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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 집으로 들어가다가 나는 아파트 현관에서 별이 총총한 하늘을 올려보며 중얼거렸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내가 누구인지 정말 궁금했다.
나는 도대체 왜 지금 여기에 와서 이렇게 생로병사(生老病死)를 겪고
있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생각이나 지식으로, 나는 누구라고 말할 수 없었다.
오직 밖으로만 향했던 내 눈을 나는 내 안으로 돌려 보았다.
내 몸 안은 깜깜한 어둠으로 꽉 들어차 있었다.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것이 나는 서럽고 분했다.
나는 하늘의 별을 쳐다보며 혼자 눈물을 흘렸다.
나는 누구인가? 다리를 절며 길을 걸어가고 있는 병든 노인이
내 모습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시간은 오직 관념이었다.
과거는 모두 내 기억에만 있었고 미래는 모두 내 상상 속에만 있었다.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내 마음은 늙지도 젊지도 않았다.
나는 어제도 나였고 오늘도 나였다. 어릴 때도 나였고 늙어서도
나일 것이었다. 불교의 윤회를 가져와 이야기하면 백 살 노인과
열 살 아이 중에 누가 더 오래 살았다고 말을 할 수 있는가.
문득 고개 들면 내 몸은 병들어 있고 문득 고개 들면 내 몸은 늙어있고
문득 고개 들면 내 몸은 죽음 앞에 있는 것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다리를 절며 늙은 몸을 이끌고 있는 이 나는 누구인가?
유치원에 가겠다고 가방을 등에 지고 달려가는 이 나는 누구인가?
길거리를 뛰어다니는 똥개도 내 모습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대행(大行)스님은 말했다. 당신 부모가 죽어 옆집에 소로 태어나도
당신은 모른다. 논두렁의 소가 나였고 길거리의 개가 나였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없었다. 모든 살아있는 것과 모든 죽어있는 것이
모두 나였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차츰 내 몸뚱이가 나라는 의식(意識)이 엷어지고 있었다.
나는 누구인가? 내 앞에 펼쳐진 이 세상과, 내가 끌고 다니는 이 몸뚱이와,
나라는 의식 사이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있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이 질문은 ‘세상이 무엇인가?’와 다름없이 내 앞에
전개되고 있었다. 나는 누구인가?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잠이 점차로 줄어들었고 육식(肉食)은 저절로 끊어졌다. 그 당시 우리 회사는
회사에서 가까운 보리밥 뷔페를 월 식당으로 잡아서 점심을 해결했었다.
나는 그곳에서 하루 점심 한 끼 식사만을 했다. 그것도 아주 적은 양만 먹었다.
나는 음식의 맛도 잃고 있었다. 나는 누구인가? 일을 하면서도 길을 가면서도
내 가슴에서는 나는 누구인가 뿐이었다.
내 신체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나는 먼저 뱃살이 빠졌다. 내 얼굴은 투명하게
맑아졌고 눈빛은 고와졌다. 오랜만에 나를 본 나의 동생들이 매우 놀라워했다.
얼굴은 분가루를 뒤집어 쓴 것처럼 뽀얗고 이목구비(耳目口鼻)는 화장을 한 듯이
선명하게 보인다고 말했다. 좌선을 하고 일어서면 몸은 날아갈 듯이 가볍게 느껴졌다.
그러나 나는 답답했다. 내 안에서는 혹독한 전쟁을 치르고 있는데 밖으로 보이는
내 모습은 안온(安穩)하고 아름답다니 신기한 노릇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이 질문은 내게 착 달라붙어서 떨어져
나가지를 않았다. 또 어떤 날부터 나는 아예 내 의식의 통제 밖에서
‘나는 누구인가?’를 하고 있었다. 기이한 일이였다.
나는 잠들기 직전까지도 나는 누구인가였고, 밤에 잠이 깨어도, 내 의식보다 먼저
‘나는 누구인가?’가 들어왔다.
그 후 나는 꿈속에서도 ‘나는 누구인가?’가 들이닥쳤다. 꿈의 내용과 상관없이
그 꿈을 ‘나는 누구인가?’가 점령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이러다가 어떻게 되는 것이
아닌가하고 걱정이 될 정도였다. 이제는 ‘나는 누구인가?’를 떼어내려고 마음먹어도
떨어지지 않았다.
