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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개념/명상법칙정리

자동항법장치에 몸을 맡기다

by 법천선생 2026. 1. 26.

고무줄을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가

갑자기 놓아버리면 어떻게 될까.


고무줄은 원래 자리로 돌아가려

하지만, 그 반동은 오히려 더 크게 튄다.


지나친 긴장은 반드시 오류를 낳는다.

명상도 이와 다르지 않다.


처음에는 큰 분발심으로, 죽을 각오

로라도 진보하고 싶다는 갈망이 앞선다.


그러나 어느 지점에 이르면, 그 열망

자체가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


그때는 더 밀어붙일 때가 아니라,

놓아야 할 때다.

 

진보가 눈앞에 와 있을수록, 내가 늘

해오던 방식—무언가를 얻고자

갈구하며 명상하는 태도—로는
더 이상 나아가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욕구를 연료 삼아 달리던 엔진이,

목적지 앞에서 과열되어 멈추는 것과 같다.

 

그래서 결론은 하나다.
모두 내려놓자.


추구하는 마음조차도 결국은 욕망이고

욕심일 뿐이다.

 

그냥 바보처럼, 두뇌 속이 멍청할

정도로 텅 빈 상태를 허락하고
몸을 자동항법장치에 무식하리만큼

맡겨 버리는 것이다.


마치 길을 너무 잘 아는 사람이

운전대를 놓고 자율주행으로 차가

스스로 굴러가도록 허락하듯이.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이 진보에

대한 비법 중의 비법이다.

 

아무것에도 머무르지 말고 그저

본래의 마음이 저절로 솟아나게 하라는
금강경의 말씀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돌이켜보면 나는 지혜에도 마음이

들어가 있었고,
해탈에도 마음이 들어가 있었으며,


천국에도, 성불에도 마음이 지나치게

많이 가 있었다.


그 모든 ‘이름 붙은 목표들’이 욕심이

되어 오히려 발목을 잡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모든 것을 놓고 집중하라고 말해도,
막상 명상 중에 무언가가 보이는 순간
그 모든 결심이 허사였음을 깨닫게 된다.


보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미 마음은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의 단속, 곧 ‘조심’이라는 것을.

나아가려는 마음마저 조심하고,


깨닫고 싶어 하는 마음조차 경계하는 것.
아무 일도 하지 않되,


아무 데도 빠지지 않는 이 미묘한 균형 위에서
비로소 길은 스스로 열린다.