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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의욕자극

파파지 스승의 체험

by 법천선생 2012. 7. 25.

어느 날 저녁 우리가 모두 라호르의 친척집에 앉아 있을 때, 누군가 망고와 우유 그리고 아몬드 음료를 준비해서 모두에게 내왔다. 내 나이 또래의 아이들에게는 군침이 돌 음식이었을 것이 틀림없지만, 내 앞에 그 잔이 놓였을 때 나는 손을 뻗쳐 그것을 받을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것을 마시기 싫어서가 아니었다. 사실은 그때 나는 아주 평안하고 행복한 느낌을 주는 어떤 체험에 사로잡혀 거기 몰입되는 바람에, 내미는 잔에 반응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어머니나 함께 있던 여자들은 내가 갑자기 아무 동작이 없자 크게 놀라고 모두 내 주위에 모여 무슨 일이 생겼는지,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어리둥절해 했다. 이제 나는 눈을 감고 있었다. 그들의 말에 비록 답은 할 수 없었지만, 옆에서 주고받는 이야기들은 다 들을 수 있었고, 그들이 나를 보통의 상태로 돌려놓으려고 애쓰는 것도 환히 다 알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흔들어도 보고, 뺨을 살짝 때리기도 하고, 얼굴을 꼬집어보기도 하였다. 누군가는 나를 번쩍 들어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해 봐도 나는 전혀 신체적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내가 무슨 고집을 부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 체험이 워낙 압도적인 것이어서, 어떤 외부의 자극에 반응할 나의 능력을 여지없이 마비시켜 버렸던 것이다. 거의 한 시간 동안이나 그들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나를 정상적인 의식 상태로 돌려놓으려고 했지만 다 소용이 없었다. 나는 병이 있던 것도 아니고, 그 전에 그런 일이 일어났던 적도 없고, 그런 일이 있기 직전에 무슨 특이한 징후를 보인 것도 아니었다. 워낙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고, 전에 없던 일인 데다가, 아무리 흔들어도 내가 깨어나지 않으니까 우리 식구들은 내가 갑자기 불가사의하게 어떤 나쁜 혼령에 씐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당시는 달려가서 모셔올 의사나 심리치료가가 전혀 없을 때였다. 그래서 이런 일이 생기면 으레 당사자를 인근의 회교 사원에 데려가서 사제(mulla)로 하여금 귀신 쫓는 푸닥거리(exorcism)를 하게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심지어 물소(buffalo, 집에서 키우는 몸집이 큰 소의 일종)가 병이 나거나 젖을 못 낼 때에도 사제가 이런 푸닥거리를 하거나 진언을 외어 주면 어떻게 낫지 않을까 해서, 소도 그런 데로 몰고 가곤 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비록 내가 힌두교 집안의 아이였지만, 인근의 회교 사원에 나를 데리고 가서 사제한테 나를 보였던 것이다. 그 사제는 몇마디 뭐라고 암송하면서 몇 개의 쇠집게로 내 몸을 쓸어내렸다. 그것이 푸닥거리의 통상적인 방법이었다. 그 사제는 이럴 때 보통 그러듯이 낙천적으로, 내가 곧 회복될 거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노력도, 다른 식구들이 앞서 한 노력과 마찬가지로, 내가 빠져 있던 그 상태에서 나를 끄집어내는 데는 실패했다. 나는 여전히 몸이 마비된 상태로 집으로 운반되어 침대에 눕혀졌다. 그리고 꼬박 이틀동안 나는 그 평안하고 지복 넘치며 행복한 상태에 잠겨서 누구와도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있었지만, 그러면서도 내 주위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일들을 분명하게 다 알 수 있었다. 이틀이 지난 뒤에야 나는 다시 눈을 떴다. 그러자 열렬한 끄리슈나 헌신자(Krishna bhakta)이던 어머니가 다가와서, '끄리슈나를 보았니?'하고 묻는 것이었다. 내가 아주 행복한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나서는, 내가 귀신에 씌었다는 생각을 바꾸어, 내가 아마도 그녀가 숭배하는 신(끄리슈나)에 대한 어떤 신비한 체험을 하고 있나보다 하고 생각하던 어머니였다.
'아뇨 제가 말할 수 있는 건 아주 행복했다는 것뿐이에요.'하고 나는 대답했다.
그런 체험을 하게 된 근본적 이유에 관한 한, 그 이유를 모르기는 나도 우리 식구들과 마찬가지였다. 나는 내가 무엇을 체험한 것인지, 무엇이 이러한 강렬하면서도 몸을 마비시키는 행복 속으로 갑자기 몰입하게 만들었는지 알지 못했다.
어머니가 더 캐고 묻자 나는 이렇게 말했다. '엄청 행복하고요, 엄청 평안하고요, 엄청 아름다웠어요. 그 이상은 말할 수가 없어요'
 
