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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개념

대행스님 법문

by 법천선생 2020. 7. 24.

지켜보라.
자기 발걸음을 지켜보라.

말하는 건 누가 하고,
듣는 건 누가 듣고,
보는 건 누가 보는지 지켜보라.

자기 하나 있어,
이 날까지 모든 것을 해오고 있는 것을 지켜보라.


생활을 떠나서 진리를 찾으면 끝내 찾지 못한다.
울고, 웃고, 괴로워하고, 기뻐하는 자기 모습,
그 자체를 자세히 살펴보라.


거기에 울고 웃을 것이 진정으로 있는가.
울고 웃는 자신이 실체로서 있는가.
자세하고 자세히 관해보라.

.................

설사 자기 능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급박한 상황에 직면했다 해도
주인공 자리에 놓고 지켜보라.

 

관한다 함은, 믿음으로 지켜보는 것이요

결코 둘로 보지 않고 지켜봄 이다.


주인공만이 주인공을 증명할 수 있다.
그것을 굳게 믿고 들어가는 것이 참선이자

관이다.

 

주인공에다 믿고 맡겨놓고,
무엇이 나오는지를 지켜볼 뿐

해결해 달라고 하지 말라.


수 억겁을 거치며 입력된 것이

솔솔 풀려 나오지만
닥치는 대로 놓으면 입력된 것이 지워지니,
그것을 지켜보라는 것이다.

 

안으로 관한다 해서,
관해지는 주인공과 관하는 내가

나뉘어지는 것은 아니다.


본래 하나이다.
맡긴다고 해도 맡는 것도 나이기에

맡기고 맡는 구별이 없으며,
지켜본다 해도 보고 보이는 구별이 없다.


만일 보는 자와 보여지는 자가 있다면,
그것은 참된 관이 아니다.
둘로 보면 기도를 하게 되지만,
둘로 보지 않는다면 관할 뿐이다.

 

지켜볼 때에 자꾸 망상이 든다 해도,
망상조차 주인공 자리다 하고 놓아라.


믿음이 약한 탓에 망상이 끼어드는 것이지만,
놓고 관하라.


그것을 따로 구분해서 보면 안 된다.
행하는 그대로를 누가 하는가 지켜보라.
놓는다는 것은 용광로에 무쇠, 잡쇠

등을 닥치는 대로 집어넣는 것이요,


관하는 것은 넣는 대로 용광로에서

재생되어 나옴을 지켜보는 것이다.

 

관에도
놓는 관,


둘 아닌 관,
내 일심으로의 관,


일심도 없는 무심관이 있다.


관한다 함에도 고정됨이 없다.
그러나 처음부터 무심관이 되기는 어렵다.


먼저, 일체 만법을 주인공 자리와 둘 아니게 보는
일심관이 성숙된 이후에 무심관이 되는 것이다.

 

아직 주인공 자리를 알지 못하고
믿음도 약한 사람들에게 한마디 이르노니,


아주 급한 경우에, 그대가 한 일이니 그대가

해결해야 할 것이 아닌가 하고 관하라.


지금 내가 있다는 것을,
영혼과 불성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한마음 주인공밖에 없다고 믿어,
그대만이 해결할 수 있다,


거기서 만이 이끌어 줄 수 있다,
되게 하는 것도 거기,
안 되게 하는 것도 거기 라고 믿고 관하라.

 

모든 것을 주인공에 놓고 관하다 보면
그때,
인과도 무너지며,
습도 녹아지며,
나를 발견하게도 되고,
일체를 항복 받을 수 있다.


주인공은 우체통이라
넣고 지켜보면 배달되고 답장이 온다.

 

- 대행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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