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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의욕자극

백봉 김기추의 생애

by 법천선생 2012. 7. 25.

깨달음
암자에 온지도 며칠이 지난 1963년 1월의 어느 날이었다. 그 날도 백봉은 몸에서 열이 나자 도반들을 피해 밖으로 나와 바위 위에 앉아서 참선을 했다. 하늘에서는 커다란 눈송이가 소리없이 내리고 있었다. 깊은 삼매에 들어간 그의 몸에는 내리는 눈이 수북히 쌓였다. 하지만 무릎 위에 올려 놓은 손만은 눈이 닿는대로 녹아버렸다. 몸의 열기 때문인 것 같았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새벽 4시 쯤. 당시 암자에서 4-5리 떨어진 마을의 동네 사람들은 사랑방에서 놀다가 집으로 가는 중이었는데,그들은 암자 있는 곳에서 화광(火光)이 솟구치는 것을 보았다. 마을 사람들은 광명이 솟는 곳에 금광이나 금불상같은 것이 있다는 속설에 따라 삽과 곡괭이를 들고 암자로 올라왔다. 빛이 비치는 곳을 따라가보니,바위 위에 한 사람이 코만 빠꼼히 내놓은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가서 살펴보니 옴몸이 얼어 있는데 숨소리만 가느랗게 들렸다. 사람들은 얼음장같은 그 사람을 방 안으로 안아서 데려갔다. 신선생이 나와서 그의 언 몸을 주물러서 녹였다.
 
그즈음 백봉의 행동에서 이상한 느낌을 받고 있던 신선생은 백봉의 기색을 살펴본 뒤 평소 보고 있던 선사(禪師)의 어록(語錄)을 가져 왔다. 그리고는 아무데나 펼쳐 보였다. "마음이 곧 부처다[卽心卽佛]." 마조(馬祖) 대사의 말씀이 나왔다. 이 귀절을 본 백봉은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알 것 같았지만,별다른 느낌은 없었다. 신선생은 다시 백봉의 안색을 살피다가 다음 장을 넘겼다.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非心非佛]." 역시 마조 대사가 황매(黃梅) 선사에게 한 말이 나왔다. 그러나 이 귀절을 본 백봉은 깜짝 놀라면서 벌떡 일어섰다. 훗날 자신의 표현대로 '덜컥 걸려들었던' 것이다. 멍멍한 기분이었다. 몸에서 방광(放光)을 하자,도반들은 그가 대오(大悟)한 걸 알아차리고 일어나서 세번씩 절을 했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모습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방 안에 난 창문을 통해 산 이 보였는데,아무 것도 변한 것은 없었다. 바로 그때 암자 아랫 마을에서 땡그렁 거리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종소리를 들은 백봉 은 깨달음의 심경을 이렇게 읊었다.
 
홀연히도 들리나니 종소리는 어디서 오나
까마득한 하늘이라 내 집안이 분명허이
한 입으로 삼천계를 고스란히 삼켰더니
물은 물은 뫼는 뫼는 스스로가 밝더구나


忽聞鐘聲何處來
廖廖長天是吾家
一口呑盡三千界
水水山山各自明

 
이 '종성'(鍾聲)이라는 시에 대한 백봉의 직접적인 설법을 들어본다.
 
당시 내가 벌떡 일어섰어요. 멍멍한 상태인데,도반들이 전부 내게 세번씩 절을 했대요. 그땐 내가 몰랐거든. 나중에 들으니 그런 것 같아요. 그때 방 남쪽으로 창이 하나 있었는데,창을 통해 바라보니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어요. 변했다면 또 망상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지. 그때 마을에서 예배당 종소리가 들렸는데,그 종소리를 듣고 '홀연히도 들리나니 종소리는 어디서 오나'[ 忽聞鐘聲何處來]라고 했습니다.

