걸어다니고 엄마 아빠 말을 하게 될까? 언제나 커서 낮에 놀고 밤에 잘까?
별의별 바람을 맘속으로 생각하고 생각하며 보냈는데 벌써 11살이라니...
그 중간 세월은 되새겨보면 추억할것이 많긴 한데 되새기지 않으면 별일없이 슝하고 지나간 세월같다. 너무빠르게~~
유치원때는 어땠지? 생각해보면 아~ 그랬지 하는데, 갓난아기때 밤낮바뀌어서 늘 피곤했던 것은 꼭 어제일같이 생생하다.
지금도 365일 내내 내걱정하시는 거기다 덧붙여서 우리 다현이 하윤이걱정으로 매일을 보내시는 엄마를 생각하면 지금은 엄마의 마음을 조금 느낀다.
母情이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것인지, 그렇다고 아버지의 정이 약하다는 것은 아니다.
결혼하기 전이나 결혼초에도 솔직히 자식을 낳으면 알게된다는 부모마음도 나는 출산후에도 아이가 유치원다닐때에도 솔직히 잘 몰랐다.
그런데 다현이가 조금더 크고 초등학교 입학하고 저학년을 보낸 4학년이된 요즘에야 살짝 느낀다. 흔한음식이라도 우리아이가 잘 먹는 음식이 있으면 아이 생각이 나서 맘에 걸리고 조금이라도 긁혀도 맘이 아픈 것이...이맘이 부모마음인 것을 서서히 느끼는거 같다.
먹을것이 넘쳐나는 지금 세상에 더구나 내가 싫어하고 당신께서 좋아하는 음식인데도 나를 챙겨먹이려 하는 모습을 보고 난 안먹는데 그리고 지금이
새마을 운동하던 그 어렵던 시절도 아닐뿐더러 엄마도 그렇게 어렵게 사신분도 아닌데 왜 그리 못먹고 산 사람처럼 먹을 것을 챙기나 내가 먹고싶음 사먹으면 되는걸~하는 생각에 가끔 짜증이 났었던게 사실이다.
그런데 내아이를 낳고 기르다보니 정말 자식입에 들어가는게 어찌나 흐뭇한지 우리 엄마의 마음을 늦었지만 조금씩 아주 천천히 느껴지는거 같다.
평생 모를 까 걱정되었는데, 지금이라도 느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한편 우리 다현이도 나처럼 늦게 엄마인 나의 마음을 느끼게 되면 어쩌지? 빨리 철이 들었으면 하는 우스운 바람도 가져본다.
한번울면 얼마나 대차게 우는지 돌되고 말하기 시작하면서는 제비위에 안맞고 거슬리는게 있음 기차 경적소리는 저리가라하고 울어제끼는 통에 꼬마 박경림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늘 허스키한 목소리로 “엄마~아빠~”
애기가 늙은이 목소리를 내니 사람들이 다들 웃었었다.
한번은 명절때 내가 시댁에서 5남매중 막내인 막내며느리라 다른건 할줄아는게 없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우리 다현이가 주방에 오더니 쩌렁쩌렁 허스키한 목소리로“설거지는 무슨 설거지야~ 집에가~”하며 떼를 쓰기 시작하는데, 그때 그 애기입에서 나오던 그 놀라운 언어구사력에 모두 감탄하여 지금까지 시댁에서는 그때 그 이야기가 명절때마다 웃으면서 나오곤 한다.
말도 그렇게 잘했지만 젖병과 기저귀를 돌때 딱 떼고 한번도 이불에 쉬를 하거나 젖병을 찾은 적이 없다. 똑똑한건지 독한건지 여하튼 젖병떼니 이제 젖병 삶지않아도 되니 너무 편하다. 생각했는데 역시나 반전이 또 있다 .
애기가 젖병으로 안먹는 대신에 빨대로 베지밀을 새벽에만 5번을 먹는 것이다. 한번은 새벽이라 잠결에 빨대를 아이 입에 조준을 잘못해준적이 있는데 세상을 홀딱 뒤집을듯한 기세로 또 몇시간을 울어대는 것이다.
그렇게 돌이후부터 2년은 넘게 생활한 것 같다.
필름을 차근차근 되돌려보니 신기하리만치 많은 일들이 있었구나~또 11년 세월이 그냥 지나가서 우리 아이가 이렇게 자동으로 큰게 아니구나~ 새삼 느낀다.
여태까지 너무 내 위주로 이야기한 것 같아서 이번에는 아빠와의 스토리를 하나 이야기 해보려한다.
아빠가 늘 아이들을 너무 끔찍이 여기긴 하는데...작년 10살 때 한창 신종플루가 걸렸을때 몸무게 30키로가 넘고 열이나는 큰 아이를 아빠가 휴가를 내고 이틀밤을 꼭 안고 앉아있는게 아닌가?
