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 렌 박사가 행한 기적 같은 일에 관한 기사를 보고,
박사에게 편지를 보내 사실을 증명해 보이라고 요구한
사람도 있었다.
그 사람은 휴 렌 박사가 정신병원에서 일했던 사실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싶어 했다.
이에 대해 휴 렌 박사는 다음과 같이 상세한 답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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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경우가 그렇지만 확실히 집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군요. 사실은 이렇습니다.
1. 나(이하레이카라 휴 렌박사)는 하와이 주 복지부가 운영하는
하와이 주립병원 내 정신 요양시설에서 임상 심리학자로 일했다.
2. 나는 1984년부터 1987년까지 강도 높은 보안이 필요한
남성 환자 병동에서 임상심리학자로 주당 20시간을 일했다.
3. 1984년에 내가 임상심리학자 신분으로 통제구역 병동에
들어갔을 때는 모든 격리병실이 거친 환자들로 꽉 차 있었다.
4. 병동에는 다른 사람들을 폭행하는 것을 막기 위해
금속 팔찌와 족쇄를 찬 환자들이 늘 몇 명씩 있었다.
5. 환자들 사이의 폭행이나 환자들이 직원을 폭행하는 일은
빈번하게 일어났다.
6. 환자들은 스스로를 아끼고 갱생하려는 의지가 별로 없었다.
7. 병동 내에서 갱생 프로그램 같은 활동들은 없었다.
8. 병동 밖에서 허용된 활동이나 놀이, 작업도 없었다.
9. 가족들이 환자들을 면회하러 병동을 찾아오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10. 환자들은 정신과 의사의 서면 허락이 없이는 격리병동을
벗어나지 못했고 벗어난다 해도 팔찌나 족쇄를 차야 했다.
11. 환자들은 몇 년씩 입원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그들을
관리하는 비용만 일년에 3만 달러는 족히 들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12. 병동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병가가 잦았다.
13. 병원 환경은 칙칙하고 황폐했다.
14. 병동 직원들은 본래 마음씨가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15. 이제까지 내가 설명한 내용은
국내의 여타 정신병원과도 별반 다르지 않은 흔한
경우라고 생각한다.
1987년 내가 이 병원을 떠날 때는
1. 격리실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았다.
2. 팔찌와 족쇄도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았다.
3. 극심한 폭력 사건은 매우 드물었고 대개는
신참 환자들에게서나 발생했다.
4. 환자들은 병원을 떠나기 전에 살 집과 일자리,
법률문제 등 자기 일을 스스로 처리했다.
5. 조깅이나 테니스 같은 병동 밖에서의 여가 활동들이
정신과 의사의 허락이나 팔찌와 족쇄의 착용 없이 진행되었다.
6. 세차 같은 병동 밖에서의 노동이
정신과 의사의 허락이나 팔찌와 족쇄의 착용 없이
실시되기 시작했다.
7. 병동 내에서 환자들이 하는 일과 중 빵을 굽고
신발을 닦는 일이 포함되었다.
8. 가족들이 면회를 오는 횟수가 늘었다.
9. 직원들이 상습적으로 병가를 내는 일이 없어졌다.
10. 사람들이 병동 환경에 신경을 쓰게 되면서
도색작업과 보수작업을 제때 한 결과 병동환경이
상당히 개선되었다.
11. 병동 직원들은 환자들이 스스로를 완전히 책임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데 더욱 노력을 기울였다.
12. 환자들이 입원해서 퇴원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수년에서 몇 달로 급 감소했다.
13. 환자와 직원의 삶이 보호관리 차원에서 가족처럼
급격히 개선되었고, 사람들은 서로를 아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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