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망각한 생활과 죽음이 시시각각으로
다가옴을 의식한 생활과는 두 개의 서로 완전히
다른 상태이다.
전자는 동물의 상태에 가깝고,
후자는 신의 상태에 가깝다.
죽음의 공포는 사람들이 그들의 잘못된
관념에 의해 국한된 삶의 작은 부분을
인생이라고 착각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생은 사멸할 수 없는 것이다.
생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것이다.
그러므로 죽음은 한갓 생의 형식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데 지나지 않는다.
이승에 있어서 나타난 생의 형체를
중절시킬 수가 있을 뿐인 것이다.
죽음 그것은 우리의 영혼을 덮어씌우고
있는 바깥 껍질의 변화다.
바깥 껍질과 그 속에 있는 알맹이와를
혼동해서는 안된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 그들에게
공허와 암흑을 제시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공허와 암흑을 보는 것은
참된 생명을 모르기 때문이다.
‘죽이지 마라’라는 말은 비단 인간에게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 있는 것에 대해서
일컬어진 말이다.
이 훈계는 돌에 새겨지기 전에 이미 인간의
마음에 새겨진 것이었다.
톨스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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