실은 그것은 진아의 직접적인 체험이었지만, 그때는 그것을 몰랐던 것이다. 여러 해가 지난 뒤에야 나는 그때 나에게 일어났던 일이 어떤 것인지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당신의 추측을 버리려고 하지 않았다. 어디 가서 아이 모습의 끄리슈나가 그려진 그림을 하나 가져오더니 나에게 보여주면서 묻는 것이었다. '이런 모습이지 않았니?' 나는 역시 '아뇨. 보지 않았어요.'하고 대답했다. 어머니는 우리 집에서 끄리슈나 헌가(獻歌)(krishna bhajans)를 곧잘 불렀다. 그녀는 열 여섯 살에 시집와서 열 여덟 살에 나를 낳았다. 그래서 이번 일이 일어났을 무렵만 해도, 어머니는 아직 젊은 여성이었다. 어머니는 얼굴도 목소리도 아주 아름다웠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헌가를 들으려고 우리 집에 왔다. 어머니의 추측은 나 자신의 직접적인 체험과는 부합되지 않았지만, 어머니는 어떻든 나의 행복 체험이 내가 끄리슈나와 만나게 됨으로써 일어난 것일 거라고 확신해 버렸다. 그녀는 내가 만약 끄리슈나를 명상하고 그의 이름을 계속 부르면 내가 그에 대해 가졌던 그 체험이 조만간 다시 나타날 거라고 하면서, 나를 설득해서 한 사람의 끄리슈나 헌신자(devotee of Krishna)로 만들었다.
이것은 나에게 큰 힘을 발휘한 말씀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눈만 뜨면, 그 체험을 다시 갖고 싶다는 큰 바램을 느꼈다. 그것을 되찾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전혀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어머니가 하라는대로 끄리슈나를 숭배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끄리슈나 신앙(Krishna cult)과 관련되는 온갖 의식과 예법을 몸소 가르쳐 주었다. 일단 시작을 하자, 내가 끄리슈나의 형상에 대해 강렬하고 열정적인 사랑을 품게 되는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곧 내 헌신의 목적이 내가 이틀간 체험했던 그 상태로 돌아가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잊어 버렸다. 나는 끄리슈나에게 너무 반하고 그의 형상에 너무 매혹되어 버려, 그에 대한 사랑이 그 원래의 행복 체험으로 돌아가려 한 나의 바램을 대신하고 말았다. 나는 특히 아이 끄리슈나(child Krishna)의 모습을 그린 그림 하나를 좋아했는데, 바로 어머니가 나의 그 체험 마지막 날에 내게 보여 주었던 그림이었다. 나에게 그 얼굴은 너무나 말할 수 없이 아름답고 자석이 끌어당기듯 매혹적이어서, 나는 어렵사리 나의 모든 사랑과 헌신을 거기에 쏟아 붓게 되었다. 이렇게 강렬하게 헌신하자, 끄리슈나가 그 그림과 똑같은 모습으로 나에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는 밤이면 으레 나타나, 나하고 놀기도 하고 내 침대에서 나와 같이 자려고도 했다. 나는 그 당시 아주 순진무구했기 때문에, 이 현신(現身, manifestation)이 힌두교의 위대한 신들 중의 하나이며, 그의 헌신자들 중의 어떤 이들은 그의 모습을 단 한 번이라도 보려고 애쓰면서 평생을 보낸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나는 순진하게도, 그가 내 침실에 나타나서 나하고 노는 것이 아주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의 육체적 형상은 나 자신의 그것 마냥 실제적이었다. 즉, 나는 그것을 손대고 만져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또한 보다 미묘한 형상(subtle form)으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내가 머리 위로 담요를 뒤집어써도 여전히 그를 볼 수 있었고, 심지어 내가 눈을 감아도 그의 모습이 여전히 내 앞에 있기도 했다. 이 끄리슈나는 장난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항상 내가 잠자리에 들면 나타났는데, 하도 천진난만하고 재미있게 놀아서 나는 깨어 있으면서 잠이 들 수가 없었다. 그가 찾아와서 함께 노는 처음의 재미가 조금 시들해지자, 나는 그가 나타나는 것이 약간 귀찮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가 아주 피곤할 때에도 잠을 못 자게 했기 때문이다. 내가 그를 그만 좀 가라고 하려고 궁리할 때, 나는 그를 내 어머니한테 가 보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어머니가 열렬한 끄리슈나 헌신자이므로, 그를 보면 몹시 기뻐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나는 어느 날 밤에 그에게 말했다. '왜 우리 엄마한테 가서 자지않는 거야? 넌 내가 잠을 못 자게 하잖아. 나 대신 엄마한테 가.' 그러나 끄리슈나는 어머니하고 같이 노는 데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그는 결코 그녀에게 가지 않았고, 모든 시간을 나하고 놀기만 했다.
명상나라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