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 경허는 13살에 서산 천장암에 온 만공을
10년이나 부엌데기로 부려먹기만 할 뿐 화두
하나 주지 않았다.
이 무렵 만공은 이른바 ‘타심통’이 열려 사람의
마음을 환하게 알게 돼 사람들의 걱정거리를
풀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경허는 “그것은 술법이지, 도가 아니다”
며 신통을 금했다.
수월과 혜월같은 사형처럼 도를 깨친 것도 아니요,
신통조차 못 부리게 하니 혈기왕성한 만공의
가슴이 터지기 일보직전이던 어느 날이었다.
천장암에 들른 한 어린 승려가 “만법귀일 일귀하처
(萬法歸一 一歸何處: 모든 것은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가 돌아가는 곳은 어디인가)가 무슨 뜻이냐”
고 물었다.
처음 듣는 화두에 만공은 앞이 캄캄해졌다.
이 물음에 꽉 막힌 만공이 천장암을 무작정 빠져나와
찾은 곳이 ‘봉황의 머리’ 형상 아래 지어진 봉곡사였다.
이곳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정진한 지 2년이 지난
1895년 7월25일. 면벽 좌선 중 무념 상태에서 벽이
사라지고 허공법계가 드러나는 체험에 이르렀다.
이어 새벽녘에 종성 게송(종을 치면서 읊는 경전) 가운데
‘응관법계성 일체유심조’(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 마땅히
법계의 성품을 보라. 일체는 오직 마음이 지어낸 것이다)
라는 귀절을 외던 중 홀연히 의심 덩어리가 해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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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만공은 공주 마곡사 토굴에서 3년 동안 보임했으나
경허는 새끼사자를 벼랑 끝에서 밀어버리듯 “그것은 완전한
깨달음이 아니다”며 다시 경책한다.
스승이 준 ‘무’(無)자 화두를 들고 정진하던 중 1901년
경남 양산 영축산의 흰구름 떠도는 외딴 암자 백운암에
이르렀다.
장마를 만나 보름 동안 꼼짝 못한 채 참선만 하던 어느날,
새벽 종소리를 듣는 순간 상대 세계가 무너지고 마침내
우주의 본심이 드러났다. 31살 때였다.
그 뒤 충남 예산 덕숭산 정상 부근 정혜사에 금선대를 지어
수덕사, 견성암 등을 일으키니 이로써 덕숭문중이 태동했고,
근대 한국불교의 선풍이 여기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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