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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하는 습관

독서편지 먹거리로 만난 역사 이야기

by 법천선생 2021. 3. 22.

 

아침독서편지 – 2,271

 

먹거리로 만난 역사 이야기

역사는 과거에 있었던 객관적 사실만을 서술하는 ‘사실로서의 역사’와 과거 사실 가운데 역사가의 조사 및 주관적 재구성으로 이루어진 ‘기록으로서의 역사’ 서술 방법으로 크게 나눌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식탁 위의 세계사》는 열 가지 음식을 제재로 그와 관련된 역사적 사건과 현재를 연결시켜 고찰한 ‘기록으로서의 역사서’에 속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인간의 생존과 직결되는 먹거리를 역사와 결부시킨 시도가 돋보이는 책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책에 제시된 열 가지 음식 가운데 ‘감자’와 ‘바나나’에 대해 잠깐 생각해보았습니다.

 

제 또래 세대는 부모님으로부터 ‘예전엔 쌀이 귀해 가난한 집에서는 구황 작물이나 멀건 죽으로 끼니를 대신했다’는 말을 듣곤 했는데, 코로나 사태가 겹친 작년, 해외에서의 첫 격리 생활에서 저는 14일을 버텨야 한다는 생각에 삶은 감자로 몇 끼를 대신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부모님께서 말씀하신 옛 세대에 비교할 수조차 없는, 단기간에 잠깐 대체했던 식사대용이었지요. 풍요로울 때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푸슬푸슬한 감자가 간식거리이지만, 빈곤할 때는 밥 대신 끼니용으로 먹어야할 음식이 감자가 아닐까 싶은데요.

 

이 책에서도 구황작물 ‘감자’의 슬픈 역사를 전하고 있습니다. 16세기 스페인 탐험가들에 의해 유럽으로 전해진 감자는 특히 아일랜드가 오랜 세월동안 영국의 지배를 받는 기간 중인 1845년 ‘감자대기근’으로 백만 명이 아사(餓死)했다고 하는데, 그 와중에 아일랜드를 지배했던 영국은 굶어 죽어가는 아일랜드인들을 외면하고, 곡물을 계속 공출해갔다고 합니다. 죽음 끝에 서 있던 사람들을 더 죽음으로 내몰았던 강대국의 횡포에 할 말을 잃게 됩니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또 다른 먹거리에 ‘바나나’가 있습니다. 제 어린 시절 ‘바나나’는 입원할 정도로 아팠을 때 엄마가 걱정스런 목소리로 “잘 먹고 나아야지, 바나나 사줄까?”했던 귀한 과일 중 하나입니다. 요즘은 수입으로 흔하고 값싼 과일이 되었지만 말이지요. 바나나 공화국으로 불리는 중앙아메리카의 몇몇 나라들이 다국적 기업들의 플랜테이션 농업에 의존하면서 바나나 대량 생산이 이루어지고 있는데요. 이들 기업들의 횡포로 바나나 공화국 국민들은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파업하는 노동자들을 사살하는 데 국가가 군사력을 동원하고 있다는 슬픈 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껏 강자 중심의 역사를 학습하며, 힘없는 나라, 소외된 사람들의 역사와 오늘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감자와 바나나뿐 아니라 소금, 후추, 돼지고기, 닭고기, 포도, 빵, 옥수수, 차 등 식탁 위에 자주 오르는 음식들과 관련하여 인간의 과거와 현재를 이야기하며 미래를 생각하게 하는 《식탁 위의 세계사》는 음식 하나도 생각하며 다가서게 만드는 묘한 힘을 가지고 있는 책입니다.

- <식탁 위의 세계사> , 이영숙, 창비, 2012

 

2021년 3월 22일(월)

 

독서로! 세계로! 미래로!

(사)전국독서새물결모임 평생회원 오영애

중국 칭다오청운한국학교 교사, ohya32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