열나는 아이를 안고 열을 더 올리고 있다고 내가 화를 버럭버럭 냈지만,
지나고 보니 그게 말없이 믿음직스럼 아빠의 마음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아이를 낳은 엄마만 내가 내아이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고 또 모든걸 내가 관리하고 보살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불안해서 다른사람에게는 절대 잠깐이라도 맡기는 일이 없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난후 아이가 다시 건강해졌을때 아빠한테 아이를 맡기고 가끔 나가서 친구들을 만나 밥도 먹고 영화를 보기도 했다. 내가 호시탐탐 놀러나갈 기회를 노리는 사람은 아니다
아빠와 딸들도 그들만의 시간을 줄 필요가 있다고 난 생각한다. 내생각뿐이고 내 합리화인지는 모름겠지만....어쨌거나 그전에도 기저귀갈기 우유먹이기 아빠 엄마일 구분없이 하며 지내왔지만 그이후로 지금까지 더욱더 육아를 아빠와 완전히 100% 함께 하고 있다.
입학하기전에는 무조건 밝고 건강하게만 자라다오~가 모든가족의 소원이었는데 이제는 살짝 공부도 잘하는 똑똑한 어린이가 되어다오~가 되었다.
그런데 이 글을 쓰기위해 육아일기를 보며 옛생각을 하다보니 또다시 건강하게만 자라다오~가 다시 나의 소원이 되었다.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있는데 ,자식을 키우는데 초심은 자식이 늘 건강하기만을 바랐던 임신중의 맘가짐으로 돌아가는것인거 같다.
그러면 우리 아이가 무엇을 누구보다 더 잘했으면~ 최고가 되었으면~하는 아이들은 관심없는 그렇지만 그런것들에 관심이 무척많은 요즘 엄마아빠들의 욕심을 조금이나마 버릴수 있을 것 같다.
요즘은 아이들이 학원에 다니느라 수업 끝나면 학원버스 타려고 시간 맞추느라 정신이 없는데, 부모님들이 모두 부모로서의 초심으로 돌아가야할 것 같다.
앞으로도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그이후에 직장생활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특별한 일이 없는한 모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리고 나 또한 지내온 길을 우리 아이도 걸어 가겠지만, 그 길을 바르게 이쁘게 끝까지 또박또박 한걸음 한걸음 잘 걸어갔음하는게 엄마로서의 우리아이에 앞길에 바라는 대수롭지 않은일 같지만 대단한 소망이다.
지금도 학교를 가든지 소풍을 가든지 내눈에 안보이면 집에와서 내눈앞에 있을때까지 늘 불안하다.
내가 유난스럽다고는 생각 안한다. 이마음은 평생 내가 지고가야할 떨쳐버릴수 없는 행복한스트레스 같아서 그걸 즐기려고 늘 노력하고 있다.
사실 말을 이쁘게 해서 행복한 스트레스지, 어떨땐 솔직히 화날때도 있다.
그렇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스트레스를 안 받을수는 없는 것 같다.
아이가 점점 커가며 말을 안듣고 말대꾸를 하고 속상하게 할때도 있고
앞으로 더 엄청나게 나를 속상하게할 일들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자식이니 그화나는 시간을 살짝 살짝 잘 넘길수 있는 듯......남이 나에게 기분나쁜말 한마디 하거나 시비라도 붙으면 그 여파가 오래가지만 자식이 그러는 것은 잠깐 화나고 넘길수 있으니 그것또한 부모로서 도를 닦는 것이 아닌 부모의 마음인 것 같다.
끝으로 자녀교육 수기, 수필을 써보라는 선생님의 권유에 네”하고 대답은 하였는데, 막상 글을 쓰려고 앉으니 머리가 까만게 무엇부터 어떻게 써야할지 조금 막막하였으나 육아일기 써놓은 것을 옷장속에서 꺼내보며 11년전 그때의 나로 돌아갈수 있어서 우선 즐거웠고 아이와의 첫만남부터의 추억속에서 모자란 글솜씨이고 정신도 없지만 열심히 썼다는데 의의를 두려고 한다. 어쨋거나 강산이 한번 변한 지금 이렇게 옛추억을 섬세하게 되새겨보는것도 나로서도 정말 좋은 경험이고 추억이 될거 같다.
이 글은 우리 다현이의 이야기이지만 또 다현이가 태어나고 3년뒤에 태어난 동생 하윤이를 키우며 느낀 맘도 똑같기에 우리 이쁘고 사랑스러운 두딸 다현이 하윤이에게 엄마가 이렇게 너희를 키우며 느꼈던 것들을 글로 쓴 것이 좋은 추억이 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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