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에 첫 번째 깨달음을 경험하고
1884년 21세에 금강산에서 무(無)자 화두를 통해
2차 깨달음을 얻었다.
이어 각처에서 수행하며 ‘육조단경’ 등
경전을 보며 수행을 점검한 후 순천 송광사
삼일암에서 ‘전등록’을 열람하던 중,
‘달은 굽은 활과 같고 비는 적은데 바람만 많구나’
라는 대목에서 홀연 세 번째 깨달음을 겪었다.
그리고 제방선원에서 참선하는 한편으로
‘기신론’, ‘법화경’, ‘선요’, ‘서장’, ‘화엄경’,
‘선문염송’ 등을 배우고 선사들의 어록을
살펴본 스님은 마침내 1886년 23세에
확철대오의 경지에 이르렀다.
스님은 이때 낙동강을 건너는 뱃전에서
“금오산에 천년의 달이요
낙동강에 만리의 파도로다
고기잡이 배는 어느 곳으로 갔는고
예와 같이 갈대꽃에서 잠을 자도다”
라고 읊었고,
이는 훗날 대각교 운동을 추진할 때
대각교 종지의 천명으로 내보이던 오도송이었다.
확철대오 이후 17년여 동안 보림의 시기를
갖던 스님은 1903년 2월 지리산 상비로암에서
처음으로 선회를 개설하는 등 선법을 펼치기도 했다.
경봉 스님에게는 편지를 보내
“선원의 종주 문제는 본 대각교의 일이 번다하여
부탁하신 청을 들어드리지 못하오니 양해하시옵소서.
교생은 승적을 제거하였는데
그 까닭은 조선 승려는 축처를 하고 고기를 먹으며
사찰 재산을 없앰에 대하여
승수(僧數 : 불교계)에 처할 생각이 없기 때문”
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대각사상은
‘인간의 근본 심성을 자기 스스로 깨치고,
나아가서는 다른 사람들도 깨치게 하는
자각각타가 둘이 아니기에 원만하므로
구경각하다’는 데서 나왔다.
이러한 스님의 대각사상은 그의 사상의
요체를 분명하게 밝힌 ‘각해일륜’의
‘대각의 본원심’ 부분에 잘 요약돼 있다.
특히 1930년 초간본을 낸 ‘각해일륜’은
스님 사상의 요체를 알려주는 것으로
종교, 도덕, 진리, 철학, 과학, 인과 등을
모두 담고 있었다.
그렇게 말년까지도 모든 대중에게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고구정녕하게 일러주던
스님은 1940년 2월24일
“모든 행이 떳떳함이 없고
만법이 다 고요하다.
박꽃이 울타리를 뚫고 나가니
삼밭 위에 한가로이 누웠도다”
라는 임종게를 남기고 세수 77세,
법랍 61세로 입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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