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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의욕자극

만공선사 이야기

by 법천선생 2020. 3. 1.


스승 경허는 13살에 서산 천장암에 온 만공을

10년이나 부엌데기로 부려먹기만 할 뿐 화두

하나 주지 않았다.


이 무렵 만공은 이른바 ‘타심통’이 열려 사람의

마음을 환하게 알게 돼 사람들의 걱정거리를

풀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경허는 “그것은 술법이지, 도가 아니다”

며 신통을 금했다.


수월과 혜월같은 사형처럼 도를 깨친 것도 아니요,

신통조차 못 부리게 하니 혈기왕성한 만공의

가슴이 터지기 일보직전이던 어느 날이었다.


천장암에 들른 한 어린 승려가 “만법귀일 일귀하처

(萬法歸一 一歸何處: 모든 것은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가 돌아가는 곳은 어디인가)가 무슨 뜻이냐”

고 물었다.


처음 듣는 화두에 만공은 앞이 캄캄해졌다.

이 물음에 꽉 막힌 만공이 천장암을 무작정 빠져나와

찾은 곳이 ‘봉황의 머리’ 형상 아래 지어진 봉곡사였다.


이곳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정진한 지 2년이 지난

1895년 7월25일. 면벽 좌선 중 무념 상태에서 벽이

사라지고 허공법계가 드러나는 체험에 이르렀다.


이어 새벽녘에 종성 게송(종을 치면서 읊는 경전) 가운데

 ‘응관법계성 일체유심조’(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 마땅히

법계의 성품을 보라. 일체는 오직 마음이 지어낸 것이다)

라는 귀절을 외던 중 홀연히 의심 덩어리가 해소됐다. 

 

그러나 만공은 공주 마곡사 토굴에서 3년 동안 보임했으나

경허는 새끼사자를 벼랑 끝에서 밀어버리듯 “그것은 완전한

깨달음이 아니다”며 다시 경책한다.


스승이 준 ‘무’(無)자 화두를 들고 정진하던 중 1901년

경남 양산 영축산의 흰구름 떠도는 외딴 암자 백운암에

이르렀다.


장마를 만나 보름 동안 꼼짝 못한 채 참선만 하던 어느날,

새벽 종소리를 듣는 순간 상대 세계가 무너지고 마침내

우주의 본심이 드러났다. 31살 때였다. 

 

그 뒤 충남 예산 덕숭산 정상 부근 정혜사에 금선대를 지어

수덕사, 견성암 등을 일으키니 이로써 덕숭문중이 태동했고,

근대 한국불교의 선풍이 여기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