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면 할수록
죽음은 더 무서운 것이 될 것이다.
죽음의 공포가 아니며, 거짓 삶의 공포라는
가장 좋은 증거는 때때로 사람이 죽음의
공포 때문에 자살하는 사실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그들에게 있어서는 죽음이
공허와 암흑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공허와 암흑을 보는 것은
그들의 삶을 보지 않기 떄문이다.
육체의 죽음은 공간적 육체와 시간적 의식을
없애는 것이지만, 그러나 삶의 토대를 이루는 것
-이 시체와 존재와의 사이에 성립되는
특수한 관계를 없애는 것은 아니다.
죽음의 공포는 사람들이 그들의 잘못된 관념에
의하여 국한된 삶의 한 작은 부분을 인생이라고
잘못 생각하는 데서 비롯된다.
죽음과 고통이 재난으로서 사람의 눈에
비치는 것은 사람이 육체적, 동물 존재의 법칙을
삶의 법칙과 혼돈할 때 뿐이다.
삶은 없어질 수 없는 것이다.
삶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것이다.
따라서 죽음은 다만 삶의 형식을 바꿀 수 있음에
불과하며 이 세상에서의 삶의 나타남을
중절시킬 수 있음에 불과하다.
산다는 것은 죽는 것과 같다.
잘 산다는 것은 잘 죽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잘 죽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우뢰 소리가 나는 것은 이미 벼락이
떨어진 것을 말하며, 따라서 벼락에 맞아
죽을 염려는 전혀 없음을 우리는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무서워서 벌벌 떤다.
죽음도 마찬가지다.
삶의 뜻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죽음과
더불어 모든 것이 없어지는 줄로 안다.
그래서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음으로부터
도망하려고 한다.
어리석은 자가 우뢰 소리를 듣고,
벼락에 맞아 죽은 염려는 전혀 없는데도
도망쳐 가듯이. 죽음, 그것은 우리의 영혼이
덮어 쓰고 있는 바깥쪽 껍데기의 변형이다.
바깥 껍데기와 그 속에 들어 있는 알맹이를
혼동해서는 안된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환상을 무서워하는 것,
즉 없는 것을 무서워하는 것과 같다.
죽음을 잃은 생화로가 죽음이 시시각각
다가옴을 의식한 생활과는 두 개의 전혀 틀린
상태이다.
전자는 동물의 상태에 가깝고,
후자는 하나님의 상태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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