물론 예배당 종소린 줄 알았어요. 그러나 예배당이 예배당만이 아니거든. 유정(有情)과 무정(無 情;가령 예배당같은 건물)이 본래의 지혜에서 나와 갈린 것으로 그 당처(當處)는 하나예요. 쓰는[用] 데엔 유정과 무정이 영 달라요-아,돌멩이와 사람은 다르지 않습니까?-하지만 종소리 나는 곳은 한군데 아니겠어요? 우리가 예배당 종이다 뭐다 분별해서 그렇지 그 당처는 하나예요. 그 소리가 바로 나한테서 오는 것과 한가지입니다. "바로 온누리가 '나'이고,내가 있기 때문에 삼라만상이 벌어지는구나. 그러니 나와 부처님이 당처는 하나구나"-이런 것이 느껴져요.(만약 하나가 아니라면 부처님과 내가 무슨 상관이 있나요? 그렇다면 불교 공부를 해도 공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이 소리가 온 곳을 안다면,예배당 자체가 내 몸 아닙니까? 온허공이 '나'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 '까마득한 하늘이라 내 집안이 분명허이'[廖廖長天是吾家]라고 했어요. 내 집이 어딘가? 허공 전체가 내 집이예요. 처음엔 '내 집'[吾家] 대신 '내 몸'[吾身]이라고 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몸이라 하든 집이라 하든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리고나서 '한 입으로 삼천계를 고스란히 삼켰더니'[一口呑盡三天界]라고 했는데,그때 내 심경이 이랬습니다. 산하대지가 전부 내 성품 속에서,내 뱃 속에서 밝기도 하고 어둡기도 했어요. 이거 거짓말이 아닙니다. 물론 이 몸뚱이[肉身]로서는 말도 안되는 소리죠.

하지만 '허공이 나'이니,나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있을 수가 없어요. 내가 없는 데 산하대지가 있어요? 내가 없는데 부처님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과 나는 동근(同根)이란 말예요. 이 '나'는 파순이가 되려고 하면 당장 파순이가 되고,부처가 되려고 하면 당장 부처가 되고,중생이 될려면 당장 중생이 되요. 그 뿐인가 지옥에 갈려면 지옥에 가고 극락에 갈려면 극락에 갈 수 있어요. 그런데 이게 얼마나 크냐 이 말입니다. 원래 큰 것도 작은 것도 아니지만 ,적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허공을 싸고도 남고,큰 것도 아니기 때문에 바늘귀에 들어가고도 남아요. 이걸 과학적으로 생각해 보세요.

이렇게 생각해 보면 이 '나'는 정말 굉장한 겁니다. 바로 이 주인공인 '나'가 슬며시 알아졌단 말이예요. "야,그렇구나. 큰 것도 작은 것도 아니구나. 마음대로 하는구나. 이런 재주를 내가 갖고 있구나. 게다가 나고 죽는 것도 없구나. 단지 나고 죽는 것을 나투어서 쓸 따름이구나."-이런 사실도 저절로 알아져요-"그렇구나,그렇다면 이건 굉장 한건데. 참말로 절이라는데가 술만 먹는 자리가 아니구나. 그리고 산하대지를 비롯한 우주의 숱한 천체가 결국 이걸 벗어나지 못 했구나,이걸 벗어나면 의지할 곳이 없구나."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건 절대(絶對)에 속한 거예요. 그래서 자신이 딱 생겼습니다. 이렇게 느끼고서 바라보니,자기 인연에 따라서,자기 멋에 따라서 산은 산대로 물은 물대로 스스로가 밝았어요[水水山山各自明]. 그래서 이 시를 지은 겁니다.

하지만 육신에 들어 앉아서는 이런 글이 안나오는 겁니다. 당시 내 심경은 허공이 내 몸이었어요. 그러니 욕계,색계,무색계,천당,지옥이 다 허공 속의 작용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의 마음을 키울려면- 원래 키우고 안키우고도 없지만-이 육신을 내버려야 해요 . 사실 빛깔도 소리도 냄새도 없는 그 자리는 꼭 허공과 한가지입니다. 이 허공이 '나'라는 느낌이 들면 확 달라집니다. 우리가 중생놀이를 하는 것도 이 무정물인 육신 때문에 중생 놀이를 하는 것이고,우리가 공부를 해서 부처가 되려는 것도 이 육신을 방하착(放下着)해서 부처가 되는 거예요.
명상나라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