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건륭 계사년(1773)부터 수도 북경의 광통사(廣通寺)에서
주지를 맡아 대중을 거느리고 참선 수행을 하면서 틈틈이 이런 말
저런 말 지껄이며 붓으로 기록해 두었다.
그런데 숙세의 두터운 업장으로 말미암아 온갖 질병이 다발처럼
몰려들었다.
그래서 5정심관이 우리 유정 중생들에겐 장애가 많음을 느끼고
염불수행으로 다스리기로 작정하였다.
이 염불법문은 문수, 보현 등 여러 위대하신 보살들로부터
마명, 용수 등 위대한 조사님들과 지자(智者), 영명(永明),
초석(礎石), 연지(蓮池)등 위대하신 선지식들에 이르기 까지
모두 한결같이 마음으로 귀의한 가르침이다.
그런데 내가 감히 어떤 사람이건대 생명을 던져 귀의하지 않는단 말인가?
마침내 나는 아침, 저녁 예불시간에 염불하기 시작하였는데,
참선하는 스님들 중에서 함께 따라하는 이들이 많게 되었다.
나는 드디어 참선을 그만두고 염불에만 전념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당시에 법문의 장벽이 두터운 자들이 사방에서 비방의
불길을 내뿜었으나 나는 부처님 말씀을 깊이 믿었기 때문에
그런 말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고 하였으며,
가경 15년(1810) 12월 17일 서쪽을 향해 단정히 앉아 합장을
한 뒤에 말하기를 “위대하고 거룩한 아미타불의 명호를 한 번
염송하면 한 번 염불한 만큼의 부처님상호를 친견한다네.
우리 다 함께 극락정토에서 다시 만나세. 나는 지금 서방으로
돌아가겠네.”하고 입적하기까지 근 30여 년 동안을 하루같이
염불에만 정진하였다.
그리고 선사께서는 “영명연수 선사께서 선종의 거장이면서도
오히려 마음을 정토에 귀의하여 매일같이 나무아미타불 명호를
10만 번씩 염송함으로써 극락세계에 왕생하길 발원 수행하셨다.
그런데 하물며 지금 같은 말법시대에는 더욱 받들며 따라야 할
게 아닌가?”라고 반문하시며 제자들에게 염불을 권하셨다.
입적하기 반달쯤 전에는 산사를 그동안 돌봐주고 보호하던 여러
재가 신도들에게도 감사 인사를 드리며 다음과 같이 모두에게
신신당부하였다.
“허깨비 같은 세속 인연 길지 않으며 인간 세상 참으로 덧없는 것이니,
짧은 인생 허송세월하면 안타깝기 그지없소.
각자 모두들 마땅히 염불공부에 노력해야 할지니 그래서 앞으로
극락정토에서 반갑게 만납시다.”
출처 : http://cafe.daum.net/amtb/4BkF/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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