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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의욕자극

일본의 고승 明惠

by 법천선생 2012. 3. 25.

12세기, 일본의 高山寺에 明惠(묘에)라는 高僧이 있었다. 그는 매우 순진하고 천진난만한 성격의 스님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에게는 많은 일화가 전해오고 있다. 그의 제자 가운데 喜海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가 쓴 明惠의 전기『高山寺明惠上人行狀』에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어느 날, 明惠가 安達景盛이라는 제자가 만든 된장국을 먹다가 무슨 생각에서인지 갑자기 일어나 창살에 쌓여있는 먼지를 된장국에 털어 넣은 후 먹었다. 景盛은 明惠가 평소 된장국을 즐겨 먹는다고 듣고 솜씨를 발휘하여 만든 것인데 눈앞에서 그런 광경을 보고 깜짝 놀라

“스님, 왜 그러십니까?” 하고 묻자 “실은 말이야, 자네가 만든 된장국이 너무 맛이 있어서 그대로 먹기가 아까워서 먼지를 넣은 거야”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것도 음식에 관한 이야기로, 明惠는 송이버섯을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어느 날, 그를 기쁘게 해주려고 누군가가 팔방으로 송이버섯을 구해 그에게 보냈더니 그날 이후 明惠는 뚝 송이버섯을 먹지 않게 되었다. 제자가 그 이유를 물은 즉 “내가 불법을 좋아한다는 것도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부끄러운 일인데 송이버섯을 좋아한다고 소문이 나면 더욱 부끄러운 일이다. 이것은 몸의 타락으로도 연결되는 것이므로 앞으로 송이버섯을 멀리할 생각이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는 後年 당시 무사정권의 우두머리였던 北條泰時(호죠 야스토키)로부터 高山寺에 토지를 기부하고 싶다는 제의를 받고 이를 단번에 거절했다. 그것은 절이 부유해지면 중이 佛道를 닦는데 게을러진다는 이유에서였다. 예나 지금이나 좋은 음식, 토지 등 남이 호의로 선물하겠다고 하면 고맙게 받는 것이 상식일 것이다. 明惠는 그 상식과 정반대의 행동을 취했던 것이다.

 

兼好法師의 『徒然草』(심심풀이이야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어느 날, 明惠가 길을 걷다가 냇가에서 말을 목욕시키고 있는 사람을 만났다. 그는 말의 발을 들어 올릴 때 말에게 “아시, 아시”(발, 발)라고 말했다. 明惠는 이 말을 듣고 이것이 불교의 아지(阿字)라고 하는 말인 줄 잘못 알아듣고 그 사람에게 물었다. “지금 당신은 아지아지라고 했는데 참 고마운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말(馬)은 어느 분의 것입니까?” 그러자 그 남자는 “府生(후쇼)님의 말이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明惠는 “아아, 그럼 阿字本不生(아지혼부쇼)가 아닙니까” 라고 말하고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말과 마부에게 합장했다고 한다. 阿字本不生이란 진언밀교에서 중요한 敎義인 것이다. 평소 불법만을 골똘히 생각하고 있던 明惠는 마부의 평범한 말을 불교교의로 잘못 알아들은 것이다.

 

明惠는 평생 불교의 계율을 엄격히 지키고 극기수행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喜海가 쓴 明惠의 전기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明惠는 젊었을 때 불상 앞에서 자신의 오른쪽 귀를 잘랐다. 明惠는 이렇게 생각했다.

‘정상적인 몸으로 태어난 것은 그것만으로도 매우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오체만족이기 때문에 오히려 불도에 들어가지 못하는 일도 있을 수 있다. 머리를 빡빡 깎은 중도 외견상 참으로 중같이 보이기 때문에 거꾸로 마음은 중답지 않게 되어버린다. 그런 사람이 많다. 그래서 나는 불도수행에서 결코 떠나는 일이 없도록 육체의 일부를 떼어버려 병신의 몸이 되고 싶다.’

 

이렇게 생각한 明惠는 정말로 귀를 잘랐던 것이다. 눈을 파내면 불경을 못 보고 손가락을 자르면 印契를 맺지 못한다, 귀는 잘라도 불도수행에 지장이 없으리라 판단하고 결국 귀를 자른 것이다. 그래서 그의 초상화에는 한쪽 귀가 없다.

 

이밖에도 그에게는 수많은 극기수행의 이야기가 전해온다. 이런 극기수행이 있음으로써 그는 一生不犯 (평생 여자와 섹스를 하지 않음)이라는 至難의 業을 달성할 수 있었다. 일본불교사의 권위자 辻善之助는 ‘일본의 불교사상 一生不犯이라고 확실하게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은 明惠스님 한 사람 뿐이다’라고 썼다.

