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라 때의 유학자인 주 진사는 유교에 사서삼경이
있다는 것만 알았을 뿐 불교에 경이 있다는 사실을
40세가 넘도록 모르고 있었습니다.
어느 여름날 고개 너머에 있는 친구 집을 찾아가던
도중에 소나기를 만난 주 진사는 옆에 있는 조그마한
암자로 들어갔습니다.
때마침 스님은 방안에서 경을 읽고 있었고 마루에
걸터앉아 비 그치기를 기다리던 주진사의 귀에
대방광불화엄경 이라는 구절이 들려왔습니다.
'허! 절에도 경이 있나?' 대방광불이라니.......'
궁금하게 여기다가 소나기가 그쳐 친구 집으로
찾아간 주 진사는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산골 절에도 경이라는 것이 있는가?"
"이 친구가! 어찌 그리도 무식한 소리를 하는가!"
중국에서는 당시만 하여도 유교와 불교가 한 덩어리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유교를 모르면 학자로서의
자격이 없고 승려가 유교를 모르면 중생교화를 할
자격이 없다고 할 때였으므로 친구가 주 진사를
'무식쟁이'로 몰아세운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친구는 계속 이야기하였습니다.
주 진사는 대화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불경에
대한 생각을 놓고 있었습니다.
두 달 가량이 지나 가을 추수를 할 무렵, 주 진사는
들로 나가 일꾼들이 추수를 하는 것을 구경하고
집으로 돌아와 점심밥을 잘 먹고는 마루에 누워
숨을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죽은 주 진사는 죽었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는 마루에 누었다가 일어나서 신을 신고, 자기 집 뒤뜰로 갔습니다.
그런데 뒤뜰에 전에 보지 못하였던 아름다운 누각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 분명히 우리 집 뒤뜰인데 누가 이런 누각을 지었을까?'
그때, 누각 위로부터 대화를 나누는 소리, 웃음소리, 풍악소리가
들려와 살그머니 올라섰습니다.
누각 위에는 비단 옷을 입은 젊은 신선4명이 있었으며 주위에
시동과 무희들이 있었습니다. 또한 젊은 신선4명 중 2명은 바둑을,
2명은 훈수를 두고 있었습니다.
평소에 바둑을 매우 좋아하였던 주 진사는 신선들의 묘수에 빠져
넋을 잃고 바라보았고, 판이 끝난 다음에도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바둑을 두던 젊은 신선이 주 진사에게 물었습니다.
"당신도 한 판 두시겠습니까?"
"좋지요!"
"이 바둑을 두려면 내가 입고 있는 옷을 꼭 입어야 합니다."
바둑을 두고싶은 생각만 가득하였던 주 진사는 젊은 신선이 벗어주는
비단옷에 오른쪽 팔을 끼웠습니다.
순간 난데없이 허공으로부터 벽력 같은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대방광불화엄경의 소리를 듣고 몇 차례 흥얼거려 본 사람이 어째
그런 옷을 입느냐!"
그 소리에 놀라 깨어나 보니 가족들이 통곡을 하며 주 진사의 육신을
입관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주 진사에게는 바둑 한 판을 두는 동안이었지만 인간의 시간으로 3일이
흐른 것이었습니다.
가족들은 기적 같은 환생에 기쁨의 울음을 터트렸으나 주 진사에게는
풀리지 않는 의문만이 더해질 뿐이었습니다.
'분명히 우리 집 뒤뜰에서 누각을 보았고 그 안에 신선들이 있었는데......'
주 진사는 뒤뜰로 가보았습니다. 그곳에는 타작한 볏짚이 질서 정연하게
쌓여 있었고 그 위에 개가 올라가 네 마리의 새끼를 낳았으며 그중 한 마리는
죽어 있었습니다.
유학자였던 주 진사는 이에 대한 풀이를 하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간직하였다가
후일 정승을 지냈고 도를 깨달았다는 무진거사 장상영을 만났을 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그러자 무진거사는 웃으며 말하였습니다.
"당신은<대방광불화엄경>의 덕을 많이 보았구려, 그때 비단옷을 입었으면
틀림없이 강아지가 되었을 것이오. 개의 자궁이 훌륭한 누각으로 보인 것은
당신의 업과 맞았기 때문인데, <대방광불화엄경>을 읊는 소리를 듣고 스스로
몇 번 읊은 공덕 덕분에 강아지가 될 것을 면한 것이오."
죽을 줄도 모르고 죽은 자신에게 어미개의 몸이 화려한 누각으로 강아지의
몸이 신선으로 보였던 주 진사에게는 자기의 업에 따라 다시 태아날 인연처가
그렇게 좋게 보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주 진사가 신선의 비단옷을 받아 입으려는 순간, 허공으로부터 호통을
치는 소리에 깨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대신 한 마리의 강아지는 죽은 채 태어났고.....,
과연 이렇게 된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대방광불화엄경>을 몇 차례 외운 덕분이었습니다.
이처럼 경의 제목을 외우는 공덕은 매우 큽니다. 그래서 어떠한 경전이든 본문을
읽기 전에 경제목을 세 번 읽으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나의 말이 아닙니다.
수십 년 전까지만 하여도 강원에서 아침저녁으로 경을 읽거나 연구를 할 때는 전 대중이
꼭 경제목을 세 번씩 읽고 시작하였습니다. 그것도 경제목 앞에 '나무'를 붙여서 말입니다.
그러므로 절에서나 집에서나 <금강경>,<화엄경>,<지장경>,<반야심경> 등 어떠한
경전을 독송하든지 간에 꼭'나무금강반야바라밀경,나무대방광불화엄경,나무지장보살본원,
나무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등 경제목을 3번씩 염송하도록 하십시오.
경의 제목은 그 경전 내용의 핵심을 담고 있으므로 공덕이 더욱 크다는 것을 마음에 새겨
독송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 나무아미타불카페http://cafe.daum.net/amt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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