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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의욕자극

화두선에서 갈피를 잡다

by 법천선생 2013. 8. 12.

 

 

 

공항에서 이렇게 꾸겨져 잠들어 있을 때,

 

내 영혼은 어디에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하기만 하다.

 

 

부모미 생전의 모습은 무엇일까?

나는 과연 누구란 말인가?

화두선에서 갈피를 잡다.

옛날 조사스님들은,

사람의 마음을 바로 가리켜

성품을 보고 부처를 이루게 했다

[直指人心見性成佛].

 

진리를 위하여서는 죽을 수도 있다는

굳건한 각오 없이 늘 외양에 속으므로

방편으로 만든 것이 화두이다.

 

화두는 만법(萬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

 

부모에게서 태어나기전 나의 본래 면목은 무엇인가?

등등 많이 있지만

염불하는 자는 누구인가?를 제일 많이 든다.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음이 [不生],

마음이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

 

잠들어 혼침에 빠지지도 않는 것,

고요함에만 빠지는 것도 아니며,

허무에 떨어지지 않는 것.

늘 회광반조(回光返照) 할 것.

 

가장 먼저 큰 의심을 가져야 한다.

큰 의심은 명상수행의 나침판, 길잡이다.

 

마음은 어떻게 생긴 물건인가.

잡을 수도 없고, 볼수도 없으며 

만져 볼수도 없으니 정말 답답한 노릇이다.

 

그렇지만 너무 강력하게 의심을

불붙듯 일으켜서는 안되며

고요하고 미세하게 섬세하게 할수록 좋다.

 

언제, 어느때나 오직 이 의심을

강물이 끊임없이 흘러가는 것처럼, 

끊임없이 비추어 바라다 본다.

 

만약에 의심이 감지되면 그대로 하고,

의심이 없다면 다시 가볍게 일으키라.

절대로 시비장단을  가리는 생각을 말며,

공력을 얻거나 못 얻거나 상관하지 말라.

 

옷을 입고 밥을 먹는 자는 누구인가?

내는 사람은 누구인가?

능히 느끼는 자는 누구인가? 등과 같다.

 

어쨌든 가거나 머물거나 앉거나 눕거나 간에

누구인가?라는 글자를 한번 들면

문득 쉽게 의심이 일어날 것이다.

 

점차 미쳐 날뛰던 마음을 조용히 가두어

마음의 힘이 잡히는 듯한 것이 있을 때

비로소 명상상태라고 할 수 있다.

 

점차로 공부가 익어 의심하지 않아도

저절로 의심이 일어나고,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고

자기가 어디에 앉아 있는지도 깨닫지 못하며,

 

몸과 마음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하게 되고,

한 줄기 의심이 드러나 끊어지지 아니할 때에야

비로소 의정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처음에야 어찌 공부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저 겨우 망상을 부수는 정도이다.

 

진정한 의심이 드러나게 되는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공부를 하는 때라고 할 수 있다.

 

이 때에 하나의 커다란 관문(關門)이 있으니

다음과 같은 두 개의 갈림길로 들어가기 쉽다.

(1) 아주 깨끗하고 한없이 가벼우며

편안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선정[覺照]을 놓치면

곧 가벼운 혼침 상태에 빠지게 된다.

 

만약에 눈 밝은 이가 곁에 있다면 바로 알 수 있다.

이 경지는 향나무 판자로 내려치자마자

온 하늘의 구름과 안개가 걷힌다

라는 것으로 흔히 이 경지를 도를 깨친 것으로

아는 경우가 많다.

(2) 아주 깨끗하며 텅 비고 툭 트인 상태여서

의정이 없으면 곧 무기(無記)에 떨어져,

마치 나무 등걸이나 바위덩이가 앉아 있는 것처럼

되어 버린다.

 

이것을 일러 돌에 부딪치는 물거품이라고 한다.

이 때에는 다시 화두를 들어야 하며

화두를 들면 곧 각조(覺照)에 들게 될 것이다

 

(은 미혹하지 아니함이니 곧 지혜이고,

는 어지럽지 아니함이니 곧 선정이다).

오직 오롯한 이 한 생각은 고요하게 비추며,

여여(如如)하여 움직이지 아니하며

신령하여 어둡지 아니하며 분명하며 항상 안다.

 

마치 식은 재에서 연기가 나는 것처럼

한결같이 이어져 끊이지 않는다.

 

공부가 이 경지에 이르면 금강(金剛)과도 같은

눈동자를 갖추어야 하며,

다시는 화두를 들 필요가 없다.

 

이 때 화두를 든다면 머리 위에 다시

머리를 올려 놓는 격이다.

옛날에 어떤 스님이 조주(趙州)스님에게

한 물건도 가지고 오지 않았을 때에는

어떻습니까?하고 물으니,

조주스님이 놓아 버리라(放下來)고 대답하자

그 스님은 다시 한 물건도 가지고 오지 않았는데

무엇을 놓아 버립니까?하고 물었다.

 

조주스님은 놓아 버리지 않으려면 짊어지고 가거라

고 대답하였다.

 

이것이 바로 이때의 소식을 말한 것이다.

이 소식은 물을 마셔본 자만이 그 물의 차고

따뜻함을 아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말로서 표현할 수는 없다.

 

이 경지에 이른 이는 저절로 분명하게 알 것이요,

이 경지에 이르지 못한 이는 말해 주어도

소용이 없을 것이니,

 

이른바 길에서 검객을 만나면 검을 드러내 보일지언정,

시인이 아니라면 시를 지어 바치지 말라

말이 바로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