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해를 얻게 되면 불필요한 것들은
저절로 떨어져 나간다.
소경이 눈을 뜨게 되었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지팡이를 버려도 되냐고 물어보겠는가?
지팡이를 버리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
불필요한 물건은 이제 관심 밖이다.
이제 그대는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
지팡이에 의지할 필요가 없다.
누군가의 안내를 받을 필요도 없다.
이제 그대는 스스로 보고 판단할 수 있는
눈을 가졌다.
그대는 자유인이다. 어디에 있건 타인에게
의지할 필요가 없다.
어떠한 방편도 그대를 변화시키지 못한다.
다만 자신이 뭔가 변했다는 착각 속으로
그대를 밀어 넣을 뿐이다.
그것은 자기최면에 불과하다. 분노, 질투 등
온갖 괴로운 감정에서 해방되고 싶을 때
이런 자기최면은 일시적으로 유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 툭 건드리기만 하면
그 감정들은 기다렸다는 듯 일제히 고개를 들고
그대에게로 돌아온다.
이것이 우리가 처한 상황이다. 자신이 변했다는
믿음으로 최면상태를 유지하고 싶다면 좋다.
그것을 누가 막겠는가?
그러나 그 믿음이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까?
누군가 슬쩍 건드리기만 해도 그대는 자신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누군가 그대를 모욕하거나 애인이 바람을 피웠다고 하자.
그 즉시 예전과 똑같은 분노와 질투심이 용암처럼
솟구칠 것이다.
이 모든 그룹명상과 테라피는 안정제 또는 진통제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물론 그것을 복용하는 동안에는 약효가 지속될 것이다.
한 달을 복용하고 그 효과가 몇 달을 갈 수도 있다.
약효가 얼마나 강한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분명하게 이해하라.
진통제는 치료제가 아니다!
그것은 고통에 대한 감각을 일시적으로 둔화시킬 뿐이다.
그런데 그렇게 둔화된 상태에 빠져 그대는 병이 나았다고
생각한다.
방편이 주는 최면적 상태에 빠져서 그대는 불행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한다.
물론 얼마동안은 좋은 상태가 유지되겠지만 그 불행은
반드시 돌아온다.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의 에고는 이런
현상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거짓 가면을 쓰고 뭔가 대단한 변화가 일어난
것처럼 행세한다.
그대는 여전히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
그대에게는 용기가 없다.
자신에게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할 만큼 진실하지 못하다.
- 끼란바바
'명상개념 > 스승 = 진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왜 깨달은 스승이 필요한가? (0) | 2021.11.30 |
---|---|
불이법문(不二法問) (0) | 2021.11.30 |
무소부재하신 스승의 불력 (0) | 2021.11.24 |
스승이 가르쳐 줄 수 있는 것 (0) | 2021.11.15 |
능엄경의 빛과 소리 수행 (0) | 2021.1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