내 가슴으로 집채만한 불덩이가 들어서더니, 드디어는 내 눈앞에 하늘과 땅을
관통하는 의심의 기둥이 턱하니 들이 닥쳤다. 이제는 ‘나는 누구인가?’를 내가
피할 곳이 없어져 버렸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집채만 한 굵기의 이 의심의 기둥은 끝없이 하늘로 솟아 있었다.
“아아-, 답답하다 답답해…….”
‘나는 누구인가’에서 도망갈 곳이 없는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 날도 나는 어김없이 낙동강변에 차를 주차하고 명상을 했다. ‘나는 누구인가’는
내 의식의 통제 너머에서 저절로 돌아가고 있었다. 호흡도 내 의식의 통제 밖에서
이어지다 끊어지다 했다. 나는 내가 살아있는 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소리를 내어 보았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선가 강렬하게 그 답이 왔다. 자재보살(自在菩薩). 나는 누구인가? 자재보살!
차를 몰고 집으로 들어가는 그 밤, 온 세상이 훤하게 밝았다.
나는 한밤중에 집으로 들어가 세수를 하기 위하여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 거울 속에 한 남자가 보였다. 아주 낯선 사내가 그곳에 있었다.
나는 그 거울 속의 내가 너무 낯설었다. 나는 ‘너는 누구냐?’라고 물으며,
거울 속의 나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나는 누구인가?’만 남고 나는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내가 없어졌다. 아니 나라는 의식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내가 돌아오라고, 몸을 흔들고 머리를 쥐어뜯어 보았다. 나는 누구인가?
그래도 내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잠자리에 반듯하게 누웠다. 나는 누구인가?
눈을 감고 있어도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곧 나는 완전히 죽어버렸고
또한 완전히 깨어났다. 나는 처음으로 온 하룻밤을 깨어 있었다.
나는 끝을 헤아릴 수 없는 맑은 달 속에서 칼날같이 빽빽한 ‘나는 누구인가?’를 들고
완전히 깨어났다. 잠이 잠인 줄 꿈이 꿈인 줄 알며 빛과 함께 깨어있음. 성성적적(惺惺寂寂)!
아침에 잠이 깨며 내 의식이 돌아왔다. 부엌에서 아내가 아침 준비를 하는 소리가 들렸고
눈앞에는 자고 있는 아들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아들을 내 가슴에 꼭 감싸 안았다.
나는 말할 수 없이 행복하고 행복했다.
밤사이에, 내가 태어나고 자라고 익혀왔던 세상은 완전히 뒤집혔다.
현관을 나와 나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나는 누구인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세상을 향해 환하게 웃었다.
나는 내가 짐승에서 마귀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불생불멸(不生不滅)
불구부정(不垢不淨) 부증부감(不增不減)1)의 나. 불에 들어도 타지 않고 물에 들어도
젖지 않는 것이 나였다.
나는 백 명의 무당이 내 앞에서 내가 잘못되라고 푸닥거리를 해도 그들을 향해
다정하게 웃을 수 있고, 천하에 둘도 없는 미인이 발가벗고 나를 유혹해도 애정을
가지고 웃을 수 있는 내가 된 것이었다. 그때가 내 나이 마흔두 살 6월 하순이었다.
그 후 깨어있는 잠과 꿈은 불규칙하게나마 또 발생했다.
나는 화두(話頭)와 관법(觀法)과 기도(祈禱)와 염불(念佛)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대상과의 일체도 몇 차례 겪었다. 나는 바위가 되기도 했고 풀이며 나무가 되기도 했다.
내 앞에 펼쳐진 세상이 나였다. 깊은 밤 어둠이 걷혀 하늘이 환하게도 보였다.
아내를 안고 잠을 자며 시간과 공간의 틈을 비집고도 들어갔다.
이십대 내가 S와 함께 잠을 자며 겪었던 그 이상한 경험들이, 성에 대한 신비감과
호기심 때문이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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