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구가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걱정이 되고 안타까웠다. 그 날 이후,
하루 하루 날이 가면서 가슴이 답답해져 왔고,
마음에 돌덩이 하나가 들어 앉은 듯 무거워졌다.
내가 왜 이런가 하고 원인을 찾기 위해 내 마음을
들여다 보았다.
고난에 처한 친구 때문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사는 것이 힘들어진 그 친구는 구십 살이 넘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상황이 얼마나 나빠졌는지 시어머니가 먹고
싶어 하는 김치도 못 담가 드린다고 울먹였다.
일을 해야 하는 도구마저 집달리가 딱지를 붙여
놓았다.
눈앞이 캄캄해서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경지에 이른 것이다.
그 때 우리들은 사십대 초반으로 올망졸망한
자식들이 있었고, 다들 하루하루를 쫒기듯
기를 쓰고 살고 있을 때였다.
그러니 너나 할것없이 모두 고공에서 줄타기
하듯 아슬아슬했고, 사는 것이 버거웠다.
나는 김치 한 통과 일을 할 수 있는 도구를
트럭에 실어서 친구가 일하는 장소로 보냈다.
그러나 그 도움은 임시방편이었다. 빚 때문에
친구는 곧 잡혀 갈 지경에 이르렀다.
형편이 조금 나은 내가 그 빚을 갚아 주었고,
친구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나 세월이 흘렀을까.
십 년, 이십 년, 사십 년도 넘게 시간이 흘렀다.
그 긴 세월을 지나면서 우리는 모두 팔십 살이
훨씬 넘은 나이가 되었다.
우리들은 모두 그동안 해 오던 일을 접었고,
만날 때마다 힘들었던 지난날을 동화 같이
얘기할 수 있는 여유를 찾았다.
어려웠던 그 친구는 세 자녀를 잘 키워서 사회의
한 자리에 모두 우뚝 서게 만들었다.
얼마 전 모임에서였다. 그 친구가 나에게 예쁜
봉투를 내밀었다.
“네가 베푼 은혜에 백분의 일도 안 되지만 받아
주었으면 좋겠다.”
“그 절망의 순간에 아무런 조건 없이 손 내밀어
줄 사람이 어디에 있겠나?”
그 말을 들은 내가 더 감격했다. 가슴에 뜨거움이
올라 와 눈앞이 흐려졌다.
나는 그동안 그 때의 일을 입에 올려 본 적도 없고,
까맣게 잊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나 갑작스러워서 놀라움이 컸다.
그 날 집으로 오는 길에 옛 경구가 떠올랐다.
“은혜는 가슴에 돌로 새기고, 베품은 곧 잊어
버려야 한다.” 이 말이 이리도 가슴에 와 닿을 줄 몰랐다.
참말로 그날 나는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 잊고 있었는데 내게 이런 기쁜 마음을
들게 해준 친구에게 내가 더 감사했다.
한국수필문학관 이경자씨의 글
https://cafe.daum.net/k-essayhouse/fMTx/36?q=%EA%B0%90%EC%82%AC%ED%95%9C%20%EB%A7%88%EC%9D%8C&r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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