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운동선수 출신으로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거의 오전수업만하고 45세가 되어서야 전문직으로
진출을 위하여 공부를 처음으로 제대로 시작한 사람이다.
필자가 처음으로 노량진 학원가에서 아주 좁은 고시원을
하나 빌려 놓고 공부를 시작하려고 할때,
양변이 질변이라는 말을 실제로 체험하게 되었다.
처음 책을 들여다 보니 전혀 머릿속에 들어오지를 않았다.
두꺼운 교육학책을 들여다 보다가 일어서서 돌아서면
모두 다 잊어 버린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내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학생들에게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기에 나도 그들에게 이야기했던 것처럼
무조건 책을 보고 또 보고 하는 수박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무조건 들여다 보고 또 보고 하니까, 처음에는 전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던 내용들이 늦기는 했지만
서서히 눈에 들어오고 이해되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양변이 질변으로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자연계의 법칙이다.
먼저 할일은 무조건 일단 많이 해보고
나중에 질적인 변화가 나타나길 바라면
될 것 밖에는 현재까지로서는 다른 방법은 없다.
그러나 나는 여러가지 개연성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
약물을 통한 해탈이나, 전자기장을 통한 깨달음의 체험 등,
또한 칩의 주입을 통한 깨달음의 체험등등 수많은
과학적 해탈도 미래에는 반드시가능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현재까지의 방법으로는 다른 대안은
전혀 없는 것 같다.
그러니 무조건 많이 오래 명상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극점을 돌파하게 되면 언젠일지는 물라도
해탈의 환희심이 우주까지도 가득하게 될 날이 올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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