 

이런 이야기도 있다.

어느 때 明惠가 여행을 하고 있던 도중 길가에 손발이 썩은 불쌍한 나병환자를 보았다. 그가 깊은 동정심을 갖은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 자리에서는 아무 것도 해줄 것이 없어서 풀이 죽어 지나쳤다. 그러나 여인숙에 도착했을 때 나병에는 산사람의 인육이 유일한 약이라는 말을 우연히 들었다.

 

明惠는 그 말을 듣자마자 칼을 들고 발길을 돌려 나병환자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갔다. 도착해보니 방금 그 병자가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그는 아아, 늦었구나, 하고 매우 슬퍼했다고 한다. 明惠는 자신의 육체의 일부를 베어 그 병자에게 주려고 했던 것이다.

 

또 이런 이야기도 있다.

소년시절, 明惠는 묘지로 가서 늑대의 밥이 되려고 하였다. 당시 하층민의 묘지는 강바닥에 있어서 시체를 그대로 그곳에 내버렸다. 까마귀가 시체를 파먹기도 하고 굶주린 늑대가 시체를 찢어먹기도 하는 정말 기분 나쁜 곳이었다. 明惠는 며칠 밤 그곳에 누워서 늑대를 기다렸지만 끝내 먹히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사람들뿐 아니라 동물들에게도 자비의 정신을 발휘했던 것이다

 

1221년, 막부군과 천황군 사이에 내란이 일어났다. 明惠는 그때 절로 도망쳐 온 천황군의 패잔병들을 숨기고 결코 막부군 측에 내놓지 않았다. 그때 막부군 대장은 明惠에게 된장국을 끓여준 예의 安達景盛이었다고 전해지는데, 이 대장이 적병을 숨겼다는 죄목으로 스님을 붙잡아 막부의 우두머리 北條泰時 앞으로 끌고 갔다. 그러나 泰時도 보통 사람이 아니어서 明惠의 高名을 익히 들었는지라 바로 자리에서 내려와 부하의 폭거를 사죄하고 예를 다하여 明惠를 대했다고 한다.

 

明惠는 ‘불경에는 매에게 쫓긴 비둘기가 도망 오면 구해주라는 말이 있다. 나는 앞으로도 어느 쪽 병사이건 우리 절에 피난 오는 자가 있으면 숨겨 줄 작정이다.’ 라고 말해 더욱 더 泰時를 납작 엎드리게 했다. 그 후 泰時는 明惠에게 귀의하여 和歌를 주고받기도 하고 寺領의 寄進을 제의하기도 하며 친밀하게 교제를 하였던 것이다.

 

明惠는『華嚴祖師繪傳』이라는 두루마리로 된 그림책(繪卷)을 남겼다. 화엄종의 초대스님(祖師)의 전기를 그림으로 그려 해설한 것이므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華嚴緣起』라고도 한다. 연기란 절이나 宗의 창건 유래라는 뜻이다. 화엄종의 창시자는 당나라의 法藏이다. 그러나 그가 이 책에 그린 것은 법장이 아니라 신라의 원효와 의상이었다. 明惠는 원효와 의상을 화엄종의 시조로 여길 만큼 존경했던 것이다. 그리고 원효와 의상을 널리 알리기 위하여 그들의 전기를 그림으로 그렸던 것이다.

 

원효와 의상은 당나라로 가 불법을 공부하려고 여행을 떠났다. 도중에 어느 동굴에서 노숙하게 되었는데 자다가 목이 말라 바가지의 물을 달게 마셨다. 아침에 깨어보니 그것은 바가지가 아니라 해골이었다. 그곳은 무덤 속이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구역질을 하며 뛰어나왔다. 이때 원효는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당나라유학을 포기한다. 그래서 의상이 혼자 당나라로 가게 되었다. 그런데 이 의상을 당나라 처녀 善妙가 사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의 사랑은 처음부터 이루어 질 수 없는 것이었다. 의상이 학업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르자 선묘는 이별을 슬퍼한 나머지 바다에 몸을 던졌다. 선묘는 용이 되어 의상의 뱃길을 보호한다. 귀국 후 의상이 절을 지으려할 때 이를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선묘가 큰 바위가 되어 그들의 머리 위로 솟구쳐 오르자 그들은 혼비백산하여 달아났다. 이것이 영주 浮石寺의 절 이름의 유래이다.

 

『화엄조사회전』에는 이런 그림들이 실려 있다. 이 그림책은 일본의 국보로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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